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그레이엄 그린 '석상을 조각하기'

clint 2024. 12. 17. 16:51

 

 

 

신의 거대한 석상을 조각하려는 늙은 조각가는 무거운 마음으로 작업한다. 
조각가의 재능을 증명하기에 미흡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 조각상의 큰 발뿐이다. 사실, 그것만이 그가 만족스럽게 완성한 전부이다. 
머리에 대한 작업은 일부 이루어졌지만, 조각가의 눈에 보이는 구상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아니. 모델이 없어서라 생각해 오래 찾아다닌다.
신성한 분노와 신성한 사면은 계속 서로 상쇄된다. 
조각가에게는 민감한 10대인 아들이 있다. 아기 예수의 모델로 조각하다 
커가는 통에 접어버린 작업.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는데, 그녀는 실망스럽게도 
애가 어릴 때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녀 역시 그에게 기억에 남는 
마리아 상을 창조하도록 영감을 준 순결한 모델이었지만 잃었고, 그 계획도 
무산되었단다. 그의 여러 계획은 너무도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지만, 
조각가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마지막 걸작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조각가는 자신의 실력보다는 걸작에 대한 욕심으로, 점점 더 엄격하고 
질투심 많은 구약성경의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가 희생하도록 허락한 것처럼, 
조각가는 아들의 끝없는 도움을 요구한다. 게다가 아들이 만나는 여자들을 
눈독들이고, 게다가 의사의 말로는 건강도 갈수록 나빠진다는 것이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커져 집을 떠나 선원이 되고자 하는 아들과 
대판 싸우고 난 조각가는 자신을 괴물로 여기고, 그 괴물을 모독하는 
쓰레기 더미같은 자신의 조각품을 본다. 그가 그나마 만든 발 한쪽도 
루시퍼의 발로 보인 것이다. 
결말은 희망의 메시지로 끝나는 것 같다. 아들이 아버지를 도와 대작을
다시 시작하기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또 다른 작업을 시작한다. 




<석상을 조각하기> 1964년 발표한 그레이엄 그린의 3막 희곡이다. 1964년 9월 17일 런던 헤이마켓 극장에서 피터 우드 연출로 처음 제작되었다. 그 연극은 1968년에 마거릿 웹스터가 연출해, 미국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런던 남부의 조각 작업장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버지는 10여 년 동안 진행되어 온 큰석상의 하나님의 조각에 집착한다. 아들은 계속해서 아버지와 융화되지 못하고, 여자애들을 스튜디오로 데려와 사랑을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아들은 절대자인 아버지에서, 고집불통인 노인으로 변해감을 본다. 작가는 이 작품에 너무 많은 상징, 동기 부여되지 않은 신학적 대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황한 설명이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무대 위에서 강력한 것들 보인다. 예술가의 잔인한 집착, 아들의 부당한 강요에 대한 반항, 희극적 상황의 충돌, 그리고 그 상황 아래의 희비극이 어울어진다. 그리고 환등기를 통한 고전 작품들, 명작들의 설명도 좋은 눈요기가 될 수 있겠다.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 1904년 10월 2일 ~ 1991년 4월 3일)은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문학평론가이다. 그레이엄 그린은 하트퍼드셔주 버큼스테드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1925년 가톨릭 교도가 됐다. 《런던 타임스》의 부주필로 있으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작품의 특징은 항상 쫓기는 자의 불안과 공포를 재미있게 묘사하여, 악의 세계를 그림으로써 오히려 신의 사랑을 증명하려는 데 있다. 줄거리의 전개가 재미있어 영화화된 것도 많다. 저서로는 《권력과 영광》, 《조용한 미국인》,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 등이 있다. 자신이 쓴 소설 《사건의 핵심》의 극화로 극단에 데뷔하였다. 처녀 희곡인 《거실》(1953)을 비롯하여 《도자기 만드는 작은 집》(1957), 《조상》(彫像; 1964)에서 볼 수 있듯이 작품의 밑바닥에 흐르는 가톨릭 사상과 신과 인간의 대결을 포함한 종교적 테마에 바탕을 둔 비극을 주로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