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열리면 3류 호텔인 펑라이 호텔 로비. 작곡가 추다웨이는 술 마시며 작곡하고,
종업원은 식사 준비를 하고 있으며, 지배인은 프런트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이때 지배인이 한 서커스단의 전화를 받는다. 홍수로 교통 두절되어 갈 데 없는
서커스단이 투숙을 원하지만, 지배인은 방이 넉넉지 않아 12명을 수용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다음으로 사업가 후이판과 쩡화더가 체크아웃하려고 위층에서 내려온다.
하지만 북쪽향 교통편이 홍수 때문에 두절된 걸 알고 할 수없이 하루 더 묵기로 한다.
그들은 사업가로 내일 만기인 어음을 막지 못하면 파산할 위기에 처해있다.
그들을 방직회사 회장인 펑샤오바이에게 부탁해 만기를 3개월 연장를 요청한다.
후이판이 위층으로 올라가고 쩡화더가 술에 취해 탁자에 엎드려 잠든 사이
공교롭게도 그들이 만나려했던 펑샤오바이가 홍수 때문에 교통 두절로 비서 샤오딩과
함께 이 호텔을 찾는다. 펑샤오바이는 8년 전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던 아들이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다는 소식에 아들을 맞이하러 공항에 가는 중이었다.
이어서 등장하는 인물은 예야오즈 부부와 딸 예샤오전이다. 그들은 날씨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호텔 안에서 무료하게 휴가를 보내고 있다.
작곡가 추다웨이와 다투고 나갔던 허메이리 역시 교통두절로 호텔로 돌아온다.
주변 다른 숙박업소에도 손님이 가득해 투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추다웨이는 허메이리와 대화하던 중 자신이 3일간 거의 작곡을 못했다며 운다.
허메이리는 원하는 곡을 창작할 수 있을 거라고 추다웨이를 위로한다.
한편 펑샤오바이는 샤오딩과 식사하던 도중 신문에 자기 아들이 탄 비행기사고
소식을 접하고 크게 상심한다. 후이판과 쩡화더는 사정을 모른 채 그에게
어음만기를 늦춰 달라고 부탁했다가 그의 노여움만 산다.
이때 서커스 단원들이 들어온다. 지배인은 단호하게 숙박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커스단 단장 샤오는 엉덩이만 붙일 수 있으면 괜찮다면서 단원들에게
즉흥 공연을 해보라고 한다. 단원들이 물구나무를 서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춤추면서 공연이 시작되고 피에로는 주연이 되어 노래한다. 그는 로비에 앉아있는
사람들 주위에서 그들이 상심한 이유를 노래로 알아맞혀 그들을 놀라게 한다.
이 공연 때문에 지배인은 할 수 없이 이들을 묵게 한다.
두 시간이 지난 뒤, 서커스 단장 부부가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부인은 숙박비를 걱정하지만, 단장은 걱정 말라 한다. 이어 여자댄서 4명이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서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피에로가 늘 가면을 쓰는 이유를 토론한다.
다음으로 남자 단원들이 등장해 자신들의 꿈과 현실에 대해 얘기한다.
이어서 피에로와 개구쟁이가 이야기를 나눈다. 개구쟁이가 떠나고 피에로가 혼자
있을 때, 펑샤오바이가 피에로에게 어떻게 비행기 사고가 난 것을 알았는지 묻고
피에로를 자기 아들로 착각해 그간 아들에게 못했던 내면의 말들을 쏟아 붓다가
격분해서 피에로를 때린다. 피에로는 그에게 사고의 전환에 대해 이야기한다.
갑자기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피에로의 코가 검게 변한다. 피에로가 염라대왕이 된
것처럼 펑샤오바이를 심문하자 그는 그동안 저지른 악행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리고 술에 취한 추다웨이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다친다.
그는 새로운 곡을 작곡하고 싶어 하나 뜻대로 되지 않자 괴로워한다.
허메이리는 그를 위로하다가 결국 그와 다툰다. 피에로는 그들에게 다가가 진정
아름다운 음악은 경건하고 순수하고 아이처럼 천진한 사람만이 들을 수 있다 한다.
그러는 사이에 추다웨이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듣게 된다.
