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마그리뜨 뒤라스 '영국인 애인'

clint 2023. 12. 23. 16:45

원작은 영국인 애인임(아래 포스터 참조)

 

 

이 작품은 살인사건이라는 단순한 추리극 정도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남편인 삐에르의 참고인 진술로 먼저 시작되는 이 작품은

정신이상자인 부인 끄레르의 엽기 살인이 왜 일어나는지

그 살인동기를 파해치는데 극 전체의 흐름이 맞추어져 있다.
남편의 진술로는 좀 이상증세를 가진 부인의 범행으로 느껴지도록 진행된다.

그러나 용의자인 부인 끄레르는 떳떳하게 자신이 살인을 했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만 해도 관객은 부인을 엽기적인 살인자라고 생각을 하지만..

계속되는 질문자의 질문과 부인의 답변속에 이 부인의 살아온 과정과 생각,

그리고 불행한 남편과의 결혼생활로 철저히 고립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생활이 드러난다.

 

 

 

 이 작품은 페미니즘적인, 나아가서 강한 여성의 의식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의미로는 진정한 살인자는 남편과 주위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관객이 느끼도록 유도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부인에 대한 동정심도 생긴다
원제는 영국인 애인이나 국내 공연은 '마리떼레즈는 말이없다' 로 초연 공연되었다.       

 
영국인 애인이란 제목이 왜 붙여졌는지는 한번 알아보도록 하라 (작품을 보거나 읽어봐야 알수 있다)

 

 

 

<영국인 애인>은 전형적인 현대극이고 그것도 미스터리 심리극 경향이다. 작품은 상당히 난해하면서 세련되어 있다.
사건의 진행이라거나 그 전개과정 자체는 전혀 대비될 수가 없다. 우선<영국인 애인>은 무대에 드러난 내용을 봐서는 전혀 영국인 애인과 상관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불어의 결말 같은 것으로 제목을 단 것이기 대문에 소프트 터치의 애인이니 여인이니 하는 고정관념으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 철자법을 무시한 채 발음대로 하면 애인이니 연인이나 박하(나무)나 그게 그것으로 들리게 되는 분절 양상에 따라 영국인 애인으로 들리기도 하고, 영국 박하나 진흙 속의 박하라는 의미를 갖는 원제목에는 많은 암시가 담겨 있다. 괴기 살인사건의 핵심을 파헤치면서 무대 위에는  사건의 전개가 전혀 없다. 공간은 극단적으로 제약되어 있고 등장인물도 한정되어 있다. 질문자와 대답하는 사람 두 사람만으로 꾸려 나가는 등장인물의 설정은 겉으로 보기에 형사와 살인자 내지는 혐의자의 조서 꾸미기 형식 같다. 이런 형식은 드라마를 재판극의 대립적 관계 설정에 두는 서양 희곡의 변형으로 간주할 수 있다.<영국인 애인>에는 대립과 갈등이 없는 대신 하나의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말의 성찬 가운데 불안하고 미약한 삶의, 혹은 인간심리의 귀결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결혼 20여 년을 별탈 없이 살아온 50대 여인 크레르 란느(이주실)가 농아인 사촌을 죽여 토막낸 사체를 각 방향의 철도 수송편에 뿌렸다면 그녀는 분명히 미친 여인이다. 이 사건의 괴기성은 없어진 머리 부분을 찾지 못하는 데 있다. 크레르 역의 이주실은 광기와 정상의 경계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그녀는 무서운 연기자로서 우리가 믿는 정상적인 삶과 이른바 정상심리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녀의 남편 피에르 란느 역으로 오랜간만에 좋은 연기를 보여준 주호성은 평범한 정상인을 대표한다. 그러나 그 정상성 속에 살인자의 광기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하는 그의 언동은 자폐증 아내를 거느리고 살아오면서 그녀의 첫사랑 연인에 대한 질투심을 거짓된 삶의 행각으로 호도해 온 소시민 의식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이 살인사건에는 잘못된 우리의 편견이 작용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크레르가 토막살인의 범인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자백밖에 없다. 그녀가 비정상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의 자백도 확증을 얻을 수 없다. 반증으로서는 사라진 머리를 찾아야 할 것인데 질문자 겸 형사 역의 조명남은 살인의 혐의는 있으나 확증을 잡을 수 없는 피에르의 정상성과 교활함에 흔들리고, 살인이 자백은 있으나 확증을 댈 수 없는 크레르와의 질의·대담에서 아무것도 얻어내는 것이 없다.

 

 

 

형사와 피에르, 형사와 크레르의 질의응답은 1·2부로 나누어진 치밀한 구성인데 우리는 그 많은 말 가운데 심연을 벌리고 우리를 위협하는 음산한 침묵의 그늘을 본다. 잠재의식이 지배하는 불안의 늪을 괴기한 살인사건과 연계시킨 작가의식은 연출(임영웅)을 통해 아주 단순화되어 있다. 그것이 단순하고 간결하고 한정된 인물이자 무대구성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연기력에 의존한 이 심리극은 수많은 질문과 답변을 통해 한 사건의 이면에 숨어 있는 불가사의한 인간존재의 함정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서 연극이 연극성을 배제하는 재미를 준다. 연극의 연극성을 배재한다는 것은 수준 높은 연극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없이도 드라마가 된다면 그것은 여간 호흡이 맞는 연출·연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영국인 애인>의 연기팀들, 특히 광기의 여인 역으로 침묵을 다변으로 토로한 이주실의 연기력은 압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