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전개되는 <임차인>은 마치 단편드라마를 모아놓은 것처럼 극이 진행 된다.
각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극의 주제인‘삶의 회의,
잃어버린 추억, 삶의 고통’에 대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이야기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번씩은 겪어 보았을 듯한 이야기나
혹은 겪을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故윤영선의 생에 마지막 유작 <임차인>은 <여행>, <키스>,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파티>등 주옥과 같은 작품을 남긴 故윤영선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다. <임차인>은 연극에 관한 치밀한 구성과 그만의 특유의 화법으로 이루어진 가장 연극적인 연극으로 연극에 관한 그리고 인생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소품이다. 관객들은 공연을 즐기는 내내 색다른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줄거리
1. 2층집:
2층집에 이사 온 첫날, 집주인 중년여성이 출입문에 서서 내려가지 않고
입주한 미혼여성에게 자기의 젊은 날의 꿈과 좌절에 대해 이야기 한다.
2.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고통스런 가족문제를
손님에게 얘기하며 그의 조언을 바란다.
3. 바닷가에서:
낮에 바닷가에서 게를 잡아오다 낯선 사내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남편,
낯선 곳에서 정착하기 위해 고민하는 부인.
4. 동행: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여자, 밤길에 동행하는 남자,
결국 그 남자는 그녀 집에서 키우던 개로 밝혀지고...
4장으로 구성된 이 연극은 옴니버스 식이다. 각 장은 봄-여름-가을-겨울순으로 계절의 흐름에 따르지만,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고 각 장마다 주제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어는 아마도 '소통'. 연극을 보면서 계속 이 '소통의 가능성' 측면에서 생각했다. (3장부터는 이 기준으로 해석하기 심히 힘들었지만)
봄, 의 1막. 세를 들어 임대인의 집 2층에 들어온 젊은 여자와 그녀에게 집을 빌려준 아랫층 여자의 소통이다.
둘 사이의 권력관계가 단번에 드러나며 연극도 그것을 확실히 강조하는 듯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아랫층 여자는 도도하게 '클래식, 피아노, 커피' 운운하며 교양을 강조한다.
반면 수수한 옷을 입은 젊은 여자는- 무대 위에 부산하게 놓여진 짐박스들을 정리하고, 방안에 쌓인 먼지를 청소하고 있다.
강자인 아랫층여자는 약자인 윗층여자에게 생활을 알려주는 척하면서, 그녀의 사생활을 캐묻는다. 드문드문 그녀를 얕잡아보는 말과 자기 과시의 행동으로 인해 (윗층여자가 들어오라고 암만 권유해도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아마도 '먼지 쌓인' 이 방에 들어가기 싫었던 것인지. 아랫층 여자는 문간에서 계속 윗층여자를 성가시게 할 뿐이다.) 우리는 아랫층여자가 진짜 교양인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간간이 암시가 들어가더니, 나중에 아랫층여자는 옛날에 자신도 윗층여자같은, 임대인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젊었을때 독립한 그녀. 2층집에 세들어 살기 시작한 그녀는 그 독립과 자유와... 젊음과 낭만이 너무 좋았지만 지금의 자신같은, 임대인의 횡포와 잘못된 권위에 눌려 망가져갔다. 이를 악물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악물고 노력해서, 자신의 집을 장만했고 예전의 그 자유를 되찾고 싶어서 세들어 살던 집과 똑같이 2층집을 짓고 2층에서 살았지만 더이상 자유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깨닫는다. 1층으로 내려온 그녀는 세를 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옛날 그녀가 받았던 횡포를 고스란히 반복한다. 이때의 소통은 소통이 아니다. 윗층여자가 나중에 계속 '나가시라'고 애원하지만 아랫층여자는 마지막에 "나가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방안으로 (최초로) 들어온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앎의 의지로 가득찬 듯 보이지만, 정작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 줄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강요하고 억압하는 것이다. 이게 소통이라면 진저리나는 소통이다. 소통의 희망이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아랫층 여자가 옛날 얘기를 할 때, 그녀의 예전을 잠깐 연기하는 윗층여자의 모습에 그녀의 미래도 되물림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랫층여자의 '이를 악문' 에너지는- 상처를 내포한 부정적이고 열등감에 가득찬 에너지여서 그것을 되물림하고 되물림받으면서 살아간다면 세상에 소통은 있는 것인지... 이런 불안감을 안고 무대를 바라봐야 했다.
이어서 여름의 2막. 택시기사가 손님을 태우고 간다. 꽤 먼 길인듯, 밤으로부터 동이 터올 때까지의 시간동안 택시기사는 아무에게도 못해오던 얘기를 손님에게 털어놓는다. "선생님. 만약에 댁에 들어갔는데, 사모님이 안계시면 어떻게 하실겁니까?" 택시기사는 어느 늦은 밤 집에 들어가서 아내의 부재를 알고 소주를 퍼마시다 아내가 들어와 그의 눈치를 살피자 바람을 피운 것을 의심하고 아내를 때리고 나가버린 것이다. 행복했던 가정생활에 아내의 불륜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그는 무척 괴로워하다가 집에 돌아오지만 그 이전의 생활로 되돌리기가 너무 힘들다. 그는 이런 얘기를 손님에게 다 털어놓는다. 그리고 조언을 구한다. 이때의 소통은 익명성의, 그리고 일방적인 소통이다. 나 또한 택시를 혼자 탈때, 택시기사분에게 아무에게나 할 수 없는 얘기를 할 때가 있었다. 왜 그럴 수 있을까? 다시 안 볼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계속적으로 내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다. 여행이 그렇고, 채팅도 또한 그렇다. 그런데 이 장에서는 택시기사가 손님에게 고해성사하듯 자신을 털어놓지만 손님은 마지못해 수긍할 뿐, 진짜 이해해주고 다가가려는 몸짓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도 진정한 소통으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일방적이니까. 마지막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마지막에, 택시에서 내려 집에 걸어가면서 손님은 "그런데, 그 여자분(아내)도 혹시 영덕대게를 먹고 싶어서 밖에 나갔던 것 아니었을까요?"라고 말한다. (택시는 영덕바다를 지나쳤다. 그쪽이 배경인 듯.) 마지못해 들어주는 듯싶던 그 손님의 말은 '배우와의 대화'시간에 박수영씨의 말을 빌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배려"를 의미했다. 귀찮은 상대지만, 마지막에 자신의 배려가 발동한 것이다. 그래서 이 2장은 조금 더 희망적이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래도, 문틈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보인다.