여기에 예야오즈 부부와 딸 예샤오전이 등장한다. 예야오즈 부부는 피에로에게
딸의 상태를 설명하고 예야오즈 부인은 딸이 피에로로 인해 눈빛이 달라졌다며
딸의 상태가 호전되길 바란다. 피에로는 예샤오전의 손 잡고 신비한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춘다. 음악이 멈추자 예샤오전은 큰소리로 울다가 기적적으로 말한다.
피에로와 예샤오전의 춤이 끝나자 펑샤오바이와 추다웨이가 피에로에게 다가온다.
펑샤오바이는 아들이 갑자기 일이 생겨 그 비행기를 타지 않은 덕분에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추다웨이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신비한 소리를 들었다고 알린다.
펑샤오바이는 기쁜 나머지 서커스단에게 공연을 요청하고,
후이판과 쩡화더가 부탁한 대로 어음 만기를 늦춰 주겠다고 약속한다.
무대 위 식탁은 옮겨지고 공연장이 마련된다. 서커스단은 마술, 차력, 공중제비,
권법, 노래와 춤을 선보인다. 마지막으로 피에로가 등장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1인극 형태로 들려준다. 국왕이 대신에게 즐거움이 무엇인지, 누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사람인지 질문하는 장면을 연기한다. 피에로가 대신을 흉내 내며
문제를 제시할 때, 2막 마지막 부분에 등장했던 피에로의 부인 왕페이페이가
피에로의 본명을 부르며 그가 쓰고 있던 가면을 벗긴다. 가면을 벗기자
피에로는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가리고 웅크린다.
다음날 새벽. 피에로는 가면을 벗은 채로 소파에 앉아서 부인과 대화를 나눈다.
그때 추다웨이와 허메이리가 위층에서 내려온다. 추다웨이는 자신이 태어난 이래
쓴 적 없었던 곡을 작곡했다며 그동안 자신을 괄시했던 이들을 놀래 줄 거라고 한다.
허메이리가 어젯밤 피에로와 있었던 일을 상기시키지만, 추다웨이는 그는 한갓
떠돌이 서커스단 어릿광대일 뿐이라며 피에로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말라고 한다.
둘은 산책 가면서 피에로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화를 들은 피에로는 상심한다.
이어 예야오즈 부부, 딸 예샤오전이 아침을 먹으려고 위층에서 내려온다.
부부는 딸 교육비 문제로 말다툼을 벌인다. 쩡화더와 후이판은 어음이 연기된 것으로
일이 완전 해결된 거라 볼 수 없고, 펑샤오바이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 불안해한다.
이어서 4명의 여자댄서가 등장한다. 댄서 병은 만류하는 데도 수영하려 한다.
댄서들이 베란다로 가고 나서, 펑샤오바이가 비서와 함께 위층에서 내려온다.
이때 쩡화더와 후이판이 다가가 어음 만기를 며칠만 더 연기해줄 것을 청하고
펑샤오바이는 지금 약속할 수 없으니 회사에 찾아와 그때 자세히 대화하자고 한다.
잠시 후 댄서 병이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으로 오해를 산다.
사람들은 구조원과 구조 장비를 찾고, 수영할 줄 아는 사람을 찾는 등 혼란에 빠진다.
이때 수영할 줄 모르는 피에로가 가면을 쓰고 바다 쪽으로 구조하러 나가자
왕페이페이는 괴로워한다. 댄서 병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수영해서 바다에서
나왔지만 피에로는 보이지 않는다. 댄서 병이 피에로가 수영을 할 줄 모른다고 하자
그제야 모두들 놀라며 피에로를 구하자고 허둥댄다.
그때 라디오에서 두절되었던 교통이 개통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 소식을 들은 펑샤오바이, 후이판, 예야오즈 등은 호텔을 떠나려고 한다.
피에로는 안 돌아올 거라는 왕페이페이 대사를 끝으로 막이 내린다.
