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막 1장(덴마크의 외곽 광야)
조그만 땅덩어리를 차지하려고 막대한 비용과 수많은 인원을 죽음으로
향해 몰고가는 젊은 귀공자 포틴브라스의 고매한 공명심과 웅지, 이상,
행동력은 햄릿의 나약함과 커다란 대조를 이룬다.
제1막 2장 (햄릿의 환상)
자신의 비통한 죽음을 한탄하며 햄릿에게 복수를 간청하는 선왕(유령)
햄릿을 회유하는 왕과 왕비 그밖의 인물의 대립이 햄릿의 의식 안에서
심한 투쟁을 한다.
제1막 3장 (햄릿의 환상)
아버지의 죽음에 원한을 품고, 자신의 생명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복수의 칼을 뽑아든 레어티즈의 당당한 열정이 햄릿을 자극 시킨다.
제1막 4장 (왕비침실)
어머니의 빠른 재혼에 대한 수치와 분노는 심각하여 그것이 마침내
전 여성에 대한 증오로 확대되어 오필리어조차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제1막 5장 (궁성)
햄릿의 광증 원인을 탐지하려고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이 왕의 사주로
햄릿에게 접근 한다. 위정자들에 대한 햄릿의 시니컬한 풍자는 가히 일품이다.
제1막 6장 (학교장면)
도덕적 가치관, 윤리관, 사리판단력, 분별력 등을 논리적이고 주입식 방법으로
가르치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제1막 7장 (궁성)
포틴브라스가 복수를 외치고 나오자 자기의 위치를 빼앗긴 햄릿은 단지 의식적인
행동을 취할 뿐이다. 그 비굴한 행동에 그는 굴욕감으로 주저앉는다.
제1막 8 장 (영화장면 - 햄릿의환상)
클로디어스왕이 오필리어의 한탄을 마치 딸에게 하듯 나무라고 달래준다.
그들은 키스한다. 화면이 바뀌면 클로디어스의 품에는 오필리어가 아닌 왕비가
안겨 사랑을 간구한다. 장면이 또 바뀌면 이번엔 클로디어스 왕이 아닌
유령(선왕)의 품에 왕비가 안겨있다. 왕비는 거짓 사랑의 고백을 하며 선왕을
잠들게 한다. 어둠속 에서 왕과 왕비가 독약을 들고 나타나 선왕의 귀에 흘려넣는데
그것은 왕과 왕비의 손이 아닌 햄릿의 손이다.
제1막 9장 (궁성)
환영에서 벗어나 그는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기 시작한다.
제1막 10장 (궁성, 극장)
극중극 장면이 벌어지면 햄릿은 복수의 칼날을 간다. 그러나 그의 사고는
또 한번 칼날을 무디게 한다. 그의 나약함과 우유부단함에 그는 자학하며
채찍질한다. 가까스로 칼을 뽑아 왕을 찔렀으나 그는 왕이 아닌 폴로니우스였다.
제1막1장 (궁성)
어머니의 변절에 의한 충격과 숙부의 음탕하고 음험한 행위를 햄릿 스스로가
오필리어를 통해 행동해 보임으로써 그 쾌락과 쾌감을 맛보 려하고 있다.
그러한 까닭을 모르는 오필리어는 머리가 산란하여 비탄해 한다.
마침내는 연못에 빠져 익사하고만다.

제2막 1장(궁성안의 홀)
햄릿과 레어티즈의 전투가 벌어진다. 오필리어에 대한 애정에 있어 햄릿은
자신만만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복수에 있어서는 레어티즈에게 자신이 없다.
결국 그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학대하면서 싸움에 뛰어든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인 성격을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이 끼어들어 활기를
되찾고 마침내는 레어티즈와 그들 둘을 물리친다.
제2막 2장 (묘지)
오필리어의 장례식이 거행되고 슬픔과 분노에 잠긴 레어티즈의 처절한 절규가
메아리친다. 햄릿이 뛰어들어 자신의 슬픔과 분노가 레어티즈의 그것에 비해
더욱 큼을 외치며, 어머니의 품에 안겨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그 사랑마저 숙부의 손에 빼앗기게 된다.
제2막 3장 (재판장)
햄릿의 광증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다. 오필리어는 햄릿의 이상한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복받쳐오는 슬픔과 괴로움에 미쳐서 퇴장한다. 햄릿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미친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자신을 조소하며 변명한다.
위급함을 느낀 포틴브라스는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햄릿은 심한 수치와 굴욕감을 느끼며 그것을 낭독한다.
제2막 4장 (재판장)
포틴브라스가 인간의 나약성과 우유부단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햄릿의 생동력에
부채질하지만 결정적인 곳에 가서 그 결심이 꺾어지는 햄릿을 보고 완전히
손을고 떠나버린다.
제2막 5장 (궁성)
햄릿의 주위에 모든 인물이 에워싸며 야유와 조소 그의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행위를 비웃기 시작한다. 햄릿은 완전히 기진맥진하여 쓰러진다.
포틴브라스에 의해 즉각으로 옮겨진 햄릿. 그의 마지막 안간힘이 모아지고
복수의 칼에 수많는 사람이 목숨이 잃고 쓰러진다. 쓰러진 시체들이 햄릿을
조소와 야유로서 맞이하면서 막이 내린다.

