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기국서 총구성 '지피족들'

clint 2023. 11. 11. 17:55

 

 

 

지하철역에서 영화촬영을 한다. 떠돌이 낭인들과 영화의 엑스트라들이 모여 있다. 감독의 인질극장면을 연출하는데 좀더 자극적으로 만들려고 반복 연습한다. 감독은 권위주의적이고 야비하며 즉흥적이다. 엑스트라들은 촬영을 기다리며 잡담하는데 각기 그들의 과거가 내려진다. 이 영화는 폭력 씬 강간 섹스 씬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체계가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다소 코믹해 진다.

<오태영의 빵>

한 제빵인이 계속 불온한 빵만 만들어 빵 심사장에 보낸다. 빵 심사에 통과해야 빵을 팔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데 그 사람은 생활에 쫓기면서도 고집스럽게 감동 줄 수 있는 빵 만들기에 골몰한다. 심사위원들은 대중의 입맛만을 고집한 나머지 독특한 방을 소외시킨다. 그러다가 심사위원들끼리 갈등이 생기고 빵의 전통을 따지다가 문득 떡이라는 화두가 등장하는데…. (1984년 서울연극제에서 계속 떨어진 작가가 연극제를 풍자하기 위하여 썼다)

<기국서의 햄릿5중에서 살인자 장면>

수비자들을 찾아내 살해한 후 실종으로 처리하는 일을 하는 정부조직의 살인자들이 시체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한다. 한 명은 발을 빼려 하고 한 명은 허무주의자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죽은 자들의 눈...... 그들은 참회의 길을 찾으려고 하지만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공포에 떤다. 그러나 그들은 정신의 한계는 각성하지 못하고 잠시 공포를 즐긴 것 뿐, 다시 수배자를 찾아 나선다. (1990년 대학생 의문사 : 이근안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오세영의 점(미아리 텍사스)>

창녀 점례가 성형외과에서 얼굴의 점을 빼고 코를 세운 후에 점쟁이에게 점을 친다. 정례는 부지런히 돈을 벌어서 그 생활을 청산하고 어렸을 적 헤어진 동생을 찾아 인생은 새 출발하려 한다. 창녀촌에 어떤 총각이 약을 팔려 온다. 정례는 약 대신에 그 청년과 동침한다. 성교가 끝난 후 서로의 신상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점례가 무엇을 느끼고 환장을 한다. 창녀촌에서 쫓겨난 청년은 점쟁이한테 자기 얼굴의 점을 뺐으며 누나를 찾고 있다고 말한다. 점례는 술을 잔뜩 마시고……. (사회성 짙은 만화작가 오세영씨의 만화를 극화)

<셰익스피어의 미친 리어>

영화촬영장인 지하철에서 살아가는 미친 거지 하나가 가끔씩 횡설수설한다. 엑스트라들 중에 연극배우가 있다가 촬영이 끝난 후 그 미친 사람을 보고 리어왕을 생각한다. 노인이 되어 미쳐 있는 상태는 어떤 해방이 있을 것인가? 광기 속에서도 현실비판이 매섭게 숨어 있다.

<에필로그>

지피족들이 누워있는 지하철 역에 감독과 엑스트라 한 명이 술에 취한 채 들어온다. 감독은 자기가 찍는 영화가 3류라는 사실을 안다. 그는 냉소적이다. 엑스트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건 사설을 읊는다.

 

 

공연은 한 극단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작품활동을 하는가 하는 것도 관객들에게 중요한 연극감상의 단서가 되리라는 생각 유니버스라는 형식은 각기 다른 내용과 소재를 가지고 같은 목표를 지향하게 되는데 그것은 사회성을 목표한다. 인간의 삶의 모습을 여러 측면에서 살피게 된다면 관객들의 상상력이 훨씬 다양하고 자유로워 질 것이다.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이미지들은 연극인들이 아니더라도 극적인 상황의 이미지로 전환되기가 쉽다. 더구나 그것이 영화 촬영하는 현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현대는 영화처럼 많은 사람이 어떤 환상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소재들로 꽉 차 있다.

