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희곡 테레즈 라깽(1873) 대본은 에밀 졸라 본인이 자신의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1860년대 프랑스. 어린 시절, 아버지에 의해 고모에게 맡겨진 뒤
병약한 사촌 까미유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 테레즈. 청소년기를
고모와 까미유의 수발을 들면서 보내온 테레즈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까미유와 애정 없는 결혼을 하고, 파리로 함께 이사한다.
무의미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까미유의 소꿉친구인 로랑이 그들을 찾아오고,
테레즈는 까미유와 달리 완숙한 남성미를 지닌 로랑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긴다.
두 사람은 곧 은밀한 관계로 발전하고,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기 시작한다.
밀회가 아닌 완벽한 사랑을 꿈꾸던 로랑과 테레즈는
걸림돌인 까미유를 없애기로 계획한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완전범죄에 성공하고, 부부로서 모든 것이 완벽해진 그 순간…
예상치 못한 파멸의 그림자가 그들에게 드리워지는데…
'테레즈 라캥'은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가 1867년에 쓴 첫 번째 자연주의 소설로 하층민인 주인공, 불륜과 살인이라는 선정적인 소재 때문에 출간 당시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테레즈 라깽은 어린 시절 고모에게 맡겨져 병약한 사촌 까미유와 함께 자란 탓에 원래 지니고 있던 야성적 기질을 억누른 채 조용하고 얌전하게 자란 인물. 테레즈는 아들 까미유의 간호를 위해 자신을 며느리로 삼은 고모의 뜻에 따라 퐁네프로 이사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지만 무료한 일상에 지쳐간다. 테레즈는 까미유의 소꿉친구인 로랑을 만나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들고 뱃놀이 중 까미유를 물에 빠뜨려 죽인다. 두 사람은 결국 결혼에 성공하지만 까미유의 환영에 시달리게 되고 전신마비가 된 고모 앞에서 살인 사실을 폭로한다. 테레즈와 로랑은 서로를 증오하다 결국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동반 자살을 감행한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냉정한 문체와 폭력의 결합이 던지는 충격은 후세에 등장할 루아르 소설 못지않다"고 이 소설에 대한 평을 남겼고, 이 작품을 재구성해 '박쥐'란 영화를 만든 박찬욱 감독은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전부 담겨 있어서 내가 쓴 소설인 줄 알았다"고 말한 바 있다.
해설 - Norris Houghton (미국 연극학자)
로마시대 이후 모든 민족 가운데 프랑스 인들이 법조항을 만들고 선언서를 내고 혁명을 일으키며 공식화하고 규제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장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것 같다. 그 결과 예술 발전과정에서의 모든 변화, 모든 새로운 유행이 발표문이나 서문, 또는 새로이 공표된 규율의 주제이다. 그들은 '사조 (ism)'를 만드는 데 탁월하다. 처음 떠오르는 몇 가지를 나열하자면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자연주의" 등.
무대의 역사는 프랑스인들의 편견에 대한 증거로 가득 차있다. 코르네이유의 "극시의 사용과 요소에 관한 첫 번째 담화"는 초기의 예가 된다. 그와 더불어 17세기 고전주의는 그 형식의 첫 번째 걸작인 '르시드'의 작가에 의해서 공표되고 규정되었다. 두 세기 후 빅토르 위고는 '크롬웰' 서문으로 낭만주의자들에게 고전주의를 공격할 새로운 증거를 제공했다. 40년이 지나서야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것 역시 그 이전의 반역자들을 공격하는 대형을 형성하고 가장 최근의 '사조(이즘)' 를 공식화하는 새로운 교리에 의해 소개되었다. 그 작가는 바로 에밀 졸라였고 그가 1873년에 필친 깃발은 자연주의였다. 그가 채택한 방법은 '테레즈 라깽'의 서문이었다.
"더 이상 학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졸라가 외쳤다.(그는 자신만의 새로운 학파를 발표하는 그 현장에 있었기에). "더 이상 어떤 공식도, 어떤 종류의 기준도 없다. 각자의 뜻에 따라 연구하고 창조하는 광대한 분야로서 오직 인생 그 자체만 있을 뿐이다." 직접 설명해 나가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나는 분파나 제도를 포함하지 않는 인간의 진실을 추구하므로 어떤 학파를 대변하지 않는다.” 그가 "예술이라는 단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술이라는 말은 필요한 배치나 절대적인 이상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 개념을 포함한다. 예술을 만드는 것은 인간과 자연 밖에 있는 뭔가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라고 썼기 때문에 그 견본은 인생이 되는 것이었다.
