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더운 여름, 조선. 두 아이를 사산하고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없는 중전은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한지 오래되었으며 그런 중전의 자리를 대비와
그의 조카이자 후궁인 숙원이 노리고 있다.
왕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노력하나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끊임없는 상소문과
위협으로부터 결코 그 자리가 안전하지 못하다.
한편, 중전의 오라비인 한자겸과 오래전부터 그가 연모하던 왕의 여자
귀인 어씨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이는 대비의 음모로 인해
궁궐로 퍼져나가 역모에 연루되어 한자겸이 자결하는 사태로 번진다.
이 사건으로 귀인 어씨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왕에게 성은을 입어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되었음이 밝혀지고, 한자겸이 자결한 그날밤,
혹독한 문초끝에 귀인 어씨가 숨을 거두자
궁궐의 여자들은 한목소리로 임금에게 사람답게 사는 것,
정을 나누며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제목 ‘호야(好夜)’는 사랑하는 사이의 여자와 남자가 밤에 벌이는 이야기란 뜻이다
'조선 연정 스캔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작품은 서구 예술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또는 원탁의 기사 랜슬롯과 귀니비어 왕비의 사랑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왕비가 왕 몰래 기사 또는 용맹한 장수와 비극적 사랑을 나누는 얘기들이다.
2006년 초연 이후 잊을만 하면 공연되는 작품이다.
<호야>를 쓴 한아름 작가의 시각은 새롭다. 그는 '흔히 축복으로 묘사되는 왕의 성은이
권력을 이용한 성폭행과 다름없는 것은 아니었을까?',
또 '조선시대 여자들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에서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독특한 것은 이 연극의 형식이다. 연기를 하면서 배우가 지문까지 대사로 처리하니까.
지문은 희곡에서 해설과 대사를 뺀 나머지 부분의 글을 말한다.
등장인물의 동작, 표정, 심리, 말투 따위를 지시하거나 서술하는 것으로 배우에 대한 작가의
요구사항 같은 것이다. 보통 같으면 배우는 이 지문에 따라 연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호야>는 기존 연극의 공식을 완전히 깬다. 배우가 자신이 해야 할 동작이나 표정, 말투를
설명해 놓은 지문을 대사로 먼저 던져놓는다. 그리고는 그 말 그대로 연기한다.
약간 우스꽝스럽지 않을까? 그러니까 배우가 지문까지 읽는 이 형식은
비극적 사랑을 그린<호야>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국내 연극에서 처음 시도되었다고 하는 이 형식은 극의 비극적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극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연출의 힘이다.

"처음에는 (지문을 대사로 소화해 내는데) 많은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연기가 흐트러지지 않을까 걱정도 됐고요. 하다 보니까 오히려 지문에서 주는
정확한 정서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왕은 노기에 떤다.', '단호히 일어선다.'같은
지문들이 그런 정서를 정확히 연기로 전달하는데 안전장치를 하는 것 같아요."
이 연극에서 왕의 역할을 맡은 배우의 말이다.
관객들도 처음에는 약간 혼동을 일으켰으나 극이 진행되면서 지문의 역할을
이해하고 즐거워했다고 한다.

'호야'는 사람답게 산다는 것, 정을 나누고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꽃밭을 거닐어 보는 것,
아프면 울고 좋으면 웃고 화나면 소리치고 기쁘면 호탕하게 웃어보는 것.
연극 '호야'는 사람처럼 사는 것을 그리워했던 궁궐 여인들의 소리 없는 울음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늘을 살아가는 관객에게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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