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한국희곡나상만 '박통노통'

clint 2023. 9. 16. 07:48

 

 

박통과 노통의 저승 세계를 풍자와 위트로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재미있는 대사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대사 속에 숨어있는 풍자와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또한 저승세계라는 특이한 공간을 다양한 무대적 수법으로 채우고 있다.

사실주의와 부조리극적인 연기가 적재적소에 교차되며,

영상과 가면의 활용, 셰익스피어 비극의 극중극 등 다양한 연출 수법이

연극의 재미를 상승시키면서 무대 공간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노 대통령의 영결식 장면과 유서의 낭독으로부터 시작한다.

관객들은 첫 장면에서 숨을 죽이며 저승세계로 들어서는 노통을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극이 아닐까 하는 섣부른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의 영결식 장면을 지켜보면서 노통을 기다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첫 마디 대사가 나오자마자,

결코 한쪽으로 기울이지 않는 연극임을 확신하게 된다.
"왜 이렇게 늦었는가?"
"49제를 마치고 왔습니다"
"자네는 성당에 다녔잖아? 그런데 장례는 불교식으로? 이거 완전히 짬뽕이잖아!"
"비빔밥이면 어떻습니까? 생과 사가 다 자연의 일부분이 아니겠습니까?
이 연극은 처음부터 박통과 노통의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인다. 더구나 담배 한 대를 건네는 박통에게 양주 시바스 리갈을 선물하는 노통의 응수가 예사롭지 않다.
2장의 타이틀<개와 고양이>장면은 견원지간을 상징하는 실험극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의 인생역정과 정치철학이 다른 그들에겐 대화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다. 상대를 비방하며 조롱하고 상대의 업적을 폄하하고 부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합의점을 찾게 되고 대화의 실마리를 푼다.

 

 

 

3장<저승 청문회>는 5.16과 12.12 사태를 일직선상에 놓고 공격하는 노통에게 박통이 변명하거나 차별화하는 전법으로 맞서고, 4장<한잔 하세>는 노통의 실책과 실언을 질타하는 박통의 대사가 무게를 싣는다. 그러나 이 연극의 반전은 여기서부터 다. 절묘하게도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는 이 연극의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작용을 하면서 화합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5장<지구를 내려다 보며>와 6장<죽음의 연극>에서 단순한 정치극이 아님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승 세계를 그리워하며 막걸리를 마시고 거나하게 술에 취한 그들이 서로의 애창곡을 부르는 장면은 마치 인간 박정희와 노무현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만취한 그들이 지구와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절규는 참으로 애절하다.
"귀를 열어라!"
"마음을 열어라"
"우리들의 음성이 들리느냐?
그러나 이 연극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에 있다. 박통의 피살을 의미하는 시어저의 독백과 노통의 자살을 상징하는 햄릿의 독백, 그리고 자살을 결심한 플라톤의<파이돈>에 나오는 백조의 노래가 가면극으로 전개된다. 이어 노통의 유서를 다시 듣고 싶은 박통에게 노통의 마지막 유서가 육성으로 이어진다.
박통은 노통의 모든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자살만은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그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
" 이 총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네. 나 또한 그 희생양이 되었네. 난 나를 침몰시킨 원수를 찾아 30년 동안 저승 구석구석을 찾아 다녔네. 그러나 이 순간, 보복이 아닌 용서를..... 원수를 사랑하라는 신의 음성을 들었네. 자네를 통해서 말이야. 나는 이 총을 가장 아름답게 사용하고 싶네."
자살을 신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한 박통은 노통을 다시 탄생시키고 싶은 모순(?)으로 노통의 가슴에 총구를 겨눈다. 죽음을 결심한 노통의 마지막 대사는 우리의 가슴을 적시는 비극이자, 하나됨을 상징하는 희망의 메시지다. "사랑합니다, 선배님!"

 

 

 

작가의 글
〈박통노통〉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고 영감을 받아 쓴 작품입니다. 〈죽음을 잊은 그대에게〉가 20여 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면, 이 작품은 구상에서 공연에 이르는 기간이 불과 4개월도 채 되지 않는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작품이 갖고 있는 이슈가 워낙 강해 스폰서 잡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로도 완성되었지만 대선 판도에 영향을 미칠까봐, 그리고 정치판의 괜한 오해가 염려되어 출판을 미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자살이 유난이도 많은 이 시대에 시사 하는 바가 크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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