가을의 3장과 겨울의 4장.
어려웠다--;; 1, 2장과 대비되게 상당히 몽환적이었다. 하지만 난 가을의 3장이 젤 좋았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아파트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제는 그 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바다에서 게를 잡다 만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실연에 빠져 바다로 가서 술을 마시는 남자. 덥석 손을 잡고 같이 술을 마시자고 청한 그에 이끌렸는데 그는 술을 계속 마시다, 소주병을 깨버리고 바다속으로 들어간다. 죽은지 살았는지, 남자는 더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그곳에서 잡아온 게를 놓아주려 한다. 바다까지 가기를 꺼린 그는 아스팔트 위에 게를 놓아주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다 결심한다. 사내를 다시 만나도 상관없다고. 꼭 이 게들을 바다에 놓아주고 올 것이라고... 다시 돌아간 그. 하지만 게들은 이미, 자리에 없다. 너무 늦은 것이다. 끼워맞추기 식일지도 모르지만 소통방식에 있어서 이 남자는 더 적극적이다. 바다에서 다시 사내를 만난다면 아마 그는 말할 것이다. 이러지 말고,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라고. 아니면 묵묵히 사내의 얘기를 들으며 소주잔을 기울일지도. 어쨌든 이 남자는 진정한 소통을 모색하려 했다. '푸른'바다에 찾아가서 더욱 자유로워지려고 했는지도. 비록 때는 너무 늦어 게들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겨울의 4장은 아예 드러내놓고 환타지를 말한다.
눈덮인 벌판에서 깨어난 여인. 수몰지구가 된 고향을 찾은 그녀에게 한 남자가 동행하는데 알고보니 그는 그녀가 키웠던 개였다. 개는 옛날 추억을 회상하고 그녀는 그를 감싸안는다. 환타지가 분명한 장면속에서, 둘은 고향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 곳으로 가면 안된다. 갈 수 없다. "이제 가야한다"며 개가 작별인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여자는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듯하다. 꿈을 꾸는 것인지도. 자연적으로 추운 계절인 겨울이, 이 연극에서는 가장 따뜻하다. (따뜻한 봄의 1장이 차갑게 그려지는 것과 대비된다) 그들은 최소한 환타지 안에서는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연출의 글 - 윤영선
어둠 속에서 술을 마셨다. 그때 내 머리는 얼마나 어두웠을까.
얼마나 짙은 어둠이 내 머리 속에 내리고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동백나무숲을 지나듯 그 길은 어둡지만 빛났을까.
가로등은 인색하게 빛을 뿌리고 있었다.
사람들과 사물들은 움츠러들어 알 수 없는 어둠 쪽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 같았다.
도로변에 서서 택시를 잡는 사내들의 목쉰소리와 거리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녹슨 강철처럼 내 귀를 파고들었다.
문득 배추꽃이, 그리고 노란배추꽃 주위를 배회하는 배추흰나비들이 떠올랐다.
뒤이어 원주 토지문화원에서 보낸 밤들....
새벽에 혼자 술을 마시다 보면 어디선가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방들이 내 방에 들어오려고 유리창에 자기 몸을 부딪치는 소리였다. 가라,가
마음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도무지 내 말을 듣지 않는 나방들.
내가 밝혀놓은 불빛을 향해 날아온 나방들아,
아무런 희망도 없는 내 방에 들어오려고 다치지 마라.
그때 내 머리가 깨졌다. 그때 나는 웃고 있었다.
노란배추꽃이 그리고 배추흰나비가 내 머리 속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알게 또는모르게 삼켜버린 칼날들.
웃음사이로 비집고 나온 그 칼날이 내 머리를 뚫고 나왔다.
내가 배추꽃 가까이에 있는 배추흰나비를 잡으려고 몸을 움직였던 걸까.
하긴 꽃 한 송이에도, 밤 새워 쓴 시 한편에도 머리가 깨질 수 있다.
모든 것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면 어딘가 다친다.
얼핏 부는 바람 한자락에도 가벼운 손짓에도 상처에서 흐른 피가 뺨과 귓등을 타고
내려와 목덜미 근처를붉게 물들였다. 그 순간 나는 배추꽃이었을까.
흰나비처럼 어디선가 날아온 구원의 천사가 날 데리고 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가 엉덩이에 주사를주고 철심을 박아 상처를 봉합했다.
침대에서 leave라는 단어는 쪼개지다는 뜻도 있지만 단단하게 결합하다는
의미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쪼개진 내 머리사이로 무엇이 날아갔을까.
다시 결합시킨 내 상처에 무엇이 밀봉되었을까.
폭력 또는 비애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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