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1이 등장해 요즘 세상엔 투기배, 모리배가 도깨비라고 한다.
배우2가 빨리 시작하지 않고 잔소리를 한다고 시비를 건다.
배우1이 배경설명을 좀더 자세히 하며 관객들과 함께 정선아리랑을 부른다.
배우1의 마무리로 연극이 시작된다.
걸인 거식이와 포수는 아우라지 나루를 건너려고 기다리고 있다.
바보가 둘을 건네준다. 걸인은 광대골에, 포수는 호랑이를 잡으러 왔다.
걸인 거식이는 바보에게 머식이라는 이름을 불러준다.
바보는 둘을 주막으로 인도한다.

주막에는 털보가 낭군을 기다리고 있는 주막주인 송이를 유혹하고 있다.
바보일행이 주막에 도착해 술과 밥을 달라 하지만 송이는 돈부터 보여달라 한다.
거식이가 돈 대신에 노래를 하지만 송이에겐 공염불이다.
포수가 으름장을 놓으니까, 송이는 오히려 화를 내며 다 나가라고 한다.
털보가 금을 보여주며 송이를 달래자 거식이 진짜 금인지 확인하려 한다.
금을 씹어본 거식은 진짜라며 삼켜버린다. 털보는 금을 바보에게 얻었고,
바보는 도깨비가 줬다고 한다. 모두가 바보에게 도깨비를 만나러 가자 한다.
바보는 도깨비가 좋아한다는 메밀묵을 가지고 거식, 포수, 털보와 함께
도깨비가 산다는 광대골로 간다.
광대골 물방아간은 폐가처럼 황폐하고 조용하다.

강원도 정선지방의 광대골 전설을 소재로 한 작품이며, 아름다운 우리 민족의
정서를 보여주고자 시도했으며, 창과 춤사위를 도입하여 민속적 형태를
현대에 접목시키고자 시도한 작품이라 하겠다.
정선아리랑이라는 현실과 유리되어 있는 듯한 내용을 현실과 결부시켜
이야기하려 하였고, 옛날의 도깨비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투시하여
현대인의 한많은 기다림을 표현하려 한 점에서 독창성이 보인다.
그리나 전체적인 전개가 산만하고 주제에 알맞는 꽉짜인 플롯이 결여되어
놀이성에 대응할 만한 극적인 즐거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함이이 중요할 것이다..
연기자들이 작품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놀이에 임하는 진지성과 놀이 속에
담긴 주제의 의미를 부각시키는데 성실성이 첨가 된다면 좋을 듯 하다.

광대의 진실 - 작가 허규
현대에 있어서 예술가들의 사회적인 역할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본다. 홍수가 났다고 가정해 보자. 떠내려가는 큰 나무토막에 여러 층의 사람들이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면서 흘러간다. 양반도 있고 종도 있고 부인도 애기도 있다. 부자도 있고 가난뱅이도 있는가 하면 소리 잘하는 광대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 각자의 사는 방법은 판이하게 다를수 밖에 없다. 양반은 그 극한 상황에서도 자기의 권위나 지배욕을 충족시키려 할 것이고 부인은 비록 제 자식이 아니라 할지라도 본능적으로 어린애를 보호할것이다. 광대는 그 상황을 어떻게 통과 할까? 재담과 소리로서 살아 부지할 수 밖에 도리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소리는 운명론이나 숙명론이 아니며 좌절과 포기 끝에 도달하는 체념주의도 아니다. 그렇다고 순리에 따라야한다는 분수주의는 더욱 아니다.
사람의 욕망이나 이상은 끝이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달성하고 못하는것은 개인 능력에 달려 있다. 같은 나무 토막에 매달린 사람들의 이상이나 욕망은 궁극적으로 같은것 즉 잘사는것, 훌륭하게 살자는것,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현재의 불행,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자는 것이다. 어떻게하면 해방될 것이며, 행복을 움켜쥘수 있을까?

광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는 광대답게, 소리로서, 재담으로서, 환상적인 얘기를 신바람나게 엮어냄으로서, 그 불행한 군상들, 미래를 예측할수 없는 절망적 상황속에 떨고 있는 영혼을 달래줄수 밖에 없다. 미래에 대한 확실하고도 논리적인 희망이나, 영생의 약속, 천국이나 극락세계로 간다는 확신을 주는 따위의 역할까지 광대가 할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광대가 신선과 같은 비현실적 존재여야 한다는 뜻은 더욱 아니다. 그 광대도 그 현실속에 실존하는 사람이다. 다만 현실적 존재자로 서의 자각은 있으되, 그가 할 수 있는 역량의 구역이 있을 뿐이다. 현실에 대한 자각을 광대답게 해내야 한다는 말이다.

<애오라지>는 도깨비 얘기 같은 연극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혀 비현실적으로 전개되는 연극이다. 굳이, 근거를 대라 하면 도깨비 얘기를 많이 들어왔던 어린애가 꿀 수 있는 꿈같은 연극이라 할까? 주제가 뭐냐고 묻는다면 이것이다라고 꼬집어내어 대답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주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주제란 의식적인 것도 있고 심층심리에서 우러나오는 무의식적인 것도 있는 것이니까. 광대만이 지니고 있는 신명과 재능과 멋, 그것이 광대의 진실이며 광대의 삶의 의지이며, 광대만의 영광일 수 있는것이니 그 밖에 또 무슨 주제를 기대한단 말인가. 역사적 진실, 현실적 진실, 영원한 진실의 참 얼굴을 찾아보려는 일은 보통 인간이면 누구나 하는것이다. 농사꾼이 어떻게 하면 농사를 잘 지을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과, 과학자나 철학자가 우주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연극인은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 가운데 자신에게 절실한 문제, 헤어날 길 없는 관심사를 보다 연극적으로 형상화하는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통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원기를 얻게 하고 아울러 연극인 자신들의 삶의 멋을 확인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예 창단 이래 함께 연출작업을 해오던 손진책이 처음으로 내 졸작의 연출을 맡아준 것 기쁘기 그지없고, 단원들의 열성과 창의력으로 엉성한 작품이 보완되어 되도록 연극답게 되어졌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늘 염려해주시고 도와주시는 민예의 후원가족 여러분께 감사한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상열 '까치교의 우화' (1) | 2026.01.19 |
|---|---|
| 정소정 '모래섬' (1) | 2026.01.18 |
| 박승희 '홀아비 형제' (1) | 2026.01.17 |
| 이병도 '사람들, 그의 꿈' (1) | 2026.01.17 |
| 전성태 원작 '여자 이발사' (1) | 2026.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