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뮤지컬 '야단법석'

clint 2024. 4. 29. 11:58

 

 

 

초파일을 며칠 앞둔  어느 조용한 절. 가인사에서 며칠 동안에 벌어진 이야기다불교계의 큰별 법성 스님께서 입적하셨다는 전갈을 받고 법성스님의 제자였던 어른스님들은 급히 다비식에 참가하러 머나먼 해인사로 떠난다. 그리하여 절에는 부전스님과 공양주 보살인 마마심과 나이 어린 선재 스님과 네 명의 어수룩한 행자들 만이 남게 된다. 언제나 절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해야 했던 행자들은 모처럼 근엄한 어른 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는 됐지만 어른 스님들이 남기고 가신 울력 때문에 마음이 바쁘기 그지없다. 어른 스님들께선 초파일에 돌아올 테니 그 전까지 연등 천 개를 만들어 경내에 걸어두라는 명령을 남기고 가신 것이다. 이미 보름을 수고한 덕에 거의 연등이 만들어져 있긴 하지만 며칠 동안 나머지의 연등을 만들려면 너무 바쁠 것이 뻔하다. 그리하여 행자들은 대중방에 모여 부지런히 연등을 만든다. 그러다가 누군가 임시로 보자고 연등 하나만 촛불을 붙여보라 하여 불을 붙여보니 역시 연등은 몹시 아름다워 모두 찬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공동의 울력도 잠깐, 속세의 습을 아직 버리지 못한 행자들은 마치 선생님 안 계신 자율학습 시간이라도 주어진 듯. 한사람씩 꾀를 내며 대중방을 빠져나간다. 연등 만드는 울력은 젖혀두고 모두들 각자 하고 싶은 일만 하러 나간 것이다. 반장 행자는 나머지 행자들만 믿고 슬쩍 빠져나가 목탁 연습을 했고 샌님 행자는 부전 스님에게 바라춤을 배웠고 뻐꾸기 행자는 숲 속에 들어가서 노래를 불렀으며 똥파리 행자는 뭐 먹을 거 찾으러 공양간으로 간다. 대중방의 연등에 촛불 하나 피워 놓은 걸 기억해내는 행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절에 들어온 뻐꾸기 행자는 낼모레 있을 신인가수 오디션에 참석할 수 없는 자기 처지를 아쉬워하며 숲속에서 남몰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른다. 그러다 어렵기만 했던 선재 스님에게 들켜버린다. 절에서 노래하지 말라는 계를 어긴 뻐꾸기 행자는 선재 스님에게 제발 어른 스님들에게 고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선재 스님은 뜻밖에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칭찬하며 형제처럼 지내자고 제의한다. 아뿔사! 이런 큰 불상사가 있을까? 이렇듯 해야 할 울력은 까먹고 모처럼 저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대중방에서는 큰 불이 나서 활활 타오른다. 연등의 촛불이 번져 만들어진 연등과 소중한 나머지 연등 재료들을 전부 태워먹고 있는 것이다. 모두 달려와 불을 끄고 난리를 피웠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거짓말처럼 연등과 연등 만들 재료가 몽땅 타버리고 만 것이다. 큰스님들 돌아오시기 전에 연등을 전부 달아놓아야 하는데 재료를 홀랑 다 태워 먹다니....

 

 

