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수정 외 공동창작 '별들의 전쟁'

clint 2024. 4. 2. 17:57

 

 

<별들의 전쟁>은 베트남전 당시 민간인학살에 대한 공동창작극이다,. 

한국과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베트남에선 ‘미국전쟁’ 혹은 ‘항미구국전쟁’이라 

부르는 상충된 호명만큼 다층적 기억이 이 전쟁에 얽혀 있다. 오랜 기간 이어진 

전쟁에 한국군도 8년6개월에 걸쳐 총 32만여명의 군인을 파병했다. 

연극은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로 ‘피고 대한민국’을 소환한다.

 

 



“그럼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법원 경위의 개정 선언과 함께 무대 전면 스크린에 

글자들이 떠오른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법정.

 베트남전의 기억을 다룬 ‘재판극’이다.

몇 개의 의자가 놓인 단출한 무대에서 증언과 변론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이 무대를 둘러싼 관객석도 법정이 된다. 
 이 재판의 원고이자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 ‘응우옌티쭝’을 비롯해 

파병군인, 파병군인의 가족, 전쟁포로, 간호장교, 한국인 병사와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 등 다양한 인물들이 증인석 위로 오른다. 

전쟁은 반세기 전에 끝났지만, 이들은 여전히 기억이라는 ‘두 번째 전쟁’ 속에 있다. 

 

 



재판은 베트남 ‘미퐁 마을’의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한다. 1968년 실제 참혹한 민간인 학살이 발생한 꽝남성 ‘하미 마을’과 ‘퐁니·퐁넛 마을’을 모티브로 한 사건으로, ‘미퐁’은 이 마을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재조합해 만든 것이다. 
연극에는 팽팽한 갈등과 감정이 시종일관 폭발한다. “왜 우리를 그토록 잔인하게 죽였냐”는 울부짖음과 “그들은 민간인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 죽여야 한다. 그게 전쟁”이라는 날선 목소리가 이어진다. 일본군 ‘위안부’ 사건처럼 우리가 피해자인 사건에 대해선 목소리를 내면서 왜 가해자인 사건엔 침묵하느냐는 지적엔 베트남 정부도 사과를 원하지 않는데 왜 한국정부가 사과하고 배상해야 하느냐는 반론이 나온다. 가장 크게 엇갈리는 것은 사건 그 자체에 대한 ‘인정’이다. 그 누구도 민간인을 죽였다고 말하지 않는 현실, 모두가 전쟁의 피해자이되 가해자는 없는 현실이 극 속에 투영됐다. 배우들은 찬반 양쪽으로 나뉘어 격한 논쟁을 벌어지만, 이들이 극 속에서 뱉어내는 각자의 삶과 기억은 결코 단순하게 양분되지 않는다. 한국군의 성범죄로 태어나 고향에서도 ‘라이따이한’이란 멸칭으로 불렸던 남자는 “여기서도 위로받고 베트남에서도 위로받는” 응우옌티쭝과 자신의 처지가 다르다고 말한다. 참전군인도, 베트남 사람들도 모두 피해자라고 증언한 전쟁포로는 정부를 대신해 자신이 사과하겠다며 재판 중 응우옌티쭝을 향해 무릎을 꿇지만, ‘이런 사과를 원한 게 아니다’라는 그의 말에 숙인 고개를 들고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지금 사과했잖아요, 뭐 바라는 거 있어요?” 우리가 자주 목도해온, 서늘한 풍경이다. 

 

 


방청석도 격앙되긴 마찬가지다. 객석 중간중간에 자리한 배우들은 증언과 변론 때마다 상대방을 향한 막말과 야유, 탄식을 쏟아낸다. 급기야 무대 난입에 멱살잡이까지 벌어진다. 이 난장판으로 변한 법정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하게 비어 있는 한 자리가 있다. 피고 ‘대한민국’의 자리다. 이 연극에서 관객은 제3자가 아니다.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해 대한민국의 유무죄를 가린다. 마지막 판결에 따른 대본도 2개다. 관객의 성향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