 

 

지하철 주변 소외된 군상이야기 지피족들 - 김미도/연극평론가

극단 76단이 공동 구성하고 연출한 '지피족들은 매우 특이한 소재를 이채로운 방법으로 무대화 하였다. 여기서 지피족이란 새롭게 정착해가는 한 풍속도로 지하를 생활공간으로 나름대로의 문화를 소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 명칭이다. 연극은 지하철역의 어느 빈터를 영화촬영 장소로 설정하고 그 곳을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형태에 순간적인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따라서 이 연극에는 크게 세 가지로 구별되는 다른 증인의 상황들과 인물들이 공존하면서 서로 교묘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그 첫째는 촬영되고 있는 영화의 장면들과 촬영에 관계되는 준비 작업들이고 둘째는 촬영이 중단되는 동안 배우와 엑스트라들이 보여주는 삶의 단상들이다. 그리고 셋째는 영화촬영과 아무 상관없이 지하철역 구내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피적인 모습들이다. 영화의 몇 장면들이 갖는 공통점은 살인, 강간 등으로 이루어지는 잔인한 폭력성이다. 영화감독이 조감독, 스크렙터, 배우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폭압적이고 특히 여배우들을 성적으로 억압한다. 영화에 대부분 단역이거나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배우들은 모두 뚜렷한 삶의 좌표를 잊은 채 표류하는 사람들이고 그들 사이에는 무의미한 얘기들이 오갈 뿐. 전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하철역 외로는 걸인 미친 여자 호스티스 등이 지나가는데 이들은 그 아래에서의 폭력과 혼돈과 광란을 집약적으로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연극에는 일정한 줄거리도 특기할만한 사건도 기승전설의 구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단편적인 상황들과 그 상황 속에 던져진 인물들이 물 흐르듯 지나갈 뿐이다. 이처럼 철저히 해체된 구성과 지극히 무의미하고 비논리적인 언어 및 행동의 유희들 속에서 야릇한 극적 쾌감을 느끼는 것은 이 작품이 우리 시대의 한 문학적 징후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기 산업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예술은 요즘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규정된다. 미국의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스는 포스트 모더니즘 예술을 자아상실의 정식분열시 경험의 표현으로 간주하고 그 특징을 대중성 깊이 없음. 주체의 해체. 역사의식 빈곤 등으로 규정한다. 우리 연극계에서도 언제 부턴가 논리적 구성의 파괴, 언어의 격하, 유희성의 확대 공연공간의 새로운 해석등이 포스트 모더니즘적 경향 등외 지피족들역시 그러한 이념의 선상에 놓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햄릿5가 광기 폭력, 욕설 등 자극적 이미지의 과포화 상태로 인해 집약적 느낌이나 성서적 공감을 주기 어려웠던 반면, ‘지피족들'은 해제된 구성과 파편화된 언어들 속에서도 극 전체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중세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즉 폭력과 광기로 황폐화된 세계, 자아와 사랑을 상실한 인간들 대화의 단점과 의사소통의 곤란이 모든 것들로 인한 뼈저린 소외감 등이다이 작품에서는 특히 공허한 말들의 유치가 심각한 허탈감을 안겨준다. 단역배우들 사이에 오가는 말들은 그 이야기 자체가 무의미한 내용일 뿐 아니라 그 말을 들어주는 상대자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어떤 자율적인 시니피에 즉 사물의 본질 같은 개념이 설 자리를 잃고 다만 언어기호의 물적현상인 시니피앙의 순수하고 우연적인 유희들이 겉돌 뿐이다. 이러한 무의미함 속에서 그나마의 의미를 갖는 것은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두 낭인들의 선문답 같은 대화들이다. 그들은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왜 한 인간을 포용할 수 없을까? 고민한다. 이는 바로 20세기 말의 광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스스로의 내면으로 향하는 물음이기고 하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소재의 신선함과 그에 맞는 극적구성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너무 흐드러지고 느슨한 전개를 보여 모호한 이미지들이 다시 미로속으로 달아나는 듯했다. 영화촬영 장면의 급박하고 소란스러운 진행과 두 낭인의 본질적이고 잔잔한 대화, 그리고 지하철역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성광 같은 이미지가 각각 보다 구체화되는 동시에 서로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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