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으로 피난을 가다 어느 빈집 헛간에 쉬는 부부.
사내와 여인이다. 여인은 밥을 하고 있다.
사내는 연신 멀리서 들리는 포성과 불빛을 주시한다.
보리쌀이 얼마 안 남았다는 여인의 말에
사내는 그 남은 보릿쌀자루를 집어던진다. 바닥에 흩어진다.
그때 피난가는 애비와 아들이 솔솔 풍기는 밥 냄새를 맡고
이곳에 온다. 열 살 갓 넘은 아들은 무척 배가 고픈 모양이다.
잔뜩 진 짐을 내려놓으며 애비는 사내에게 흥정을 한다.
밥을 조금 팔라는 것이다. 돈도 제법 후하게 쳐주는데 사내는 거절한다...
잠시 후, 여인이 밥을 푸다가 조금 덜어 아이 앞에 한 공기 놓는다.
대뜸 애비는 담배를 꺼내 혹시 담배에 관심이 있느냐고 묻는다.
사내가 관심을 보이자, 담배를 주고 밥값으로 하겠단다.
애비는 아들에게 밥을 먹으라 하고 사내와 담배를 피우며 얘기한다.
자신은 평생 배우고 한게 장삿꾼 노릇이라 조부와 부친에게 대를 이어
배운 장사를 아들놈에게 가르치려고 한단다.
그런데 아들놈이 머리는 똑똑해도 장삿꾼기질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
아들에게 누룬밥까지 나눠주는 여인. 사내는 흩어진 보리쌀을 줍는다.
애비가 아들에게 장사를 하려면 셈이 능해야 한다며 덧셈뺄셈을
가르치는데, 조금 숫자가 커지자 헷갈려하는 아들.
냉정한 애비는 아들을 나무란다. 아들은 졸린지 불 옆에 와서 잔다.
그런 애한테 옷가지로 덮어주는 여인.
사내와 여인이 얘기를 하는데, 사내는 재산을 털어 아이들 교육을 시켜왔는데
전쟁으로 모든 걸 팽개치고 몸만 빠져나온 것을 아쉬워한다.
여인은 그런 남편을 달랜다. 평생 애도 안 낳고 남의 애들만 가르친 분이라고.
그런 얘기를 들은 애비는 다시 사내에게 온다.
그리고 사내에게 명주 두 필을 주며 자신의 아들을 잘 교육시켜 달라고 한다.
나와 같이 다니면 저애는 평생 장삿꾼을 해야하는데
자기의 경험상, 아들의 능력, 품성이 전혀 장사치하곤 어울리지 않아
며칠간 가르치다가 실망한 차에 선생님을 만났으니 잘좀 키워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떠난다.
멀리서 포성이 울린다.
다음날, 같이 아침을 해서 같이 먹는 세 사람.
아들은 연신 아버지가 왜 안 오시는지 걱정한다.
사내는 어제 흩어진 보리알을 주으며
"내년 봄이면 이 헛간 전체에 온통 파릇파릇 보리싹이 틀지도 모르겠는걸.."
희망에 찬 말을 하며 끝난다.

작품에 어느 시기인지 분명하게 나오지는 않으나 6.25때로 보이며
서울을 떠나 피난가는 중년 부부와 한 父子의 이야기다.
평생 아이들 교육에 몸바쳐 헌신했으나 다 버리고 떠나온 자신을
자책하는 남편, 그를 위로하는 자상한 아내가 있다.
역시 아들과 둘이 피난길에 오른 아버지. 평생 장삿꾼으로 살아온 그는
상황에 맞는 판단과 상술이 능하고, 셈이 빠른데, 아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다그치며 가르치는데... 피난 도중에 만난 참된 교육자를 바로 알아본다.
그리고 아들을 장사치보다는 더 쓸모있는 사람으로 키워달라고 부탁하고
떠나는 내용이다.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서로 불신하는 와중에도
미래를 기약하는 훈훈한 정이 감도는 작품이다.
1982에 발표한 이병도 작가의 작품으로 미 공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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