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재현 '하늘아, 무엇을 더 말하랴'

clint 2023. 9. 17. 08:36

 

<진상>이란 신문 연재물의 집필을 맡은 기자 정국태는 6.25당시 국민방위군 교육대 수장을 지낸 서필규를 방문하여 증언을 요청한다. 그러나 서필규는 괴로운 추억을 구실로 이를 거절한다. <진상>은 게재가 시작되는데 당시의 상황을 왜곡하였다고 분개하는 서필규는 마침내 증언을 자청하고 그 증언은 신문에 게재된다. 여기에 문제가 있었으니 당시 부정사건에 관련되어 자살한 박완섭대위에 관한 증언이 위증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필규는 당시 그의 부정사실을 증언을 통해 모두 은폐해버리고 그것을 박대위의 책임으로 돌려버린다. 여기에 박대위의 유복녀인 남주가 서필규를 찾아온다. 남주는 서필규의 며느리인 정아와 동창인 관계, 서필규는 장남 현우, 차남 현성, 장녀 현숙, 그리고 며느리인 정아 앞에서 진상을 밝혀야 했다. 여기서 다시 서필규가 신문에 게재된 사실을 그대로 인정해버리므로 남주는 커다란 실의와 절망을 안고 돌아간다. 위증이 별 말썽없이 넘어가자 서필규는 점차 증언에 앞장서 순교자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박대위의 미망인이며 남주의 어머니인 혜연이 서필규를 찾아옴으로써 20여년 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진상은 마침내 드러나고야 만다. 서필규는 이제는 더 피할 수 없는 진상 앞에 굴복하고 현우를 비롯한 현성, 현숙은 아버지의 비위사실을 신랄하게 추궁한다. 서필규는 진상과 지난날의 환상에 시달리며 비로서 참회의 눈물을 짓는다. 이제는 더 이상 구제할 길이 없어진 서필규, 그러나 현우를 비롯한 현성, 현숙의 자녀들은 다시 옹호하고 아버지의 죄를 그들의 봉사로 덜어 주기로 합의한다. 이제 서필규의 가정엔 다시 태양이 빛난다. 그러나 서필규는 그의 큰 죄를 남긴 채 영위한 속죄의 길로 조용히 떠나는 것이다.

 

 

작가의 글 이재현

오늘의 創作劇은 問題의 결여에 봉착해 있다. 우리가 진정한 우리의 問題를 찾지 못하고, 우리의 정당한 價値觀에 依해 이 問題들을 解決하는 劇이 存在치 않는다면 創作劇의 육성은 아무런 의의가 없을 것이다. 「하늘아, 무엇을 더 말하랴」는 우리의 過去와 우리의 現在에서 소재를 택해 人間 공통의 面的 갈등을 그린 作品이다. 인간생활에는 허위와 부정과 모험이 항상 存在해 왔으며 이들을 극복하고 진리와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人間의 참모습일 것이다. 이 작품의 主人公 서필규는 지난날의 엄청난 과오로 오랜 세월을 번민과 참회로 살아온다. 그러나 그는 그의 生存을 위하여 진상을 은폐해야 했고, 마침내는 그 眞實 앞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게 된다. 罪意識이 人間의 본능이라면 서필규 그는 죄와 벌사이에서 그의 삶을 지탱했고 그의 갈등은 또한 人間本然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背景을 이루고 있는 國民防衛軍事件은 이미 20여년 전에 단죄가 끝난 엄청난 事件으로 더구나 이 事件이 戰爭中에 行해진 犯罪행위이므로 共産主義者들과 대처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많은 교훈을 줄 것이다. 또 하나 이 作品에서 고루한 寫實主義 演劇에 充實하지 않고 많은 幻想場面을 삽입한 것은 表現의 多樣化와 새로운 리얼리즘을 추구하기 위한 시도다.

