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 에이꼬는 이발사 아버지 밑에서 이발 기술을 배우며 살아갔지만
아버지의 폭력과 손님들의 희롱을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게이샤가 되기로 한다.
게이샤 수련을 받던 중, 조선인 김태수와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되어
조선으로 오지만 전쟁 후 조선으로 온 일본인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심지어 일본인 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빼앗기게 되고,
엄마이자 한 남자의 여자로 6.25 전쟁의 격변기와 한국 근대기를 힘겹게
버텨나가며 살아가는 에이꼬의 이야기이다.

극단 가음에서 2013년 밀양예술축제 초청작으로 만들어진 순수 창작 음악극으로
거창국제연극제 국내 경연부문 대상과 연출상을 받으며 인정 받은 작품이다.
전성태 원작 소설을 정호붕 각색, 연출하였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소설 이야기에
연극적 상상력을 동원한 미니멀한 무대와 서정적 음악으로 풍성한 울림을 만들어낸
음악극이다. 가야금, 소금, 대금, 해금이 만들어내는 국악기의 선율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애절하면서도 따뜻하게 품으며 극의 감동을 증폭시킨다. 처연한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는 등장인물의 인생을 넘치지 않는 슬픔으로 담아내 한국의 정서에
딱 맞는 극으로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과 만남을 갖는다.

해방직후 일제 강점기에 나라잃은 설움을 겪은 조선인들의 울분 속에
서울 청계천변에 흘러들어 '이발관을 꾸려가는 '일본인 아내' 에이코는
그곳에서 3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지낸다.
그저 아내가 있는 한 남자를 사랑했고 버림받고, 아이를 낳고 빼앗기고,
결국 쓸쓸하게 죽어가는 기구한 인생 속에 우리는 그녀를 감싸 휘몰아치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폭력에 주목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근대화를 '아리랑'처럼 굴곡있게 관통하는
서사성과 달빛아래 게이샤가 타는 샤미센의 선율같은 서정성이 씨줄과 날줄로
어우러져 빙글빙글 돌아가는 붉고 하얀 이발소 기둥처럼 회오리치는 감동을 준다.

<여자 이발사>는 1945년 이후 처지가 뒤바뀐 두 나라, 조선과 일본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흔히 알고 있는 피해국과 가해국의 이야기가 아닌,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 파묻혀 버리는 개인사(個人史)에 초첨을 맞춘다. 하룻밤 사이에 통치국의 국민에서 패전국민으로 전락한, 한없이 처량하고 청승맞은 여인 에이꼬의 일대기를 계면조(界面調)로 풀어내기 보다 세 명의 여배우의 입을 빌어 객관적이면서 담담하게 풀어낸다. 조선에서 살아가는 일본인 여자로 겪는 수 많은 난관 속에 에이꼬는 시간을 견디어내며 쓸쓸한 웃음으로라도 상처를 달래는 힘을 얻는다. 정호붕 연출은 오히려 이 작품을 슬프지 않고 아름다운 것으로 풀어내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무언가를 만나게 된다. 자식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그 사랑은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약속도 없고 알아주리라는 보장도 없다. 심지어 자신이 받고 있는 사랑을 알지 못하기도 하거나, 깨닫기도 전에 자신에게 사랑을 주었던 누군가를 떠나 보내기도 한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흔한 말처럼, 에이꼬 역시 자신이 주기만 했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의 말미(末尾)엔 자신이 한없이 받았던 사랑을 깨닫게 되며 용서와 화해를 구한다. 에이꼬가 겪었던 슬픔이 더 이상 슬픔이 아니도록 그녀를 보듬어준 힘이 있다면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러한 의지처(意志處)가 되어주는 것은 어떠한지 음악극 ‘여자 이발사’는 조용하게 외치고 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박승희 '홀아비 형제' (1) | 2026.01.17 |
|---|---|
| 이병도 '사람들, 그의 꿈' (1) | 2026.01.17 |
| 고향갑 '또 하나의 진실' (1) | 2026.01.16 |
| 뮤지컬 '기억하시나요, 그 날을?' (한강은 흐른다) (1) | 2026.01.15 |
| 한아름 '호야' (1) | 2026.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