누구나 드라마 - 또한 물론 졸라가 유명한 소설가였기에 소설까지도 - 에서 인위성과 관습을 제거하려는 졸라의 열망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흐름이 형태가 없다고 해서 형식을 버리는 것은 예술가를 예술가로 만드는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카메라는 무작위로 삶의 순간들을 포착한다고 말하지만, 생각해보면 렌즈의 초점을 맞추고 카메라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돌리는 사진사 역시 선택행위를 하고 있으며, 대안적인 이미지들을 고르고, 바로 그러한 행동에 의해서 그는 어느 정도 조정하는 사람, 즉 예술가임을 확고히 한다는 것을 선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졸라와 그의 추종자들이 옹호한 '삶의 단면' 을 그린 드라마는 인생이나 사회에 대한 어떤 논평을 하기 위해 선택한 그들만의 조각의 일부이고, 그게 효과가 있을 때 졸라가 아무리 부정해도 예술작품이었다.
한 비평가가 "다소 낭만적이고 구식인” 멜로드라마로 격하했으나 (그리고 일부는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테레즈 라깽'은 예술작품이다. 동시에 새롭고 혁명적이며 형태가 없다고 추측되는 자연주의의 특징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삶의, 특히 하층계급의 우중충한 환경의 더럽고 불쾌한 측면들로 가득 차 있다. 최근 우리에게 '젊음의 귀여운 새'와 '지난여름 갑자기'를 선보인 테네시 윌리엄스 (Tennessee Williams)처럼 졸라는 거리낌 없이 관객에게 공포나 충격을 주었다. '테레즈 라깽'에서 자신의 목표를 강조하면서 졸라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강한 남자와 불만스러운 여인을 등장시킨다면, 그들 속에서 야수성을 찾고, 아수성만 보게 되고 그들을 폭력적인 드라마 속으로 던지면 이런 피조물의 감각과 행위들을 꼼꼼하게 기억하라.... 나는 외과의사가 시체에게 하는 작업을 이 두 살아있는 육체에 한 것뿐이었다."
당신이 극장에서 오락만을 추구한다면 이런 문학적 외과의사에게서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당신의 목표라면 이 작품을 잊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초기 자연주의- 사실주의자의 작품들은 어느 한편도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입센(Ibsen), 스트린드베리 (Strindherg), 졸라. 하우프트만 (Hauplmann) 모두 삶의 추악한 면을 우울하게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작품을 희극이라 칭하며 진정한 희극작가가 소유해야 하는 인생에 대한 거리를 유지한 체홉 (Chekhov)조차 자신의 무대를 비통과 좌절로 채웠다.
에밀 졸라는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나 엑스(Aix)에서 자랐다. 18세가 되면서 파리로 돌아와 돈을 벌기 위해 사무원으로 일했지만 작가로 이름을 날리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술에 대한 서사시인 '목로주점'이라는 소설로 큰 명성을 얻었다. 가장 광범위한 독자를 확보한 이 소설 덕에 그는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일컬어졌다. 이후 '나나' '쟁탈전' '제르미날'을 썼다. '테레즈 라깽' 은 원래 소설이었던 것을 희곡으로 만든 것이다.
드레퓌스 사건(1894년 프랑스에서 유대계 대위, 드레퓌스가 기밀누설 혐의로 종신금고형을 선고받았던 사건)은 몇몇 독자들에게 졸라의 일생 중 가장 떠들썩한 일화를 떠오르게 할 것이다. 이 격정적인 사건이 일어날 초기에 졸라는 드레퓌스의 무죄를 확신했다. 젊은 유대인 대위를 대신해서 졸라가 보여준 합당한 분노의 노력에 의해 그는 정치적 논쟁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드레퓌스 사건이 미처 완결되기 전인 1902년 가을 어느 화창한 9월 아침에 에밀 졸라의 시신이 파리의 자택에서 발견되었다. 하자가 있었던 굴뚝 연기 때문에 밤사이 질식당했다. 자연주의의 일인자는 그의 인생관이나 그가 했던 인생에 대한 설교에 다소 적합해 보이는 그런 우연적이고 역학적인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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