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철영 '오만스럽게, 완벽하도록'

clint 2026. 1. 4. 14:00

 

 

무대는 서남해의 무인도에 집.
이 집에 남자 '서'와 여자 '안'이 살고 있다.
15년전 한 남자를 폭행으로 살해하고 그의 아내를 납치하듯 데려와
이곳에서 터를 잡고 집을 짓고 산지 15년.
80분 후면 그의 폭행치사 혐의의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카리스마에 광기가 있는 '서'에게 인질 비슷하게 끌려와
밥해주고 농사하고 부부같은 생활을 한지 15년. 지금은 그때의 분노가 
다 없어진듯, 이 생활이 익숙해져간 30대 후반인 '안'이다.
지금도 그와 놀이인 상황극을 매일 즉흥적으로 한다.
다만 오늘 공소시효가 만료되면 상황이 바뀌는데 
아직은 그후의 계획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비바람이 부는 저녁에 웬 배가 이 섬에 들어오고
순간 긴장하는 '서'와 '안'
그는 경찰일까? 혹시 그를 추적하는 사람일까?


이 작품은 2008년 신작희곡페스티벌에 당선된
김철영의 <오만스럽게, 완벽하도록>이다.
(날 물어뜯은 개, 극토록 메타적으로 만든 뒤 잡아라!)란 부제가 달렸다.
추리극 형식으로 공소시효를 앞둔 살인범의 일상과 그와 불편한 동거를
하는 여인, 그리고 그를 추적하는 남자가 벌이는 두뇌게임식의 추리극이다.
추리극은 예의상 스토리를 밝히지 않는 것을 이해해주시기를.

밑의 댓글에 있는 등장인물의 배역내용에 약간의 힌트가 있고
마지막까지 전개가 예측이 안되는 작품이다.

 


당선소감 - 김철영
평생 제값을 받고 판매한 그림이라곤 단 한 점뿐인 그는 배가 고팠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원색의 회화 몇 점..... 그 중 하나를 택해 거리로 나와 본다. 코를 메워 당기는 고소한 말의 냄새. 걸음은 이미 수하에 있지 않았다. 똑똑똑, 물물교환을 시도한다. 하지만 일개 상인에겐 불필요한 장식물일 뿐, 결렬된다. 그리고 이젠 구걸을 한다. 물론 그는 지금 자신이 무얼 하는지, 무엇을 버리는지도 모른다. 빵을 얻어 다시 방, 웃옷을 벗을 틈도 없이 빵을 탐닉한다. 전쟁이 끝난 후 승전보를 울리는 전사의 기분으로 눕는다. 방을 감상한다. "어? 그림? 내 그림이 어디 갔지? 도둑이 들었나? 도둑이 내 그림을?" 하지만 그 어떤 도둑도 자신의 그림을 탐내지 않을 거란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순간 그가 받혀온 선과 색의 영혼은 빵 한 조각이다. 순간은 영원토록 지속된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미흡한 작품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늘 옆에서 도움을 주는 극단 각인각색 식구들, 극단 쥠 식구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연극을 알려주신 이근희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극작을 가르쳐주신 차근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지 않겠습니다. 

 


심사평 - 심사위원 고연옥, 박정희, 조만수
제11회 신작희곡페스티발에는 응모한 총 65편의 희곡 중 김철영의 <오만스럽게 완벽하도록>과 안재승의 <누가 무하마드 알리의 관자놀이에 미사일 펀치를 꽂았는가?>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좋은 희곡 작가의 부재를 말하는 목소리를 흔치 않게 듣게 되지만, 응모작들은 그러한 지적이 단지 부분적으로만 진실이라는 점을 알게 해주었다. 응모작 대부분은 자연스런 극언어를 구사하고, 탄탄한 극구조를 구축했으며, 더불어 개성있는 인물을 창조했다. 허구적 사건을 전개하기 위한 기술적 완성도에 비해 주제가 불분 명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김철영의 <오만스럽게, 완벽하도록>는 제목에 걸맞게 매우 '오만스러운' 작품이다. 복수극을 다루는 작품들이 늘 그러하듯 말미의 급반전을 요구하는 작품이지만, 이 반전을 위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은폐하기 보다는 이를 노출하는 놀이를 즐기고 있다. 복수가 작중 인물에게 하나의 잔인한 놀이가 되듯이, 작가에게 이 복수의 극은 글쓰기의 놀이가 된다. 그런데 때로는 이 글쓰기의 놀이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무상한 유희가 되어버리는 위험에 당착하기도 한다. 이 유희 속에서 인물은 인간의 목소리를 상실하고 작위적인 언어의 발화자가 되기도 하지만 작가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놀이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3명의 심사위원이 3편씩 제시했던 최종 후보작이 8편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글쓰기의 방식을 취한 이들 작품들이 비슷한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두 편의 당선작을 다른 후보작에 비해 더 높이 평가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주제를 그에 적합한 형식 속에 담으려는 도전적 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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