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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 '양철북'

clint 2023. 12. 31. 07:35

 

 

정신병원에 수감된 오스카르 마체라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이다.

일단 자신의 조부이자 폴란드 민족운동가였던 콜야이체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렇게 감자밭으로 도주한 뒤 순진한 소녀인 오스카의 조모와 마주했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감자를 굽고 있는 그녀의 치마 속에 숨어 들어간다.

경찰은 치마를 들출 생각은 당연히 못하고 돌아가고,

그 와중에 그 짓을 한 모양인지 아니 대체 어떻게?! 오스카의 어머니를 임신한다.

오스카의 어머니 아그네스 콜야이체크는 폴란드인 사촌인 얀 브론스키를 사랑하지만

독일인 알프레드 마체라트와 결혼하고, 브론스키는 헤드비히라는 여성과 결혼해

슈테판이라는 아들을 둔다.

이 작품에서 반복되는 2차 대전 이전 폴란드(브론스키)-나치 독일(마체라트) 대립의

시작이런 과정을 거쳐 오스카르 마체라트는 1924년 단치히에서 태어난다.

오스카는 아주 어릴적부터 어른들에 필적하는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3살 때부터 어른들의 추악한 세계를 혐오하여 더 이상의 성장을 거부하고

높은 곳에서 일부러 떨어져서 성장을 멈춘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의 반대나 결심을 이해하거나경우에 따라서는

존경해 줄 수도 있는 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그러므로

나는 전구 아래에서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삶에 대한 욕망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다만 나에게 약속된 저 양철북만이 당시 태아의 머리 위치로 되돌아가려는

나의 욕구가 강력하게 표출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그 무렵 나는 말하기도 하고 결심하기도 했다.

여기서 마침표를 찍고, 이 상태에 머무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상태에 머물렀고 이후 오랜 세월 동안

몸의 크기도 복장도 그대로 유지되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나 세 살이고, 난쟁이이며, 엄지손가락만한 꼬마이고,

자라지 않는 난쟁이로 머물렀다. 나는 북에 매달렸고,

세 번째 생일날 이후 단 1센티미터도 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세 살짜리 어린애 그대로 머물렀지만, 세 배나 현명한 어린애였다.

즉 모든 어른보다 키는 작으나 그들을 능가하였고,

자신의 그림자를 어른의 그림자로 재려고 하지 않았다그리고 어른들이

백발이 될 때까지 발육이라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반해나는

안으로도 밖으로도 모두 완전하게 완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나는 어른들이 간신히,

때로는 고통을 겪으면서 경험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했다.

이후 난쟁이가 된 오스카는 선물받은 양철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이 양철북은 오스카에게 대단히 중요한 요소인데,

오스카가 당시 사회 흐름에 대한 순응을 거부하는 상징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성장이 멈춘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결국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신체의 성장은 3살에서 멈추었지만,

오스카는 이미 어른과 진배없는 지적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양철북을 두드리며 어른들과 잘못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울분을 푼다.

그는 일종의 초능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양철북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면

그 충격파로 주변 유리가 모조리 깨지는가 하면, 엄숙한 나치 관련 행사를 북을 쳐서

사람들을 흥겹게 춤추게 만들어서 망쳐버리기도 한다.

시대가 흐르면서 오스카는 어머니 아그네스와 "친아버지 후보" 브론스키와

차례로 사별하고(, 폴란드의 종말),

마체라트가 고용한 가정부 마리아와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가

마리아가 마체라트와 결혼하면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후 오스카는 전쟁이 끝나는 와중에 나치당원이었던 마체라트마저

소련군에게 사살되자그의 장례식에서 양철북을 집어던지고 다시 성장하기로

결심하고 마리아, 쿠르트와 함께 서독으로 옮겨온다.

서독에서 그동안 몸으로 느끼지 못했던 암시장 등의 사회요소에 몸을 담그고,

석조공으로 일하다가 누드 모델]이 되기도 하며 방황한다.

흠모하던 간호사 도로테아를 만나지만 그녀는 누군가에게 살해되고

오스카는 누명을 쓰고 정신이상자로 판단되어 정신병원에 갇힌다.

정신병원에서 회고록을 집필하다가 그의 서른 살이 되는 생일에

정신 병원에서 나가면 어떻게 살 것인가 고찰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양철북>은 광대한 폭과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익살스러운 세부묘사와 화법으로 읽기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나름대로의 소설적인 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이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주인공 오스카르의 삶에서의 결정적인 부분과 일치하고 있으며, 또 오스카르의 삶의 공간은 1900년에서 1954년까지 젊은 시대를 살아온 독일 세대의 삶과 일치 한다.