 

이재현

 

 

국민방위군 사건(國民防衛軍 事件)은 한국 전쟁중 1951년 1월 1·4 후퇴 때 제2국민병으로 편성된 국민방위군에 고위 장교들이 국고금과 군수물자를 부정처분하여 착복함으로써 12월~2월 사이에 500,000명에 달하는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된 이들 가운데 아사자, 병사자, 동사자가 약 5만-9만여명에 이르렸고 동상으로 인해 손가락과 발가락 뿐만아니라 손과발까지 절단난 200,000여명이 넘는 동상자들을 이르게 한 사건을 말한다. 중공군의 한국전쟁 참전으로 인해 예비병력 확충에 어려움을 겪은 한국 정부는 중공군 및 조선인민군에 대항하고자 제2국민병을 편성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국민방위군이다. 이승만은 학도병을 이끌고 낙동강 전투에서 활약했던 김두한을 국민방위군 육군준장 사령관으로 임명해주겠다고 제의했으나 김두한은 사관학교 출신도 아니고 군대경험이 없다고 해서 이승만의 제의를 거절했다. 신성모는 대동청년단 단장 김윤근을 추천하여 육군준장 국민방위군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추가로 병력을 모집하였다. 부사령관에는 독립운동가 출신 윤익헌이 대령으로 특별 임명된 뒤 보직되었다. 이들은 사관학교 출신도 아니고 군대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국민방위군에게 군수보급, 물자를 지급해야 할 것을 고급 장교들이나 간부들이 이를 부정 착복, 횡령하여 수많은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된 이들이 굶어죽거나 얼어죽는 사태가 속출하였다. 1951년 봄 이 사건이 국회(당시 부산)에서 폭로되어 드러남으로써, 이 사건으로 신성모(申性模) 국방부 장관이 물러났다. 국민방위군 사건이 진상규명되는 과정에서 국방장관 신성모를 비롯한 이승만 정권에 의해 진상규명이 방해받는 것을 지켜보았던 부통령 이시영(李始榮)은 제1공화국 정부에 크게 실망감을 느껴 이에 반발하여 사표를 제출하였다. 또한 야당 내에서 이승만에게 호의적이었던 한민당과 민국당계 인사 조병옥, 윤보선, 김성수 등이 이승만 정권에 등을 돌리게 된다. 또 국민방위군 사건을 계기로 군입대 기피현상이 증가했고 및 이승만 내각의 신뢰도가 떨어졌다.

 

소집된&nbsp;국민방위군
국민방위군 사령관 외 5명 총살집행순간

 

6.25 전란중에 최대 범죄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국민방위군사건의 한 관련자가 20여 년 동안 감춰온 자신의 비밀이 자식들 앞에서 그대로 폭로되자 회한속에 무너져 내린다는 얘기가 별로 거창한 정의감을 앞세우지 않고 차근차근 전개된다. 당시의 방위군 교육대 대장이었고 오늘의 대회사 사장인 서필규가 신문에 그릇된 진상을 증언하게 되는 과정과 자식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이 폭로된 후 맥없이 무너지는 과정은 비교적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으나 자주 반복된 환상은 이 경우 오히려 방해가 된 것 같았다. 무대 장치, 연출의 방향, 연기 스타일이 모두 사실적인 색조로 일관돼 있고 과장이 별로 필요없는 무대에 군더더기 같은 느낌만 보태주었다. 서필규 역의 최길호는 약간 답답한 느낌을 주었으나 무난한 상태로 역을 끌어갔고 그의 말 아들 역의 정욱은 침착한 연기로 좋은 무대를 보여줬다. 서필규의 부하였던 박대위의 미망인 역을 맡은 반효정은 이 연극 중에서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 는 장면에서 웅변조의 대사를 맡았는데 그의 억제된 듯한 조용한 항의는 패 효과 있는 것이었다. 정 기자 역의 홍순창이 다른 무대에서 보여주던 희극적 인 얼굴과는 다른 또하나의 침착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재미있고도 과히 부끄 럽지 않은 그럴 듯한 외침도 있는 무대였다. 

 - (일간스포츠 1974년 10월 27일: 구희서 연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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