
어느 날 행상 길에 나섰던 가난한 동경유학생 김영일은 거리에서 거액의 돈을 줍고,
이것의 반환 여부를 놓고 고민한다. 이만한 거액이라면 그는 행상을 나서지 않고도
몇 달 동안의 생활을 거뜬히 해결할 수 있으며, 같이 고학하는 친구들도 이 돈의
반환을 반대하고 나선다. 그러나 그는 양심의 결정에 따라 같은 서클의 동인이며
돈의 주인인 전석원에게 주운 돈을 돌려 준다. 전석원의 집에서 돌아온 김영일은
어머니의 위독 전보를 받고 귀국 준비를 서두르지만 여비를 해결할 길이 없다.
김영일은 전석원에게 사정해보기로 하고 친구 박대연 등과 함께 그를 찾아간다.
김영일의 사정을 들은 전석원은 냉담하게 그의 청을 거절한다.
전석원의 몰인정함에 분개한 김영일의 친구들과 전석원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고
이것이 사상 논쟁으로까지 확대되어 격투가 벌어진다.
이때 박대연의 주머니에서 불온삐라가 떨어지고 신고를 듣고 달려온 일본 경찰은
김영일과 그 친구들을 구속한다. 영양 결핍, 마음의 고통, 경찰의 심한 고문에 시달린
김영일은 급성폐렴이 발병하여 경찰에서 풀려나지만 그날 밤 유언을 남기면서
한많은 생애를 마친다.

1920년에 씀. 1921년 동우회(도쿄 유학중인 고학생과 노동자들의 모임) 순회극단 공연.
주연 유춘섭, 허일, 마해송. 1923년 출간. 1920년대의 신극 운동(이 근대극으로서의
과도기를 지나고 있을 때 '동우회' 극단의 참신한 연극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그들의 레퍼토리 가운데 가장 많은 공명을 받았던 작품이 <김영일의 죽음>이었다.
한국인의 가난과 부(富)의 불공평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한편,
박애정신을 호소하고 있다. 도쿄의 고학생 김영일은 니체의 초인의 얼굴을 가진 열렬한
기독교신자이다. 부유한 한국 학생의 돈을 주워 돌려주지만 모친 위독으로 귀국 여비를
그 친구에게 사정하나 거절당하자 격분한 나머지 싸움이 벌어지고 유치장 신세를 진다.
결국 김영일은 폐렴에 걸려 석방된 뒤 하숙방에서 병사하면서 친구들에게 위대하고
진실한 '나'라는 것을 존중하고, 그리고 사람은 다같이 운명에 학대받는 불쌍한 존재이니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한다. 그의 유언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김영일의 현실 인식이 분명하지 않으며 행동 방향이 애매하게 표현되어
구체적 현실감을 주지 못하는 등 근대 희곡으로서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연극사적인 측면에서 더 의의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익 작품은
당대의 사회상을 담은 창작극이라는 점, 그리고 이 작품의 공연을 계기로 신파조의 형식을
탈피한 연극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는 점 등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한국 근대연극사의 출발이 다분히 학생극 운동에 의지한다고 할 때 그 선구가 되는 작품이
바로 이 <김영일의 사>이기 때문이다.

조명희
극작가이며 소설가로 호는 포석이다. 1920년 봄 동경 유학생들이 조직한 극예술협회의 회원으로 참가, 김우진 등과 친분이 두터웠다. 1921년 여름 동우회순회연극단에 참여,<김영일의 사>를 직접 집필하여 전국 주요도시를 순회공연하였다. 1923년에는 이 작품을 출간하였으며 시작 및 소설에도 관심을 가져<영혼의 한쪽 기행>(1923년),<잔디밭 위에서>(1923년) 등을 발표하고 이어 경향파적인 소설<땅 속으로>(1925년),<낙동강>(1927년),<저기압>(1927년),<동지>(1927년),<한여름 밤>(1927년) 등을 발표했다. 특히 희곡집<김영일의 사>는 우리나라에서 김영보의<황야에서>이후 두번째로 나온 희곡집으로 의의가 있다. 이 이외에 희곡<파사>(1923년)를 남겼고, 시집으로<봄 잔디밭 위에>(1924년)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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