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이사장인 장인에 의해 대학 총장으로 추천된 '배문하'는 문화인류학
대학원생인 딸 '수나'가 ‘식민지 속의 여성’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쓴다는 말을 듣고
그 논문 주제에 반대하며 자신이 묻어두었던 과거에 대해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는 젊은 시절 어머니를 ‘갈보’라고 욕하며 학대하던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했다.
배문하의 어머니 '순이'는 일제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당시 강제 징집되었던
학병 배광수를 살리고 귀국 후 결혼하여 배문하를 낳았다.
수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며 우연히
80년대 익명의 작가 김산해가 쓴 소설 <조센삐>를 발견하고, 그 내용이 나눔의 집에서
기자회견을 한 김순이 할머니의 증언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는 아들의 장래를 생각해 아들의 곁을 떠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1982년에 발표된 윤정모 작가의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는 일제시대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가 실제로 겪었던 아픈 역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연극 <봉선화>는 이 소설을 토대로 과거 위안부 할머니 세대의 이야기 뿐 아니라
이후 그 아들과 손자 세대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 작품은 피해사실에만 초첨을 두거나 일본의 만행만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다.
역사란 단지 과거의 문제 혹은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만드는 삶의 문제임을
가슴으로 깨닫게 한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언어를 통한 사실적 연기와 표현적인
몸짓, 다큐멘터리 영상 등을 함께 사용하여 관객들이 위안부의 이야기가 꾸며진
허구가 아닌 실제로 일어난 엄혹한 역사적 사실임을 자각케 한다.

서울시극단 2014년 공연. 구태환 연출.
아버지 문하는 왜 그토록 수나의 논문 주제를 못마땅해 했을까. 외가의 친일전력
그리고 나눔의집에서 만난 위안부 순이 할머니가 수나의 외할머니라는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극의 긴장감은 절정에 달한다. “이해해야돼. 외할머니도 당시의
순간적인 실수로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셨어.” 수나 어머니는 동료 학우들의
정신대 근로 동원에 나선 외할머니의 과거를 고백하며 ‘어쩔 수 없는 시대’였다고
말한다. 가해자인 외가도 피해자인 친가도 모두 진실을 묻어둔 채 잊혀지기만을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극 말미 85세 노모가 손녀를 통해 영상으로 아들과 조우하는 장면은 감동작이다.
어머니의 과거를 부정했던 아들, 그런 아들의 미래를 위해 잠적해 살아온 노모의
한 많은 삶은 가슴 깊은 울림을 선사하며 관객들의 눈물샘을 터뜨린다.

작가의 글 - 윤정모
임종국이란 분이 계셨다. 일제사 발굴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분이다. 정신대가 일본군위안부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밝힌 것도 그분이 처음이었다. 선생님께서 언급한 유명인사들, 정신대에 나가라고 독려했다던 명사들은 80년도에도 여전히 우리사회 저명인사였다. 해방된 나라에서 친일파들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기형적인 현상이라 나는 선생님을 찾아가 그 까닭을 물었다. "그들이 저렇게 건재하는 내인(內因)은 국민들 대다수가 정신대 실상을 잊거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급선무는 그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실을 국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윤정모 씨, 소설을 써주세요."
내가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발표한 것은 82년이었다. 이 소설로서 나는 일본군 위안부 현장을 언급한 첫 여성작가가 되었고 선생님의 당부대로 강제위안부를 알리는 일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92년 호주 멜버른 대학에서 일제만행사에 대한 규탄 겸 심포지엄 때도 피해국 여성의 소설(번역된)은 유일하다는 이유로 초청되었고 그때 내 기조연설 첫 문장도 '임종국이란 분이 계셨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정신대에 대한 사실은 아직도 무덤 속에 있을 것' 이라고 밝혔다. 지난 30여 년 동안 정신대에 대한 사회운동도 많이 발전했다.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가 탄생했고 '나눔의 집'이라는 피해자 할머님들의 쉼터도 있다. 할머니들은 1천회가 넘도록 수요집회를 열어 일본에 사죄를 촉구하고,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소녀상이 세워졌으며 세계를 향한 1억 명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일본은 아직도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있다. 사람들은 요즘 일본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베총리가 미국으로부터 집단적 자위권 지지를 얻어냈고,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봉선화 극본은 내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와 '봉선화가 필 무렵'을 토대로 각색했다. 마치 고강도 훈련을 받듯 쓰고 고치고 다시 쓴 이 극본이 일본정부의 사죄를 받아내는데 작은 물방울이라도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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