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우봉규 '눈꽃'

clint 2025. 8. 19. 20:13

 

 

막이 오르면 스탈린 집무실. 극동지역에서 일본과의 마찰을 없애기 위해 
연해주의 조선인들 18만5천명을 카자흐 등으로 추방하는 문서에 서명한다.
그리고 1937년 8월 아비규환속에 조선인 강제이주가 시작된다.
식민지라는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 강제로 삶의 터전을 잃고 우여곡절 끝에 
만주 돈화에 정착한 한 가족의 삶을 담담하게 추적하고 있다.
1937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될 때 

여기에서 빠져나와 북만주로 이주, 새 마을을 개척한 촌장 김정 가족의 역사를 

통해 한민족의 수난과 그 극복의지를 그리고 있다. 
1943년 북만주 돈화. 이 지역은 중국인의 텃세가 심하고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어 한인들이 농사짓고 살기 녹록치 않다. 그래도 한인 촌장격인 김정은 
중국측의 족장을 만나 협의해 수로를 개척하여 논농사를 짓고 쌀과 식량을 
재배하여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촌장에 대한 불만이 있다.
중국놈들에게 수로 사용료를 내는 것도 그렇고 젊은 혈기에 일본놈과
싸우자는 등 사고방식이 틀린 것이다.
김정의 아들인 상영도 장래를 약속한 서연에게만 말하고 블라디보스톡에 가서
러시아 정보장교를 만나고 그는 상영의 항일 감정을 이용해 원산지역 

첩보활동을 맡긴다. 원산으로 가는 상영. 얼마 후, 그는 일본군에 잡혀 처형된다.
이 소식은 상영이 죽은 한참 후에 친구 덕수가 블라디보스톡에 가서 확인해
알려진다. 마지막 장에서 다음 세대로 면면히 전해지는 흙 한 줌은 바로 떠난 
이들의 고향이다. 두만강 너머 이역 땅으로 온 김정의 부모가 고향땅을 향해 

절하며 앞에 놓았던, 김정의 품에 간직된 그 흙 한줌은 죽은 아들의 약혼자 
서연에게 건네진다. 서연은 일단의 젊은이들과 함께 "우리 손으로 땅을 일구고

 마을을 세우는 일은 우리가 싸워서 찾은 땅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라고 말하며 광복군을 찾아 떠난다.

 



「눈꽃」은 궁핍한 조국을 등지고 러시아땅까지 찾아간 한인들이 항일과

이데올로기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는 이야기이다.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또 한번 뿌리가 뽑혀 우여곡절끝에 만주에 정착한

한인들은 기득권을 가진 중국인의 일방적인 요구에 시달리고 항일운동이

국내외에서 치열해지면서 극심해지는 일본군의 횡포에 희생된다.

또 소련당국은 블라디보스토크 이주를 희망하는 한인들을 냉대하고 오히려

항일 의지만 이용할 뿐이다. 대처방법을 놓고 신구세대가 갈등하다가

결국 구세대는 지금까지 일궈온 땅을 지키고

젊은이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것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광복 50주년기념, 국립극단과 한국일보사 공동주최 창작희곡 공모작품으로. 

1930년대 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되는 도중 도망쳐 만주땅에서 마을을 이룬 

한인들의 이야기로 국립극단 제164회 정기공연(1995. 8월)으로 김석만 연출.
이념논쟁과 분단으로 인해 사장되었던 삶의 기록을 되살려 이야기한다는 

의미에서  <눈꽃>은 가치있는 작품이다. 한반도 모습을 객석으로 돌출시키고

북방의 지형을 주요무대로 형상화한 무대장치가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던

역사의 현장을 끌어 당겨 비로소 재조명하는 의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정 독립운동가를 영웅화하기보다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대중의 생존의식에 초점을 맞췄다"는 작가 우봉규의 말처럼 원작은

김정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조국의 개념이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조국은 열차 창문으로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풍경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보다도 나에게 중요한 것은 '자아'와 문제이고, 그것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라기보다 '철학적 차원'의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억압자와의 투쟁보다 더 어려운 주제다. 왜냐하면 '외부'의 억압은 눈에 보이지만 '내부'의 억압은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데올로기가 종언을 고한 이 시대에 작가는 무엇을 쓸 수가 있는가. “지금은 이데올로기를 운운하는 사람이 훌륭한 게 아니라. 그 사상이나 신념을 인간으로서 실천하는 사람이 감동을 준다."
이 글은 재일동포작가 이회성씨가 중앙아시아의 조선인들의 실상을 다룬 소설 <유역(流域)>에서 거론한 글이다.

아마. 대한민국 안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에겐 이회성씨의 견해가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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