1부는 오스카르의 어머니 출생부터 오스카르의 출생 그리고 그의 어린시절과 함께 정치적 상황의 파국을 이야기하고 있다2부는 단찌히 폴란드 우체국 점령으로 발단하는 전쟁부터 옛 애인이자 현재 의붓어머니인 마리아와 의붓동생이며 어쩌면 아들일지도 모르는 쿠르트와 함게 단찌히에서 이주하는 과정이 묘사된다3부는 전후시대와 뒤셀도르프에서 오스카르가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계기가 되는 '무명지 사건'이 이어진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이야기를 엮어가는 현재 시점이 회상을 통해 순환적으로 접맥되며 그것은 오스카르의 운명 그 양자의 통합을 의미한다

 

 

<양철북>은 성격 또는 그 밖의 요인으로 일반적인 사회와 제도에서 이탈해있는 한 개인이 어떤 경로를 통해 사회현실과 마주치며 그 과정에서 어떻게 화해의 가능성을 모색해 가는가 하는 문제를 그린다. 그러나 '살아남음'에 대한 화해의 가능성이 상당한 굴절을 겪게 된다. 그것은 우선 오스카르에게는 현실의 억압과 폭력이 일방적인 것만이라고만 볼 수 없으며 오히려 그가 안고 있는 사회화의 장애요인으로 인해 그가 현실과 주변 인간에 대해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역설적인 관계에 놓여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말에서는 주인공의 사회적 통합이 패러디로서 이긴 하지만 수긍되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은 '생활의 방편'을 굳혀야 하는 '서른 살'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화해는 완곡한 부정에 가까운 것이다. 사실 그는 '성장'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개별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살짜리 오스카르의 지성은 20살 또는 30살의 지성과 동일하며, 다만 은폐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론가로서의 오스카르는 자기 자신과 간호인 브루노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소설의 '주인공'임을 단언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주인공이라는 말을 중심인물 또는 행위의 주동자라는 말로 바꾸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전통적인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오스카르는 특수한 현상이며 하나의 예술적 형상이다. 오스카르의 지성은 3살짜리의 시야를 통해 현실에 내재하는 부조리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가차없이 고발함으로써 이러한 현실에 동화되지 않으며 단지 현실을 교제로서 이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스카르의 서술 방식을 이끌어 가는 고도의 성찰은 회상의 기술로써 현재화된 과거가 다시 낯설어지고, 현재 속에 새롭게 투영되는 자기 자신에 대해 거리를 두는 저술로, 오스카르의 모든 회상은 곧바로 수정되곤 한다이러한 성찰의 차원은 구체적으로 소설적인 층위에서도 드러난다. 작가는 오스카르의 개인사(個人史) 속에 이러한 성찰의 차원을 교묘하게 엮어 놓고 있는데 그것은 스승 베브라를 통해 이루어진다. 오스카르의 스승인 베브라는 이 소설 속의 오스카르를 이해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오스카르는 베브라를 통해 정치적 상황에 눈을 뜨게 되며, 자신이 속한, 특정한 계층을 대표하는 소시민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베브라는 정치적 상황을 명확하게 감지하면서도 나치의 선전관이 되며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예술가나 지식인이 어떻게 부정적인 상황에 동화되어 가는가를 보여 준다. 말하자면 독일을 몰락과 예술가의 전략이 같은 맥락에서 다루어지고 있 으며, 오스카르 역시 베브라의 전선 극장을 따라가게 됨으로써 역시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준다. 대서양 요새에서 수녀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방판한 채 지켜보는 그들의 모습은 잔학 행위에 대한 방관과 동조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소설 끝부분에서 베브라는 여전히 흥행이 잘 되는 악단의 리더로서 오스카르에게 그가 살아오면서 간접적으로 자행한 살인을 상기시키고 이에 대해 오스카르는 순순히 자신의 죄를 자인한다. 하지만 베브라는 여전히 타협과 적응을 거듭해 성공했다는 사실과, 그의 죽음으로 인해 상속인이 됨으로써, 오스카르는 어쩔 수 없이 베브라의 죄와 싸워야 하며 그 죄를 저당권처럼 물려받을 수밖에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오스카르는 예술적 형상뿐 아니라 예술가의 상()이며, 현실을 향한 예술가의 화살이 예술가 자신 역시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199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귄터 그라스는 1927년 10월 16일 단치히(현재 폴란드의 그다니스크)에서 태어났다. 궁핍하고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후, 그는 17세 때인 고등학교 시절에 징집되어 독일 방위군에서 복무하다가 부상을 입고 미군 포로가 되었다. 석방된 뒤 그는 잡부와 석공으로 일하다가 조각가가 되기 위해 뒤셀도르프의 미술학교에 입학하였으며, 52년에 베를린의 미술학교로 옮겨 조각가로서의 수업을 마쳤다. 이때부터 그는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그후 약 4년 동안 파리에서 조각과 그래픽 일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며 소설을 썼다. 그는 58년에 '47 그룹 상'을 수상했으며, 59년엔 '게오르크 뷔히너 상', '폰타네 상', '테오도르 호이스 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리고 이 해에 발표된 『양철북』으로써 그는 단번에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작가가 되었다. 그의 『양철북』은 79년 쇨렌도르프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기도 했으며, 한국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작가 귄터 그라스는 '행동하는 지성인' 혹은 '비판적인 지성인'으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그는 60년 베를린으로 돌아와서 '독일사회민주당SPD'에 가입하여 '핵무기 반대' 등을 외치며 빌리 브란트 수상의 재선을 위한 시민운동을 이끌기도 했으며, 나아가 수상선거 때마다 헬무트 콜의 낙선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단치히 3부작'이라 불리워지는 『양철북』(59년),『고양이와 쥐』(61년), 『개들의 시절』(63년) 외에도 그는 물고기를 화자로 등장시킨 『넙치』(79년)에서도 인간사회를 비판적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들로서는 『달팽이의 일기』(72년), 『텔그테에서의 만남』(79년), 『암쥐』(86년), 『무당개구리의 울음』(92년), 『광야』(95년), 『나의 세기世紀』(99년) 『게걸음으로 가다』,『넙치』『텔크테에서의 만남』,『라스트 댄스』,『세계화 이후의 민주주의』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