<피에로>는 타이완 실험극 초창기 작품이며 야오이웨이의 대표작으로 1969년에 발표된 이후 1970년에 타이완에서 초연되었다. 1982년에는 중국에서 공연되어 중국 분단 이후 처음 타이완 극이 공연되는 신기원을 이뤘으며 1987년에는 일본에서도 공연되었다. 이미 영어, 독일어, 일본어로 번역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이후 각 대학 중문과 원어 연극 텍스트로 지주 시용되고 있다. 이 희곡은 중국에서 출판된 ‘20세기 중국 희곡 명작‘에 수록된 유일한 타이완 희곡으로, 타이완 현대 희곡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피에로>는 4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간은 24시간을 넘지 않으며, 장소 또한 한곳을 벗어나지 않는 등, 서양고전극 ‘삼일치’ 법칙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사실적인 스토리에 표현, 상징, 초현실적 요소를 융화해 고전과 현대를 조화했다. 이 작품은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 곤란에 처한 친지나 친구들이 신에게 곤란을 해결해달라고 빌면서 앞으로는 개과천선할 거라고 다짐하지만, 곤란이 해결되고 신에게 감사의 제사를 지낸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목격했는데, 이런 경험이 작품을 창작하는 동기가 되었다고 술회한다.
<피에로>가 초연된 1970년, 타이완에서는 집권당인 국민당이 반공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때문에 ‘홍(紅)’이라는 글자가 공산당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제목을 ‘즐거운 사람‘으로 바꿔 공연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옮겨 가고 나서부터 줄곧 반공 정책을 폈고, 계엄령을 통해 타이완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이 1970년대까지 계속 이어져 이런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 희곡은 당시 타이완 정치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창작한 시기는 친우이자 타이완의 진보 작가인 천잉전이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진보 인사들이 많이 잡혀가서 돌아올 수 있을지 그 여부를 알 수 없는 때였다. 댄서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든 피에로름 두고 왕페이페이가 “난 알아, 그 사람 안 돌아올 거야. 그 사람 안 돌이올 거라고!"라며 절망적으로 외치는 마지막 장면에는 이런 시대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반영돼 있다. 작가 본인도 1951년 공산당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누명을 쓰고 7개월간 구금된 바 있다. 그런 이유로 작가가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그대로 이 희곡에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피에로>는 자아를 상실한 피에로가 자아를 찾는 것을 그린 작품이다. 피에로는 삶에서 발생하는 온갖 거짓, 공허함, 냉혹함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안락하고 부유한 삶을 버린 채 사람의 가치 및 삶의 목적을 찾고자 집을 떠난다. 교사, 세일즈맨, 기자, 노점상을 두루 했지만,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남 앞에 서면 무서움을 탔기 때문이다. 그는 서커스단에서 피에로 역할을 하면서 가면을 쓴 이후로 자유를 느끼며 용기를 가지게 되고,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고 남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고 느낀다. 그는 왕페이페이에게 즐거움이 무엇이냐고 묻고 즐거움은 바로 희생이라고 말한다. 최후에 그는 물에 빠진 댄서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희생을 감행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영을 할 줄 모르는 피에로가 바다에 뛰어드는 것을 두고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살하려고 한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피에로의 행동은 “진정한 즐거움은 바로 희생이다”라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피에로가 자신의 행동들이 진정으로 뭔가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을 느껴 바다에 몸을 던짐으로써 자아 해탈을 추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야오이웨이
(姚一葦, 1922∼1997)는 극작가 겸 문예 이론가다. 원명은 야오궁웨이(姚公偉)이며, 장시 성 난창 출신이다. 1941년 푸젠 성 샤먼대학교 전기공학과에 진학했다가 후에 금융학과로 전과해 1946년에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연극 활동에 참가했으며, 연극 관련 서적 및 서양 명극을 섭렵함으로써 연극에 대한 기초를 닦았다. 이때 미발표 첫 작품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風雨如晦)>을 썼다. 1946년 대학을 졸업한 야오이웨이는 타이완으로 건너가 타이완은행에서 근무했다. 1951년 8월에는 공산당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누명을 쓰고 공안 기관에 잡혀가 7개월간 구금당한다. 독학으로 서양 미학, 철학, 문학, 심리학, 언어학 등을 익혔을 뿐 아니라, 중국 전통문화 및 현대 문화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그는 이런 지식을 토대로 은행에서 근무하는 동시에 1957년부터 대학에서 연극과 예술 관련 과목을 교수했으며, 연극론, 미학론, 문학평론을 발표했다. 1964년부터 중국문화대학 겸임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친다. 1982년에 타이완은행을 조기 퇴임한 뒤 ‘국립예술대학에 연극과를 창설했고, 학과 주임 및 교무처장을 지냈다. 인재를 배양하는 데 힘을 쏟은 덕분에 현재 타이완 연극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극인 다수가 그의 문하생이다. 1992년 퇴임한 이후에도 국립대북예술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1997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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