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승희 '홀아비 형제'

clint 2026. 1. 17. 11:46

 

 

폭설이 내리던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산골에 사는 우애 좋기로 소문난 형제는

친구와 함께 수다를 떨고 난 후 잠자리에 드는데,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 소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한 여인이다.

과연 그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눈보라가 치는 밤길에 길을 잃고 찾아온 여인은 산속을 헤매다가

이 집을 보고 들어온 것이고 길을 잃고 며칠을 굶어 기력이 없는데...

친정엄마가 위중해 걸어서 고성까지 가려다가 그만 눈길에 길을 잃은 것이다.

이 여인에게 저녁밥을 새로 해서 먹이고 잠자리를 봐주는 와중에

형과 아우는 묘한 견제와 갈등을 보인다.

 

 

 


형제는 여인의 환심을 사려고 서로 묘한 다툼을 벌인다.

그러나 여인의 실체가 탄로 나고 형제의 목숨은 위태로워진다.

다음 단계에서 이 모든 것은 동생의 꿈이었음이 밝혀진다.

마지막 장면은 꿈에서 깨어나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오는 해피엔딩으로 꿈이 오히려,

꿈이 아니고 홀아비 형제들의 우애가 현실에서 결실을 맺는다.

 

 

 

홀아비형제는 근대극이 우리나라에 도입되던 시기에 연극 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하였던 연극인 박승희 선생이 남긴 4편의 희곡중 하나이다.

동경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었던 토월회를 이끌었고

그 후에는 태양극장활동을 하였던 그는 희곡을 쓰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아직 희곡문학이 정착하지 않았던 1920년대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완성도 면에서도 성공적이라고 여겨진다.

그의 극의 구조 인물 대사 주제 면에서 매우 안정감이 있고

관객을 쉽게 몰입시키는 장점이 있다.
1928년 5월 '불교' 지에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 작품은 1932년 8월 극단 [화조회]가 공연을 하였다.

<홀아비 형제>는 우리가 어렸을 때 화롯불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에게 들었을 법한 설화적인 소재를 취하고 있다.

 

 

박승희 작가
1901 서울~ 1964. 7.15. 극작가. 호는 춘강(春崗). 1923년부터 23년 동안 제작·각본·연출·무대장치를 맡아보면서 한국 신파극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대한제국시대 초대 주미공사를 지낸 박정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세이소쿠[正則] 영어 학교를 거쳐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영문과에 들어갔다. 대학 재학 중인 1923년 김복진·김기진·이서구 등과 함께 토월회를 조직한 후 실질적인 지도자로서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연극 발전에 투자했다. 1923년 7월 4일 토월회의 제1회 공연 때는 유진 피롯의 〈기갈飢渴〉, 안톤 체호프의 〈곰〉 등 서양 근대 단막극 3편과 자신이 쓴 〈길식 吉植〉을 공연했다. 제2회 때는 조지 버나드 쇼의 〈오로라〉를 번역하고, 마이아 펠스타의 〈알트 하이델베르크〉의 주역을 맡았는데, 이때 이월화와 염문이 있었으나 이월화가 토월회를 떠나면서 헤어졌다. 제2회 공연을 마치고 창립 동인들이 탈퇴하자, 토월회를 직업극단으로 바꾸었다. 1925년 3월 광무대를 토월회의 전속극장으로 계약하고 자신이 쓴 〈산서낭당〉과 각색한 〈희생하는 날 밤〉을 공연했다. 이때 한국의 극단에서는 최초로 여배우 복혜숙·석금성에게 월급을 주었다. 1926년 4월 자금이 부족해 제56회 공연을 끝으로 토월회를 해산했다. 1928년 10월 우미관에서 토월회의 재기공연을 갖고 자신이 쓴 〈이 대감 망할 대감〉과 김우진과 윤심덕의 사랑을 그린 〈사(死)의 승리〉, 일제강점기의 암담한 민족 현실을 다룬 〈혈육〉 등을 공연했다. 또한 1929년 11월초 조선극장에서 가진 공연 때는 일제에 땅과 곡식을 빼앗기고 북간도로 떠나는 민족 현실을 그린 대표작 〈아리랑 고개〉를 발표해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일본경찰의 탄압을 받아 토월회는 완전히 해산되었다. 1931년 방송극협회를 조직하고, 극단 '대장안'(大長安)을 창단했으나 한 번도 공연하지 못했다. 해방직후 토월회의 옛 단원을 모아 자신이 쓴 〈사십 년〉·〈의사 윤봉길〉·〈모반의 혈〉 등을 공연한 뒤 연극계를 떠났다. 1963년 〈사상계〉 5~7월호에 연극계를 회고하는 〈토월회 이야기〉를 발표했다. 번안·번역·창작한 작품이 200여 편에 이르렀으나 전하는 것은〈이 대감 망할 대감〉·〈혈육〉·〈홀아비 형제〉·〈고향〉 등 4편뿐이고, 이중 〈아리랑 고개〉는 당시 연출을 맡았던 박진의 회고에 의해 전한다. 1963년 6월 제1회 한국연극 상을 받았다.

박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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