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옴니버스 '내 마음의 옥탑방'

clint 2023. 9. 14. 09:46

 

 

쓰러지지 않으려고 숨 가쁘게 밟아 왔던 우리들의 페달, 2000년에 되돌아 본 그 곳엔 끝없이 헛도는 사랑이 있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달려오면서 쓸쓸히 돌아본 슬픈 사랑의 편린들 아직도 돌고 있는 두 바퀴 누가 꿈의 페달을 밟고 있는가? 이 연극은 1999년도 이상 문학상 수상 작품집 중에서 대상 수상작「내 마음의 옥탑 방」을 중심으로 연우무대가 옴니버스 연극으로 구성한 것이다. <1978년 겨울, 슬픈 직녀 - 70년대 한 맺힌 사랑><내 마음의 옥탑 방 - 80년대 엇갈린 사랑><물 위에서 - 90년대 실종된 사랑>으로 구성되어있다. 78년 살얼음 같은 군부시절, 자기 스스로조차 방기하고 있는 스물네 살 수호에게 찾아온 소꿉친구 기숙. 그녀가 털어놓는 슬픈 운명과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지금은 익숙해진 옥탑방이 처음 등장한 80년대, 도시의 가장 높은 옥탑방에서 지상으로 내려가고픈 욕망을 가진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의미 없는 사랑이 활개 치는 90년대, 비록 불륜이었지만 사랑이라 믿고 싶은 지은의 사랑이야기..... 그 시대 속에서 살며, 고뇌하며, 사랑하는 사람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며 누구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제1화 '1978년 겨울, 슬픈 직녀'
슬픈 직녀가 기숙이라면 당연 견우는 수호일 것이다. 그렇다면 둘에게 있어 오작교라는 곳은 '여인숙'일 것이다. 여인숙이 이들의 장소는 일시적 만남의 장소라는 곳에서 같은 의미를 지닌다. 1978년이란 그 당시 시대 상황하고도 맞물려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유신정권'이란 시대는 현실을 억압하는 시대이기도 했지만 소설 속에서 나오는 '유신'이라는 말은 「자유」, 「민주」 라는 새로운 해석의 의미를 더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 확장은 화자가 80년(즉, 유신 정권의 시대가 끝난 이후)에서 78년(유신정권시대)을 바라보는 진행 방식으로써 그 설득력과 효과를 더하고 있다. 이런 두 작품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작가는 소설적 장치들을 아주 치밀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단편인데도 시제가 현재, 과거, 대과거의 여러 시제를 혼합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독자로 하여금 시제의 혼란을 주어 작품에 집중시키는 효과를 더하고 있다.
이순원의<1978년 겨울, 슬픈 직녀>는 이순원이 이전에도 항상 추구해 왔던 것처럼 우리가 처해 있는 모순된 역사적 현실을 페미니즘의 차원에서 구조적으로 비판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주제를 가진 대개의 작품들은 자칫 잘못하면 그것이 지니고 있는 계급투쟁적인 성격 때문에 지나치게 경직되게 마련이지만, 작가 이순원은 눈의 이미지를 통해 억압된 현실을 서정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특히, 후반부에 나타난 여주인고의 표면과 이면, 즉 외양과 실체 사이의 괴리를 전체적인 플롯과 융합시켜 독자에게 '놀라움'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은 이순원만의 몫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놀라움이 미학적인 충격으로 승화되지 못한 것이 적이 아쉬웠다. 왜냐하면 이러한 '놀라움'은 미학적인 거리를 둔 삶의 신화적이고 운명적인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허위적이고 감상적인 도식에서 비롯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 이순원
1957년 강릉의 전형적인 유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마땅하게 읽을 동화책이 없어 박종화의 삼국지로부터 이광수, 김승옥에 이르는 현대소설들, 번역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것이 후일 문학 공부의 기초가 되었다. 명륜 중학교를 거쳐 강릉상업고등학교에 재학 중 농군이 되기로 결심하고 대관령으로 올라가 독자적으로 2년간 고랭지 채소 농사를 지었으나, 선천적으로 몸도 부실하고 인생을 문학으로 끝을 봐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강원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아 한국 문학 작품에 대한 필사와 습작을 시작하였다. 교련 거부로 강제 징집당하고 복학 후 유감없는 문청 시절을 보냈다.
