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원경 '수선화'

clint 2025. 4. 25. 10:33

 

 

과년한 딸만 셋을 둔 대학교수 내외의 집, 이 집 안주인의 이름은 김영숙.

어느 해 이른 봄, 김영숙의 생일날 아침, 남편 정원모는 자기 아내의 생일도 잊고

학교 연구실에서 돌아오지 않았건만, 영숙은 으례히 그럴 수밖에 없듯이

남편을 위한 아침상을 봐놓고 거기다 남편이 좋아하는 꽃 수선화까지 피워놓았다.

딸 셋은, 큰딸 순희는 엄마를 좀 닮았고, 둘째 옥희는 겉으로는 저만 아는 에고이스트,

그리고 막내 명희는 꿈을 그리는 낭만가이다. 그런데 이 집 생계는 남편 교수의 수입은

전혀 자기연구에만 쓰고 영숙의 삯바느질과 2층을 세준 방세, 그리고 순희와 옥희가

직장에서 받는 월급에서 좀 보태어가는 형편이다. 영숙의 딸들은 엄마의 쓸쓸한 모습에

동정하며 자기 아버지가 가정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한 것을 은근히 비난한다.

남편은 밤늦게나 대학에서 돌아온다. 그의 조수인 이창선한테서 남편이 곧 미 국무성초청

교환교수로 도미하게 될 것과 그 전에 연구 논문을 책으로 출판해야 할 것을 알게 된다

밤 늦게 큰딸 순희가 술을 먹고 돌아왔다. 아버지는 행실이 나쁘다고 딸의 뺨을 때린다.

순희는 술을 좀 먹은 터라 평소에 마음먹었던 아버지에 대한 반발이 폭발한다.

딸의 반발에 큰 쇼크를 받는다. 이때 이층에 세든 윤 영감은 의외로 젊은 여자를 데려온다.

 

 

 

 이튿날 순희는 어머니가 너무 남편만을 위하는 여필종부 관념을 버리라고 핀잔을 준다

그러나 영숙은 아버지와 연애하던 때의 수선화의 얽힌 사연을 얘기하며 순희를 달랜다

영숙은 정원모의 연구 발표 출판 때문에 걱정하며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남편은 순희의 일에 충격 받고 학교를 그만두고 윤영감을 따라 장사를 해보려 한다.

그해 가을! 둘째딸 옥희는 애인 감성환이 홍콩으로 전근가는데 따라간다.

그러나 옥희의 뜻은 어머니의 부담을 좀 덜려는데 있었다. 영숙은 드디어 집을 판다.

그래서 그 돈으로 남편의 출판비와 도미를 위한 준비금으로 보탠다.

그러는 동안 영숙은 기진맥진하여 쓰러지고 만다. 한 가정을 위해 또 남편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바쳐 왔던 영숙은 남편의 도미 환송 겸 출판기념일 날 남편의 성공을 보지 못한 체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만다. 정원모는 한 그루의 수선화와 그리고 영숙이가 그토록 애태웠던

출판된 책을 고이 잠든 그녀의 머리맡에 놓고 말없이 허공을 쳐다 보는 데서 연극은 끝난다.

 

 

 

 

오화섭 공연평 - 사랑이 주는 감동 <수선화> 
"(...) <수선화>의 인물들 가운데는 악인은 하나도 없다. 서브 플롯에 있어서도 수선화댁에 세들고 있는 윤노인(윤계영)의 인간성에 대해서 흐뭇한 온정을 느끼게 된다. 인생이 물같이 와서 바람같이 가는 것이라면 극히 겸허한 사랑과 희생 속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됨을 작자는 조용히 명상해보는 것 같다. 대사 역시 세련되어 있어 만족스럽다. 연출(박진씨)은 작품의 정서를 살려 원숙한 솜씨를 보여줌으로써 가위 연륜의 여유를 과시하였다. (...) 끝으로 국립극장에 바라고 싶은 것은 지나친 선전은 필요없다고 하더라도 공연에 필요한 PR은 해야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동아일보 1965.10.05. 7면.)

 

 

작가의 글 - 이원경

이 작품은 1950년대 후반 썼다. 그때에 나는 극단을 조직해서 지금의 국립극장인 市公館에서 공연을 가지려고 온갖 힘을 거기에 다 쏟았고 그때 병중인 아내는 몸이 불편함 속에서도 나의 公演費를 끌어들이느라고 동서분주, 급기야 공연의 막은 올랐다공연은 그때 벌써 기울어져가는 연극이어서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첫날, 관객의 수가 적었다는 말을 들은 처는 크게 쇼크를 받았나 보다. 그로부터 나흘 후에 죽었다. 자기가 끌어온 빚을 어떻게 갚을까 그게 큰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법적으로는 상관없는 살인을 한 셈이다. 그래서 나는 회의를 했다. 남편을 통해 이렇게 자기희생을 하는 것은 좋은 체험이라고 칭송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죽은 뒤에 그 사람을 통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를 생각한 끝에 그 한 가지로 그 사람을 추모하는 희곡을 써서 그것은 무대에나 책으로 출판해서 그 사람과 친했던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 작품이 <수선화>이고 먼저 文學잡지에 연재해서 그 책을 그녀의 동창, 다정한 親友들에게 돌렸다. 그 후 무대에 올릴 기회가 여의치 않은 데다가 해가 너무 바뀌어 잊혀졌는데 국립극단에서 정기공연으로 올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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