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닐 사이먼 번안 '둘이 타는 외발자전거'

clint 2026. 4. 26. 05:47

 

 

'둘이 타는 외발자전거'라는 이름으로 43년간 코미디계의 명콤비였던 두 사람 

김춘식과 배청일. 그러나 11년 전, 춘식이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활동이 중단되었다. 

배청일은 그 일을 잊지 못해 원망과 미움과 분노를 품은 채 노년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방송사에서 추억의 옛날 코미디를 공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자 

두 사람은 '반대하지만' 이라는 조건을 내세우며 응하게 된다. 연습 위해 11년 만에 만난 

둘은 사사건건 부딪친다. 조카딸을 빼고는 찾아오는 사람 없는 배청일은 아직도 영화와 

뮤지컬, CF섭외가 들어온다고 허풍 치고, 김춘식은 이에 질세라 딸네 집에서 구박받고 

살면서도 자식 덕에 호강이 넘친다고 자랑한다. 

 

 

 

연습은 싸움으로 끝났지만 공연 날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둘은 방송국에서 전성기 때의 

히트작이었던 '엉터리의사와 세금쟁이'라는 코미디 리허설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연습 때와 

마찬가지로 둘은 싸움 끝에 흥분한 배청일이 그만 쓰러지고 만다. 오래 전 김춘식이 아무 

말 없이 떠났을 때, 배청일이 느꼈을 배신감은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분노덩어리가 되어 

스스로를 가두고 만 것이다. 맘대로 사라져버린 김춘식 뒤에 홀로 남겨진 배청일은 아무런

준비도 없던 상태에서 졸지에 은퇴해야 했던 상처와 절망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있으랴.
그러나 김춘식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난 일에 대해 일체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늙고 눈이 침침해 지고 걸음도 불편해 지고 자식에게 구박받는 신세가 되고만 
속절없는 세월을 이야기하는 그 모습에서 그때의 떠남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두 할아버지의 화해를 위해 애를 끓이는 배청일의 조카딸은 김춘식을 만나 배할아버지를

위문하고 화해할 것을 간곡하게 이야기한다. "그건 오늘이 아니면 안 되거든요!" 

 

 

 

병문안을 온 김춘식은 옛날 공연 때의 일을 늘어놓으며 화해를 하게 된다.

그리고 병 때문에 은퇴를 해야하는 배청일은 조카의 집으로 가거나, 은퇴한 배우들이

기거하는 양로원으로 가야함을 말한다. 김춘식 또한 그곳으로 갈 거라며 쓸쓸해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처음 “둘이 타는 외발자전거”로 데뷔할 무렵을 이야기하는 김춘식의

말을 들으며 배청일은 잠이 들 듯 죽음을 맞이한다. 배청일의 대사 속에 들어있는 말들은

비비꼬여진 춘식에 대한 애증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독히 사랑하는 친구의 말이며,

구세대에 대한 신세대의 몰이해라든가, 구세대로 물러나 있으면서 신세대에 속하고 싶은

열망과 그러지 못한 것에서 오는 안타까움까지. 그것은 세태에 대한 냉소적 웃음이며

삶에 대한 다소 우울한 실망이다. 팬레터나 무대에 대한 열정은 화려한 시절에나 적합한

것이지 노년이 된 배우에겐 사치스러운 것이 되고 추억의 소재일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저 양로원에서 쓸쓸히 마감해야할 인생인 것이다.

 

 

둘이 타는 외발 자전거엔 둘의 호흡이 중요하다. 어느 하나 바퀴를 더 세차게 굴리거나

느리게 굴리면 앞으로 나가는 길에 더디거나 꼬꾸라지기 마련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서로가 알맞은 속도로 발판을 굴려야한다. 인생도 그렇다.

혼자 살아가거나 둘이 살아가거나 여럿이 살아가거나 모두들 그 나름대로의 속도에 맞게

발판을 굴려야한다. 발판 굴리는 일이 힘겹다고 굴리지 않는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도 열심히 그 조화 속으로 발판을 굴리며 삶을 살아야한다.

웃다 울다 웃다 울다 할지라도. 그래서 삶은 살만 한 것이리라.

그리곤 때가 되면 아름다이 이 생을 마쳐야한다.

2005년. 1월 김순영이 번안하고 연출한 작품으로 대학로에서 공연되었다.
‘봉숭아학당’의 맹구 이창훈이 배청일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닐 사이먼의 선샤인 보이즈(The Sunshine Boys)가 원작이다. 1972년 12월 20일 뉴욕의 브로드 버스트 극장에서 초연되자 연극평론가들은 한결같이 극찬을 주저하지 않았다. New York Post의 Douglas Watts는 "닐. 사이먼이 몇 해의 연극 시즌에 걸쳐 발표한 작품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 바로 "The Sunshine Boys"다. 그리고 그는 이 작품으로 무대 휴머를 가장 탁월하게 발휘한 극작가임 이 증명되었다고 평했는가 하면 Time지의 T. E. Kalem은 "사이먼의 어느 희극작품에서도 이 희극처럼 애정, 그리고 연극성이 짙은 장면과 심금을 울려주는 친근성을 느끼게 하는 작품은 없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뉴욕 타임스지에서는 "이 작품에서 드디어 눈물은 진정으로 투명한 것이 되어 사이먼이 시어리스한 작가로 탈피한 재치 있고 감동적인 사이먼의 최고 걸작傑作이다"고 최대의 찬사를 퍼부었다. 사이먼은 자기가 태어난 뉴욕을 지극히 사랑했다. 그는 도시인들에게 애착을 느꼈다. 결점투성이요, 그 때문에 증오할 수 없는 근접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갈등을 밝게 전개하는 것이다. 특히 도시의 소용돌이 속에서 호흡하는 서민들,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을 소중히 여겼다. 그들의 애환을 그들의 심상풍경(心象風景)을 그들이 부딪히고 있는 절실한 문제를 파고 들었다. 그러기에 그들의 생활과 감성과 그들의 꿈과 비애와 그들의 절규가 사이먼의 文學的 고향이며 극작의 탯줄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이먼의 극세계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생활이다. 바꿔 말하면 폭풍속을 날으는 잠자리 마냥 나래를 파들거리는 전율적인 몸부림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아니될 점은 획일화와 메카니즘이 휘몰고 온 상황 속에서도 그 평범한 사람들의 인간적인 진실과 인간적인 아름다움에 자기의 시선을 흔들리고 있지 않다는 그것이다. 즉 그의 작품은 인간적인 마음의 빛깔과 그 아픔의 소리가 한데 어울려져 있는듯 싶다. 그래서 등장인물이 아무리 우습더라도 인간을 이탈한 어릿광대가 되지 않고 관객들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