신춘문예에 단편「소」가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단편 「낮달」로 1988년 신인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6년「수색, 어머니 가슴속으로 흐르는 무늬」로 동인문학상을, 1997년 「은비령」으로 현대문학상을, 2000년으로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재2화 '내 마음의 옥탑 방'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일들은 일어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은 형체가 없고 잡을 수도 없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우연히 발견한다. 남자는 백화점 안내 데스크의 예쁜 여자에게 가방을 맡겼다가 찾는다. 안내 푯말 뒤의 여자에게 아는 체(인사)를 하고 어느 날 가방 맡아준 고마움의 표시로 저녁을 사겠다고 하자 여자는 저녁 대신 커피를 사달라고 한다. 배경은 9월이고 가을이다.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만난다. 박상우의 소설 '옥탑방'은 전혀 따뜻하지 않는 사랑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여자(주희)는 '시지프의 신화'를 읽어 달라고 남자에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들은 그녀의 '옥탑방'에서 사랑의 몸짓 대신 시지프의 신화를 반복해서 읽고 듣는다. 남자가 그녀에게 '시지프의 신화'를 건네 줄 때, 그녀의 방에서 하룻밤을 보낼 때조차 색다른 일은 없었고 그저 남자는 그녀를 사마귀처럼 안아 주었을 뿐이다. 남자(민수)는 28살이다. 민수는 형의 집에 같이 산다. 민수의 형은 암암리에 결혼에 대한 압력을 가한다.
그러던 9월말 주희는 민수를 자기가 살고 있는 옥탑 방에 데려간다. 엷은 화장품 냄새가 배어 있는 여자 방에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리고 시월 한 달 내내 민수는 행복하다. 민수의 외박이 잦아진다. 한번만 안아 봤으면 좋겠다고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을 때 여자는 젖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사마귀처럼 안아 줘'. 남자는 그녀의 등을 껴안는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으로서의 포옹도 여자는 허락한다. 십일월 여자의 엄마가 죽는다. 남자는 여자에게 절망적인 물음을 묻는다. "내가 누구인지 알겠어?". 이 말을 듣고 주희는 민수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민수 씨,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민수 씨가 나에게 무엇이라도 되는 양......".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민수는 주희를 만난다. 민수는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나, 주희를 만나던 모든 순간에 주희를 사랑했었어.", "민수 씨, 이러지마... 제발, 이제 더 이상 나를 흔들리게 하지 마."
12월이 된다. 크리스마스는 연인을 위한 날인 듯싶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연인들은 새로 생기고 또한 세상도 밝아지지만 이 소설을 정반대다. 민수는 크리스마스이브 날 옥탑 방에서 주희를 기다린다. 주희는 외박한다. 민수는 절교의 편지를 쓴다. 주희는 일하는 직장(백화점)을 그만둔다. ... 그리고 주인공은 10년이 지난 시간에 그녀(주희)를 생각하고, 자기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소설은 끝이 난다.
사람들을 지나간 과거를 지니고 살아가고, 사랑은 지나간 과거의 전부가 될 수가 있다. 소설가 박상우 씨는 인간 내면의 지나온 과거를 이 작품에서 말하려 하는 듯하다. 문학이란 삶에 대한 반성적 의미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이 소설은 이것을 상기시킨다. 1999년 이상 문학상 수상작이다.

