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경. 빈소재 종합대학병원 병원장 베른하르디 교수는 낙태수술 도중
과다투약으로 환자가 섬망 증세를 보이자 종부성사를 위해 찾아온 레더 신부를
돌려보낸다.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차있는 환자에게서 종부성사로
사망선고를 할 수는 없는 일. 하지만 환자는 병실 밖에서 들려오는
베른하르디 교수와 신부의 대화를 듣고 절망해 어찌해 볼 틈도 없이
사망해 버린다. 이 스캔들은 엉뚱하게도 유대인 출신 병원장이 가톨릭을
모독한 것으로 비화해 버린다. 신성모독죄로 재판에 회부된 베른하르디.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는 대중의 항의를 불러일으킨다. 베른하르디가 사제를
때렸다는 거짓 증언과 조작은 고질적인 반유대주의를 부추긴 것이다.
베른하르디는 재판을 받는다. 부패한 사법관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가진
부원장 에벤발트 교수는 베른하르디가 재판을 피할 수 있는 제안을 한다.
자신이 추천하는 피부과 과장을 임명하는데 동의하는 조건이다.
베른하르디는그 제안을 거부하고 실력이 있는 유대계 벵어를 임명한다.
그리고 재판 결과 두 달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투옥되고, 의사자격증을
잃게 된다. 그는 그 결정에 대해 항소를 거부한 것이다.
투옥 직전 레더 신부의 방문을 받는다. 레더는 베른하르디가 의사로서의
의무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했다고 인정한다.
그의 공백을 대신해 에벤발트 부원장이 원장직을 맡으면서 병원 내
권력 다툼이 심화되고, 재정상태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2개월 후, 출소된 그는 수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다.
1900년경 빈 소재 병원을 배경으로 병원장인 유대인 베른하르디가
병원 내 권력 다툼에서 반유대주의의 희생양이 되어 가는 과정을 날카롭고
면밀하게 그려냈다. 방대한 분량에 긴밀한 구성은 슈니츨러의 극작가로서
노련함을 보여준다. 작가가 인간 내면 풍경에 집중했던 전기 경향을 극복하고
사회적 문제로 문학적 지평을 넓혀가는 도정에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912년 발표한 이 작품은 반유대주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 5막 희극으로,
검열법에 따라 빈이 아닌 베를린에서 초연되었다.
<베른하르디 교수>는 최근 세계적인 두 연출가의 선택을 받아 재조명 중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연출가 오스터마이어와 영국 연극의 미래로 평가받는 로버트 아이크가 작품의 시의성에 주목해 현대적 감각의 <베른하르디 교수> 무대를 선보인 것. 특히 관객, 평단의 찬사를 받은 아이크 연출의 <더 닥터>는 2023년 한국 국립극장 엔톡라이브로 국내 관객에게도 소개되었다. 타자 혐오와 차별 위험성에 대한 주제는 작품이 발표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베른하르디 교수>에서 베른하르디는 자신을 지지하는 친구와 동료들에게조차 '고집스럽다'는 핀잔을 듣곤 한다. 특히 그는 종교와 정치, 심지어는 직장내 정치에 의해 의사로서 자기 신념이 왜곡되고 호도되는 곤란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어떤 대응도 하지 않는 등 융통성 없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이는 외부의 힘으로 부터 왜곡되기 쉬운 자기 원칙과 신념을 지키기 위한 베른하르디만의 고유한 전략이다. 베른하르디의 이러한 원칙주의는 반유대주의라는 거대한 주제에 가린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제로, <베른하르디 교수>는 슈니츨러의 작품에서 유일하게 끝까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인물이라는 슈니츨러 연구자의 진단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이다.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는 희극적 세계의 결말에서 베른하르디가 체념적 인물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그가 그러한 거짓과 위선에 타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창기 주로 단막극만 쓰던 슈니츨러가 다막극 형식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는 것은 그가 극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세계가 개인의 내면에서 사회로 나아감을 보여 주는 징후로 해석된다. 특히 1막에서 여러 개의 서브플롯을 제시한 뒤 이 서브플롯들을 메인 플롯으로 수렴해 가는 다막극의 <베른하르디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까다로운 극형식을 유려하게 다루는 작가의 극작가로서 역량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 작품의 형식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슈니츨러가 왜 <베른하르디 교수>를 '희극'으로 명명하고 있느 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작가는 '캐릭터 희극'이라는 답변을 내놓은 바 있는데, 작품에서 확인되는 정형화 되었거나 때로는 희화화된 등장인물 묘사는 작가의 주장에 대한 증거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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