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동이향 '암전'

clint 2025. 8. 20. 09:28

 

 

연극 ‘잊혀진 부대’의 공연장에서 안내원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지혜. 
극장주위를 맴도는 노숙자는 지혜의 도움으로 가끔 극장에서 몰래 잠잔다. 
민은 ‘잊혀진 부대’에서 군인역을 맡은 배우이자 지혜의 유부남 애인이다. 
공연의 피아노 조율사 H는 항상 같은 장면에서 공연장을 뛰쳐나오고, 
그리고 H는 이지혜를 보며 5년 전에 자살한 딸을 떠올린다. 
그리고 H는 이지혜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기 시작한다. 
H가 참전용사임을 알게 된 지혜는 작품에 대해 민이 고민하자 H와 만나볼 것을 

권유하고 민은 H의 집을 찾아가 배역의 몰입을 위해 그의 도움을 얻고자 한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오빠의 유품이 전시돼 만져볼 수 도 없는 정....  

연극 잊혀진 부대로 이어진 그들은 각자의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다. 

 

 


연극 <암전>은 H, 이지혜, 민, 노숙자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인물들의 내면으로 향하는 어둠이 ‘연극’과 

‘암전’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연극배우인 민은 전쟁을 배경으로 한 연극에 출연하면서 

‘자기 자신이 아닌 인물’과 싸운다. 그는 참전용사 출신 H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싸움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한다. 전쟁에서 많은 죽음을 마주했던 H는 전쟁터가 아닌 

일상의 삶 속에서 겪은 또 다른 죽음인 딸의 자살을 통해 전쟁만큼 차가운 현대사회의 

현실과 피폐함을 마주하고 있다. 불안함에 안주하면서도 명품가방에 쉽게 흔들리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지혜를 통해 H는 결국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딸을 떠올리며 

현실의 비애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된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또한 민이 배역 몰입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듯 전쟁에 맞서고 있을지도 모르고, 

지혜의 비정규직 삶처럼 전쟁 앞에서 불안에 떨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H처럼 전쟁을 이미 겪었을 지도 모르고, 

아니면 정처럼 전쟁을 겪은 누군가의 곁에서 힘들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불안은 우리의 불안과 맞물려 위로가 된다.

 



「암전」은 전쟁과 패자의 연극이다. 
극장의 무대를 주 무대로 하고 있는 이 극은 죽여 주지도 않고 살려주지도 않는 전쟁의 패자, 포로, 함몰과 멸실, 그리고 죽은 자의 군복을 담고 있는 무대 한편의 깊고 어두운 구덩이다. 그 속에서 자본의 시혜- 사실은 껌딱지- 같은 소비의 대상은 마치 애틋한 첫사랑인 양 행세한다. 젊은 여자는 유부남 배우의 몸 한편을 잠시 소유하고, 지문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이지혜, 가방을 들여다본다. 살까, 말까, 살까, 말까 살까, 말까...'
작가의 이분법은 공간에 대해서 더 민감하게 드러난다. 안과 밖, 있는 데, 없는 데, 밝은 곳, 어두운 곳... 여기서 빈 건 빈 어두움이다. 문을 닫은 극장 로비, 조명이 꺼진 무대, 무대 안의 피아노 속, 무대 어딘가의 구멍, 직경 30센티의 땅굴, 무엇보다도 안구를 잃은 빈 눈구멍. 그 구멍에는 손가락이 3개 들어가고, 이지혜가 사고 싶은 가방에는 '여기 여기 주머니 있어서 딱 지갑 꺼내기 좋고, 그리고 박물관에 전시된 군복 앞에 선 여인, "한 번만 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볼게요. 저 안에 염주가 있을 거예요. 오빠가 그랬어요. 어머니 염주를 여기에 넣고 꿰매다녔다고. 우리 오빠 거예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날 오빠는 사이공에서 실종되었단다.
무대 구멍 속. 노숙자는 안수명의 목소리를 낸다. 안수명. 일본으로 끌려 간 안중근의 먼 친척, 선박 난간이 높아 바다가 하나도 안 보였다는 어린 그는 조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구덩이 같은 세월을 보낼 것이다. 이 연극 속의 구덩이 같은 연극 '잊혀진 부대'는 극장 문 밖으로 이런 대사를 내보낸다. 
 "조국이 우리를 기억할까요? 내가 죽어 조국이 날 잊는 게 나을까요? 내가 살아 이 여기를 못 잊는 게 나을까요?"
역사 속의 수많은 죽음과 상처와 그 희생자들을 기록 뒷장의 구덩이와 어둠 속에 간직하며 동이향은 우리를 '별 없이 까만 밤'으로 손잡아 끈다. (박상현의 작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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