 

 

작가 박상우
198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독산동 천사의 시', '사랑보다 낯선', '화성', '짬뽕'과 장편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가시면류관의 초상', '지붕' 등을 발표했으며,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 방'으로 이상 문학상을 받고 작가로서의 정점에도 올랐다. 하지만 그런 그도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회의를 느끼고 글을 쓰지 못해서 괴롭고 답답한 나날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세상에 몸을 드러내는 대신 무작정 혼자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월정사 전나무 길과 만항재, 말무리반도와 대관령……. 외롭고 긴 행로, 멀고 아득한 마음의 길을 참으로 오래 걷고 달린 끝에 그가 만난 것은 혼자이기 때문에 완전한 나, 그리고 혼자 길 떠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완벽한 충만 이었다. 그래서 '가시면류관 초상'은,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선 자의 내밀한 기록이자, 여행을 또 다른 삶의 영역으로 확장한 작가가 들려주는 몸과 마음, 영혼을 위한 길 찾기이기도 하다.

 


제3화 물위에서
모든 관계는 어차피 불통(不通). - 작가 김인숙
그가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한 내가 순결하지 않은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그가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 한 내가 순결한 것 역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가 사랑 때문에 나를 만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권태 때문에 나를 만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나를 원하는 쪽은 그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가 나를 원하는 만큼의 공간에서 그가 편안했던 것이다. 한때 그는 유부남이었고, 나는 그의 숨겨진 여자였다. 내가 숨겨진 여자로써 내 자리만 지켜준다면 그는 나와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술을 마실 수 있었고 그리고 같이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나를 원하는 건 당신이지 내가 아니에요." 두 번째 담배의 꽁초를 비벼 끄는 그를 누운 자리에서 바라보다말고 나는 소리쳐 주고 싶었다. 적어도 그때까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관계에 대한 소망은 그에게 있지 내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너,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니? 너 콜라 다 마시고 그 콜라병에다 바람 불어넣어 본 적 있어? 피리소리 같은 게 나지? 그 소리가 뭐라고 하는 건지 아니? 외로워, 외로워... 심심해, 심심해 죽겠다구..." 그런단다. 윤숙의 표현에 의하면 그나 김이나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빈 콜라병들이었다. 가정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거나, 혹은 아무 문제도 없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너무 심각해져 버려서 갑자기 생이 공허해진 남자들. 탄산음료가 다 빠진 뒤의 콜라병 같은 사람들. 색소도 빠지고 단물도 빠지고 기포도 다 사라진 뒤의, 구멍만 남은 텅 빈 유리병 같은 존재들... 그들이 그 텅 빈 병에다 무엇을 채워 넣고 싶어 하는지, 그건 우리가 상관해야 할 바는 아니었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한, 어쨌든 비굴한 건 그들 쪽이니까. 텅 빈 병이 채워지기를 원하는 건 어쨌든 그들 쪽이니까. 언젠가는 또다시 말끔히 비워질 병이기는 하겠지만, 그만큼 뒤끝이 깨끗한 관계가 또한 그런 거니까.
무관심만큼 가혹한 이별은 없다는 것을 나는 그때에 알았다.
"기껏해야 창녀 같은 것들...?" 나는 힘차게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창녀처럼... 길거리의 창녀처럼 말이다. 그가 나를 떼어 내려고 했으나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놓아 주지 않았다. 나는 그 상태로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창녀예요. 기껏해야 창녀인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래요. 그렇지만 당신은 내게 아무런 화대도 지불하지 않았지요. 그러니 당신은 내게 말해야 해요. 나를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를 사랑해 왔다고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요." "뭘 하는 짓이야!" 나는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낮은 목소리로. 최근에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버석거리는 목소리로.
마당 저편에서 아직도 김이 나와 태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분노가 부글거리는 눈빛이었다. 그는 나를 열렬히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알 수 없는 간절함으로 울고 싶어 하는 눈빛인 것도 같았다. 나는 그를 부드럽게 안고 그에게 따뜻한 키스를 해주고 싶었다. "괜찮아요." 라고도 말해 주고 싶었다. 어차피 소통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니까요.
그러니 "괜찮아요." 라고.
그리고 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고작 종이컵 한 잔의 소주를 마셨을 뿐인데도 됫병 소주 한 병을 말끔히 비운 사람처럼, 나는 턱없이 생에 대해 도도해진 것 같은 발걸음으로 마당을 가로질렀다.
나는 멈추어 선 채로 내게로 달려오고 있는 김을 오래 바라본다.

 

 

작가 김인숙
1963년 서울특별시 은평구 갈현동에서 태어났다. 1967년 5세 때 아버지가 지병으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으며, 이후 하숙을 치는 어머니 밑에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숙명여자중학교와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87년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였다.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상실의 계절'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고, 같은 해 장편소설 '핏줄'을 발표하였다. 1985년 장편소설 '불꽃'을 발표하였으며, 1987년 대학시절 민중문화연합 산하의 굿패 '해원'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장편소설 '79~80 겨울에서 봄 사이'(전3권)가 출간되었다. 1988년 단편소설 '강'을 발표하였으며, 보고문학 '하나 되는 날'로 전태일문학상 특별상을 받았다. 1989년 단편소설 '가까운 불빛', '부정', '봄이 오면'을 발표하였고, 1988년 소설집 '칼날과 사랑'을 발표하였다. 1990년에는 중편소설 '한 여자 이야기'와 단편소설 '관리인 차씨'를 발표하였다. 1993년 '칼날과 사랑'을 발표한 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생활하다가 1995년에 귀국하였으며 중국 다롄에 잠시 거주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많이 쓰여진 소재임에도 우리의 현대사를 아프게 되새기게 해준다. 70년대를 직물공장에서 꿈을 삭인 젊음과 무력하나마 시대의 폭력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던 젊음이 서로의 상처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그림, 그 자체는 이미 진부한 소재이나, 두 사람이 어린 시절에 공유하고 있는 기억의 상처가 복선으로 드리워져 있어 아픔의 깊이를 획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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