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이사도라 덩컨 '맨발의 이사도라'

clint 2026. 1. 30. 04:52

 

이사도라는 베를린 극장에서 공연중 무대장치에 불만인 무대미술가 고든 크레이그의 
방문을 받는다.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명우 엘렌 테리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 
그의 천재성에 사랑을 느끼게 되고 고든 역시 그녀의 예술적 창조에 동감하여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고든의 작품활동에 여자의 역할을 보수적으로 
원하게 되어 파국의 지경까지 치닫게 된다. 한때 고든의 작품을 위해 헌신하여 명배우 
엘레노아 듀세의 연극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게 하지만 무용에 대한  집념과 학교 
운영에 대한 걱정으로 무대로 돌아갈 것을 고든에게 부탁하지만 보수적인 그는 

그녀의 무대복귀를 반대하며 떠나버린다. 그리고 얼마후 이사도라는 고든과 자신의 딸인 
디드로를 낳고 공연을 위해 미국으로 간다. 공연을 마치고 빠리로 돌아온 이사도라는 
무용학교의 운영이 자금난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때 재봉틀 재벌의 상속자인 

파리스 싱거가 나타나 자청해 도와주며, 이사도라는 고마움의 표시로 춤을 선사한다. 
파리스 싱거는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그녀는 결혼의 속박은 원치 않으나 당신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음을 얘기한다. 파리스 싱거 또한 그녀의 정열을 이해하고 헌신적으로 
도와주기에 이른다. 싱거의 후원으로 이사도라의 무용생활은 순탄하게 유지되어 가는 
곳마다 환영과 환호의 물결로 출렁거린다.

 

 


몇 년뒤, 러시아로 다시 공연을 떠난 이사도라는 체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나려는 
17년 연하의 시인 세르게이 여세닌의 미국으로의 탈출을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법적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미국에서의 생활은 
야유뿐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뇌에 찬 예세닌은 자기의 예술성 상실, 
즉 잃어버린 언어를 되돌려 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결국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지켜보며 울부짖는 이사도라의 애절한 모습은...

 

 

 

이 작품은 이사도라 던컨의 자서전을 이재현이 각색하고 극단 춘추에서

1978년 연극화 하였고, 후에 영화로도 제작된다.
이사도라 던컨은 전통 무용을 배웠으나 차차 예술은 물론이고 개인 생활에서조차 

전통과 관습을 거부하는 파격을 보인 인물이다.

영화는 남자 비서에게 자신의 인생을 구술하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관습을 배격하는, 자유분방한 연애와 동거, 개인 생활, 그녀의 춤 모두는 당시

보수적이고 편협한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녀의 춤은 고대 그리스 무용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맨발로 무대에 선 것으로 유명하다.

재봉틀 거부 파리스 싱어(제이슨 로바즈), 러시아 시인 세르게이 에센닌과의 사랑,

두 아이의 비극적 죽음 등 그녀의 인생은 성공과 비극적 최후라는 롤러코스터와도 같았다.

이사도라 던컨은 자신의 규칙에 따라 삶을 살았으며, 여성 해방과 자유로운 사고,

현대 무용에 기여한 업적으로 인해 열렬한 찬미자를 거느리고 있다.

1927년 프랑스 니스에서 타고 가던 자동차의 뒷바퀴에 스카프가 끼어 사망했다.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877.5.26~1927.9.14)

불멸의 춤꾼 이사도라는 1899년 시카고에서 데뷔 하였으나 전통무용이 아닌 창작무용으로 독톡한 춤을 추었으나 관객에 외면 당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창조적 예술의 춤으로 승화시켜 춤으로는 19세기,20세기 최고의 무용가 였으나 자식복과 남자 복은 지지리도 없는 여자. 미국에서 설자리가 없어 독일로 이주하여 첫번째 남자 크레이거와 동거하여 딸 디어도르 출산, 이후 두번째 남자 돈많은 싱거와 동거하여 아들 패트릭 출산. 조국 미국이 외면한 춤꾼 이사도라는 독일에서 승장장구 하였으나 사랑하는 두아이를 태운 승용차가 세느강에 추락하여 이사도라의 비극이 시작된다. 이후 러시아로 이주하여 43세 되든 해에 18살 적은 시인 예세닌(25세)을 만나 처음이자 마지막 결혼식을 올렸다. 총망받는 젊은 시인과 당대 최고의 창작무용 일인자의 결혼은 당시 혁명적 사건이었고 미모 춤꾼과 지성을 고루 갖춘 젊은 시인의 만남은 세인의 관심과 애정을 덤뿍 받았다.

 

 

 

그러나, 꿀맛 같은 중혼 살림도 잠시였다. 세르게이 알렉산더로비치 예세린은 초혼이 아닌 재혼이였고, 젊은 나이에 알콜 중독자 에 이기주의 였다. 날만 세면 이사도라의 인기는 폭팔적이고 예세린은 부와 명예를 가진 이사라도라의 기둥서방? 정도의 위치라 생각하여 자격지심으로 술만 먹으면 술주정에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달라하는 초라한 쫄장부로 전락. 이사도라는 젊은 서방 얻는것 치고는 많은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다. 러시아에서 춤으로 성공한 이사도라는 조국 미국 보스톤 심포니 홀에서 공연이후 공산주의 첩자라는 야유를 받았고, 이로 인하여 깊은 마음의 상처를 지내게 되었다. 비운의 그림자는 그녀 주위를 맴돌아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러시아로 돌아왔어도 예세린은 술과 주정으로 지내다 이사도라와 신혼여행 갔었던 호텔 주변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 이사도라 또한 1927년 프랑스 니스에서 목에 두른 스카프가 달리던 자동차 바퀴에 걸려 목이 쫄려 한많은 생을 마감. 춤으로 성공한 그녀 이지만 이세상 떠날땐 사랑하는 자식과 많은 남편 한명 남겨두지 않고 50세 한창의 나이에 춤남 남겨 두고 갔었다. 인간에 있어 부와 영화를 모두 함께 주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Isadora Dunc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