이 사실이 어른 스님 귀에 들어가는 날이면 큰 경을 치르고도 전부다 절에서 쫓겨날 판이다. 게다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문책을 모면할 길도 없다. 만들어 놓은 수백 개의 연등을 다 태워먹고 앞으로 만들 재료도 없는 답답한 상황에서 모두 걱정하는 가운데 슬기로운 선재 스님은 노래 잘하는 뻐꾸기 행자를 음반회사에서 주최하는 신인가수 오디션에 내보내 상금을 타게 해야겠다고 묘안을 낸다. 그 상금이 있다면 장애인 가족이 만들어 팔고 있다는 연등을 사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상금만 있다면 장애인가족들이 만든 천 개의 연동을 몽땅 다 사올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닌가. 모든 행자들이 이에 동의하고 뻐꾸기행자를 오디션에 내보낼 준비를 해야겠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아무리 뻐꾸기 행자가 탁월한 미성을 지니고 있다지만 반주할 악기도 없고 입고 나갈 의상도 없는데 산중에서 무슨 수로 오디션 연습을 한단 말인가. 여러 가지로 조건은 불리하지만 부처님의 자비로 분명히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선재 스님의 말을 믿고 모두들 열심히 연습해보기로 한다. 우선 "뻐꾸기와 아제들!"이라는 촌스런 그룹명을 지은 행자들. 행자들은 하는 수 없이 우선 급한 대로 목탁과 법고, 요령 등을 동원하여 뻐꾸기 행자의 노래연습에 박자와 음정도 맞춰주고 어울리잖는 바라춤과 승무로 백댄서 노릇도 해주기로 한다. 이리하여 리드싱어는 뻐꾸기 행자가 되고 나머지는 보컬 그룹이 된 셈이다. 이러한 연유로 어른 스님이 출타중인 가인사의 조용한 산속은 행자 들의 연습소리로 이내 야단법석이 된다. 이들은 행자생활보다 더 고되게 이틀을 꼬박 죽어라 연습하여 오디션장에 출전한다. 행자 신분이 노출되면 큰일이니 변장한 의상과 가발도 필요했는데 궁하면 통한 다고 나이트 클럽의 웨이터 경력이 있던 똥파리 행자가 의상과 악사를 대강 구해온 탓에 오디션엔 간신히 참석할 수 있게 된다. 드디어 여러 우수한 참가자의 순서가 지나가고 "뻐꾸기와 아제들" 순서가 된다. 뻐꾸기 행자는 탁월한 미성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지만 백댄서로 등장하는 행자들의 어색한 옷차림과 오디션에 어울리지 않는 춤사위(바라춤과 살풀이 등)로 오디션장은 야단법석이 되고 뻐꾸기와 아제들 팀은 무대에서 퇴장당하고 만다. 1등의 상금을 차지하기는 커녕 오히려 망신만 당하고 낙심하여 절에 돌아와 있는 그들에게 천우신조일까. 기획사 여사장이 찾아온다. 기획사 여사장은 뻐꾸기 행자의 음색이 너무나 맑고 아름다워 꼭 음반을 내고 싶다고 부탁한다. 스님이 되라는 아버지 유언을 어기고 싶지 않아 뻐꾸기 행자는 망설이지만 자기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선재스님의 말에 설득되어 음반을 내고 전속가수로 일하기로 한다.. 기획사 사장은 뻐꾸기 행자가 기획사의 전속가수가 돼 주는 대신 행자들에게 필요한 천개의 연등을 직접 구입하여 모두 보내겠다고 약속한다마침내 어른 스님들이 돌아오시기로 한 초파일 전날의 저물 녘. 절은 그동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침을 뚝 떼고 고요하다. 그 고요한 경내에 연등들은 저물 녘을 수놓으며 둥실둥실 깊은 산속 가인사의 경내를 아름다운 빛으로 물을 들인다. 이제 모든 건 다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단지 달라진 게 있다면 누구나 인연 따라 자기 삶을 받아들이고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야한다는. 선재스님의 말씀처럼 자기 갈 길을 찾아 가버린 탓에 뻐꾸기 행자의 모습만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인연에 따르는 인생살이. 두드려라!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전생의 축생계에 살고 있는 짐승들이 공덕을 쌓아 인간으로 환생하기를 염원한다. 마침내 인간으로 환생하지만 타고난 업에 따라 각자 타고난 본성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성격이 급하고 어떤 사람은 느리고, 또 어떤 사람은 단순하고...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행자승으로 모여 수행의 길을 가는 과정에서 성격이 달라 서로 부딪치게 되고 참선을 하는 과정에 날아든 모기 한 마리로 인해 마음이 흐트러지며 수행의 본분을 잊고 방황하게 된다. 결국 수행의 일환으로 음악 공양이라는 화두를 받고 일상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찾기 위해 정진하지만 타고난 본성이 다른 관계로 서로의 호흡이 맞지 않아 음악을 통해 도를 깨치라는 의도는 오히려 갈등만 부추기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는데.... 

 

'야단법석'은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법고 목어 요령 죽비 발우 등 전통 타악기로 불교적 깨달음의 세계를 풀어낸 작품이다. '야단법석'은 석가모니가 야외에 단을 쌓고 불법을 설파한 야외법회 에서 유래한 말로, 많은 사람이 모여 두들기고 춤추는 가운데 자아성찰의 기회가 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