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성열 '나는 왕이로소이다'

clint 2026. 4. 23. 06:06

 

 

휘문의숙 재학시절, 3 1운동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고 난 노작은 친구 정백과 함께

돌모루로 돌아온다고향에 돌아온 노작은 주권 잃고 괴로워하는 민중을 위한 사업에

몰두하게 된다옥고 후에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노작은 친구 정백과 <청산백운>이라는

수필집을 써내며 창작열을 불태운다그런 노력으로 1922년 백조를 창간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적인 부담과 정치적인 핍박 속에 <백조> 3호를 마지막으로 절간하게 된다

한국 근대극의 효시인 신극(新劇)을 주장하는 노작은 1923년부터 <토월회>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대중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연극을 공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토월회의 내부문제로 인한 해체로 노작은 자기의 극단인 <산유화회>를 창단하여, 

'벙어리 굿'으로 일제에게 맞서며 10년간 절필하며 자신의 굳은 의지를 표명한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이자 연극인이었던 노작(露雀) 홍사용(1900~1947)의 생애를 

그린 연극으로 극단 성에서 2022년 1월 (김성열 작ㆍ연출)로 공연했다.

이 연극은, 시인이며 희곡작가 연극인이었던 노작의 열정과 고뇌를 되새김으로써 오늘로

이어지는 그 시대의 예술가의 혼을 재조명 하고 있다그의 끝은 허망하고 미천했을 지라도

그의 정신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감동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지금은 전하지 않는 홍사용원작 ‘벙어리 굿’과 ‘김옥균전’이 연극적 상상력을 통해 

극중극으로 첨가된다.

 

 

 

조선최초의 신극단체 '토월회' 참여 일제강점기에 많은 예술인들이 창씨개명 등으로

굴복하였을 때,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던 노작 홍사용! 

문학도였던 노작은 민중을 계몽하기 위한 방법으로 연극을 택하였다. 

한국 근대사의 문호 춘원 이광수, 나도향, 이상화, 토월회를 창립한 춘강 박승희, 

팔봉 김기진, 전설의 무희 최승희,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

1922년 <백조> 창간동인이자 조선최초 연극단체 <토월회>의 창립멤버로서 문학과 연극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노작을 비롯한 동시대의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생생히 환생한다. 

환란의 시기일수록 불타는 예술혼! 돌이켜 생각하기 싫은 우리의 과거 일제시대, 그럴수록

우리의 예술혼은 빛났다. 과거 역사 속 인물들의 신념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통하여

진정한 예술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호는 노작(露雀). 경기도 용인 출생으로 휘문의숙을 졸업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검거되었다. 1920년 박종화, 정백과 <문우>를 창간한 뒤 1922년 나도향, 현진건, 박종화 등과 문예동인지 <백조>를 창간하고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극단활동으로는 1923년 토월회에 가담해 문예부장직을 맡았으며, 1927년 박진, 이소연 등과 산유화회를 조직했고, 1930년에는 홍해성, 최승일과 함께 신흥극장을 조직했다. 희곡작품을 써서 직접 출연하는 등 연극활동에 정열을 쏟기도 했다. 1929년경부터 친구 박진의 집에서 기거하는 등 한동안 방랑생활을 하다가 돌아와 자하문 밖 세검정 근처에서 한약방을 경영했다. 8·15 광복을 맞아 근국청년단(槿國靑年團) 운동에 가담했으나 곧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1920년 <문우>를 발간하면서 시 <커다란 집의 찬밤>을 발표했다. 1922년부터 <백조> 동인으로 참여하여 시 <백조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1922), <나는 왕이로소이다>(1923) 등을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하였다. 초기 시는 절망과 실의에서 빚어지는 애상과 비애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중첩시켜 산문조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시세계의 기층을 이루는 것은 <봄은 가더이다>(1922), <시악시의 무덤>(1923)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체험에 바탕을 둔 향토적 정서라 할 수 있다. 후기에 쓰여진 시들은 민요적인 관심을 보여준다. 1928년 <별건곤> 5월호에 발표한 <조선은 메나리 나라>라는 평론을 통해 ‘메나리(민요)’를 우리나라의 ‘둘도 없는 보물, 특색 있는 예술’이라 강조했는가 하면, 1934년부터 <월병(月餠)>(1934), <시악시 마음이란>(1938) 등과 같은 민요조 시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민요시들은 전통적 율격을 잘 살려낸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 한편, 단순자연물이나 자연현상에서 제재를 취한 점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하였다. 시 외에도 <저승길>(1923), <뺑덕이네>(1938) 등의 소설, 희곡 <할미꽃>(1928) 등과 수필 및 평문을 남겼다. 생전엔 작품집이 나오지 않았고 1976년 유족들이 시와 산문을 모아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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