연출가인 마로윗츠가 1960년대 런던에서의 첫 공연 후에 극장은 비정상적인 방법 - 즉흥연기, 대사간에 장면구성, 민감한 활동 등으로 배우들이 이야기를 중얼대었다. 요즈음에는 이 모든 것이 영국 극계에서는 대단히 보편화 되었다. 마로윗츠의 <햄릿>은 덴마크 궁정의 분주하고 번잡한 왕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햄릿은 권태로운 신경과민자이고 자신의 모성에 대한 병적 집착을 투영하고 있다. 아마도 마로 윗츠는 세익스피어의 대사에서의 차용(借用)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보여줌으로서 세익스피어의 대본은 보다 현대적 의미로 바뀐 것이다. 이것이 이 공연 이후 영국극단에 기여한 것만큼 더 새로운 햄릿으로의 기여가 이뤄질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사건 흐름을 중심으로 썼다면 마로윗츠는 의식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 온갖 잡다한 기사가 실려 있는 신문의 사회면처럼 '햄릿'을 콜라주 형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그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자유분방하고 복선적인 의식 활동에 햄릿의 본질을 연결시킨 것이다. 또한 인물 개개인의 개성에도 견해를 달리하여 여러가지 면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로 해석 될 수 있게 열어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마로윗츠의 변
<햄릿>이 이렇게 콜라쥬로 재구성되기까지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만 하였다.
그 최초의 형태는 <잔혹연극> 시즌의 일부로 람다 극장에서 피터 부르크와 내가 공동연출한 28분 짜리 <햄릿>이었다. 이 연극은 당시 그저 '재치있는 실험'으로 평가 되었고 사실 그보다 더 나을 것이 별반 없었다. 그러나 <햄릿>을 압축시키면서, 또한 그것을 무대화시키면서 야기되었던 문제들이 나로 하여금 세익스피어 놀이에서 벗어 나지 못하도록 하였다. 베를린에서 개최되었던 <실험연극 축전>에 참가하면서 나는 이 작품을 1시간짜리로 늘였으며 또한 햄릿이라는 인물의 성격과 '개념'에 대 하여 어떤 특정한 견해를 구축하였다. 베를린 공연에서 관객들 (대부분 젊은층이었 다)은 일어서서 4분이 넘도록 갈채와 환호를 보내주었으나 평론가들은 가혹하리만큼 혹평을 퍼부었다. <디 벨트>지(誌)의 최고 평론가였던 독일인 프레드릭 루프트가 특히 심했다. 그는 내 작품이 세익스피어를 모독했다고 격분하였다. 또한 우리의 전통적인 관념 속에 들어있는 햄릿을 위축된 행동의 원숭이, 밧줄로 그네를 타는 원숭이로 추락시켜 놓은 나의 심보가 아무리 양보해서 생각해봐도 '속임 장난'에 지나지 않는 '고약한 취미'로 밖엔 여겨지지 않는다고 비난하였다. 그의 발언 때문에 이 연극이 상연되었던 <퀸스테 아카데미>극장에서는 집단시위가 벌어졌고 루프트의 견해를 반박하는 많은 전단(傳單)이 곳곳에 뿌려졌다. 루프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해명을 해야만 했다. 1년 뒤에, 지금의 1시간 15분 짜리 작품으로 <파르마 국제연극제>에 참가하여 공연했는데 여기서도 젊은 층한텐 열광적으로 환영을 받았고 나이가 든 관객들로부터는 경멸을 당했다. 그 다음의 공연지는 이태리였는데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쟈넷타 코크레인 극장에서 했던 런던 공연에서는 기다란 행렬들이 우리의 뒤 를 따라 다닐 정도로 커다란 호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의 냉대를 면치 못했으며 이 공연을 본 한두 사람의 평론가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데에서 그치는 듯했다. 선데이 타임즈 평론가는 이 작품이 '매혹적'이었다고 평하면서 우리가 한 실험 의 요지가 원작에 대한 우리의 식욕을 한층 더 돋우워주는 역할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였다. 이것은, 내가 보기에 떠들썩하게 칭찬하면서 할 욕은 다한 말 이다. 여하튼 이 작품은 그 뒤 대략 25개 국가에서 공연되어 오고 있고 '잔인하다'로 부터 '통쾌하다'에 이르는 갖가지 상이한 보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위의 글은 1970년의 작가 마로윗츠의 글이다.)

지금에도 셰익스피어 작품, 특히 햄릿은 가장 많이 재구성, 재창작 등의 이름으로 원작을 수정하고 현대화하는 등 다양한 시도들이 극단과 작가, 연출가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그만큼 셰익스피어 작품, 특히 햄릿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기에 그러하겠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런 작업들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예전에 해외의 어느 평론가가 쓴 햄릿의 재창작 작품 중에 <마로윗츠의 햄릿>, 톰 스토파드의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죽었다> , 그리고 이오르다노프 <곤자고의 살인>이 가장 베스트한 작품이라고 했다. 20년전이었지만, 그 후로도 무수히 많은 작품들이 재생산 되고 있기에 2000년대에는 또 어떤 새로운 작품이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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