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니컬러스 빌런 '엘리펀트 송'

clint 2025. 6. 29. 19:03

 

 

저명한 정신과 의사 그린버그 박사는 돌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료 의사 로렌스의 행방을 찾기 위해 마이클을 찾는다. 
정신과 환자 마이클은 이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열쇠지만 알 수 없는 코끼리와 오페라 얘기만 늘어놓는다. 
진실을 담보로 자신의 진료기록을 절대 보지 못하게 하는 마이클과 
점점 그의 게임에 말려드는 그린버그 박사. 
수간호사 피터슨은 그린버그 박사에게 그와의 게임을 조심하라며 
여러 차례 경고하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이클과 

위험한 계약을 맺고 마는데...
첫째, 나의 진료기록을 보지 말 것. 
둘째, 진실을 말할 시 나에게 초콜릿을 줄 것. 
셋째, 그 여자(수간호사)를 제외시킬 것.
과연 마이클이 던지는 아리송한 힌트 조각들은 그가 만든 미로를 
빠져나갈 열쇠일 것인가!



관객과 인물 간의 단서를 찾는 심리스릴러 '퍼즐' 게임. 
캐나다 작가 니컬러스 빌런의 데뷔작 <엘리펀트 송>은 부모의 하룻밤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가 겪는 존재의 위기, 사랑의 결핍, 집착 그리고 고독으로 인한 고통을 '반전이 있는 심리스릴러 게임' 형식으로 탐구한다. 2004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위치한 스트랫퍼드에서 초연된 <엘리펀트 송>은 빌런이 콘코디아 대학에서 창의적 글쓰기를 공부하던 시절, 수업과제의 일환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빌런의 나이 22~23세에 집필된 작품은 스트랫퍼드 스튜디오 시어터(Stratford's Studio Theatre)에서 먼저 초연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고, 이듬해 2005년 빌런에 의해 프랑스어로 번역된 버전이 몬트리올 무대에 소개되었다. 이후 호주 및 미국 공연을 거쳐 2013년 프랑스 파리 무대에 오른 <엘리펀트 송>은 100회 이상 공연을 선보이며, 몰리에르 어워드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15년 11월 아시아 초연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한 후 여러 차례 재공연을 거치며 꾸준히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연극 <엘리펀트 송>이 가진 매력은 무엇일까? 장면 구분 없이 1막으로 구성된 <엘리펀트 송>은 구조적으로 완결성을 가졌다고 보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또 극의 장소가 '정신병원의 닥터 로런스 상담진료실'로 시종일관 정해져 있어 무대연출도 단순하고 평범하게 느껴진다. 닥터 로런스가 행방불명된 이유를 추궁해 나가는 추리극과 같은 느낌으로 시작하지만, 극이 중점을 두는 것은 8년째 정신 병원에 수감 중인 23세 환자 '마이클 알린'이기 때문에 앞에서 궁금증을 촉발한 부분이 결말에 이르러서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게 되는 맥락도 존재한다. 하지만 <엘리펀트 송>은 그린버그와 마이클이 각자 원하는 것에 도달하기 위해 벌이는 언어의 줄다리기와 파워 게임, 숨겨진 마이클의 속내를 파악하려는 관객의 '퍼즐 맞추기'가 상당한 몰입감과 흡입력의 요인이 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끝없이 집중하게 만드는 인물 간 대화의 빠른 교환과 마이클의 대사 곳곳에 숨어있는 암시적 힌트가 극장을 나선 후에도 관객에게 지속적인 사유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마이클에 관한 정신 분석 기록을 보지 않은 채 의사가 아닌 병원의 운영자로서 로런스를 마지막으로 본 일에 대해 묻기 위해 온 그린버그와, "당신은 지금 나와 내가 원하는 것 사이에 서 있어요"라고 말하는 마이클의 팽팽한 대결'이 주를 이루는 연극은 관객을 자연스럽게 '목격자'의 위치에 가져다 놓는다. 예상치 못한 마이클의 선택과 충격적인 결말이 어떻게 가능해졌는가를 지켜본 목격자로서 관객은 극장을 나선 뒤 비로소 마이클이 남긴 모든 힌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행간을 잘 읽어 보라”는 마이클의 대사는 그린버그와 피터슨을 향하고 있지만 사실 관객을 심리스릴러 게임에 참여시키는 동인이기도 하다. 마이클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조금씩 밝혀지는 마이클의 과거와 함께 그 속내를 짐작하고 간파하려는 노력을 관객이 끊임없이 하도록 만든다. 어떤 의미에서 마이클은 단 한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단어 하나도 그냥 내뱉은 말이 아니라 나름의 연결 고리나 목적을 갖고 있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계획하고 움직이는 마이클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견고한 성을 쌓아나간다. 여러 상징과 암시, 은유를 담은 짧은 대사들이 관객의 머릿속을 헤집으며, 퍼즐을 조합하도록 만드는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하는 점은 이 <엘리펀트 송>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니컬러스 빌런(Nicolas Billon)
캐나다 극작가로, 1978년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태어나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성장했다. 2013년에 <그린란드>(2009)와 <아이슬란드>(2012), <페로 제도>(2012)를 3부작으로 엮은 희곡집 《폴트 라인》으로 캐나다 최고 문학상인 총독상을 수상했다. 데뷔작 <엘리펀트 송>은 2004년 스트랫퍼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으며, 2005년 빌런이 직접 프랑스어로 번역한 극본으로 몬트리올에서 프랑스어 공연을 선보였다. 2007년 오스트레일리아 세계 초연을 시작으로 뉴욕·런던·파리·터키·한국·일본·스페인을 거치며 오랫동안 호평을 받아 오고 있다. <엘리펀트 송>은 2014년 찰스 비나메 감독, 자비에 돌란 주연의 동명영화로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소개되어 큰 화제를 모았는데, 빌런은 직접 각색한 스크린 대본으로 2015년 캐나다 스크린 어워드 최우수 각색상과 WGC 장편 및 미니시리즈 부문 스크린각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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