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남정희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clint 2023. 9. 19. 13:40

 

여자(피어나)가 혼자 살고 있는 아파트에 어느 날 한 남자(원일)의 전화가 온다. 남자는 오늘 강연회에서 다이어리를 주웠고 거기에 주소와 전화번호가 있어 연락해서 전해주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남자가 방문한다. 그는 이 아파트에 들어오며 무척 놀란다. 고급 맨션이기에, 그리고 여자가 홀로 살고 있기에. 피어나는 남자에게 차를 대접하고 고마움을 표한다. 남자는 여자가 여러모로 궁금하다… 30대 초중반의 여자는 웃음이 없다. 어느 정도 얘기가 진행될 때 전화가 온다. 아마도 그녀의 남편인 것 같다. 원일은 서둘러 인사하고 아파트를 나선다. 잠시 후 그녀의 남편(서경)이 들어온다. 부부사이인 두 사람의 대화는 뭔가의 문제로 별거중인 듯하다. 그래서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는 남편의 말이 계속 나온다. 그러나 좀 더 얘기가 진행되면 남편에 대한 여자의 불만이 대부분이고 대충 봉합하고픈 남편의 달래는 듯한 말이 나온다. 여자는 잠을 못자고, 신경안정제를 몇 년째 먹고 병원을 다니며 그래도 병은 더 나빠질 뿐이고, 남편은 남편대로 불만이 가득하다. 10년차 부부, 남편을 회사일에 전력하느라 그랬다지만 아내는 남편과 애들을 내팽개 치고 집을 나가느냐고 다그치고아내는 10년간 남편 맘대로인 부부생활로 그렇게 별거하게 된 것이고, 여자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나절대 못 들어 준다고 하는 남편, 결국 그런 아내를 구타하고 돌아가는 남편이다. 다음날 원일이 다시 방문한다. 엊저녁 방문한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묻고 여자는 남편이라 말한다. 남편과는 달리 이 남자와는 대화가 술술 풀린다. 어느 빵집을 하는 원일은 우연히 만나게 된 이 여자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러나 이 여자가 개인적인 문제가 있는 걸을 느끼고 그걸 묻고 여자는 솔직하게 대답한다. 웃음이 없는 여자를 웃기게 하기 위해 배꼽춤까지 추며 웃겨주는 원일그리고 여자의 정신이 비정상적인 부부생활로 황폐해져 잠도 못 자고 정신쇠약 증세가 있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다해 여자를 위로하고 여자를 사랑하려 하나 그러나 여자는 최소한 자신이 지켜야 할 선이라며 거부한다. 나중에 천국의 문에서 만나자고…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을 다시 보면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다.

 

 

작가의 글 남정희

이 작품의 주제는 각각 다른 가정을 가진 두 남녀가 일상(日常)의 연속인 가정생활에서 오는 분기점에서 자기의 상황을 벗어나 보려고 하는 몸부림을 묘사한 것이다. 이 작품의 내용이 언뜻보기엔 관능의 세계를 다룬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관능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의 근원이 현대극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나 이 작품을 통하여 작가가 제시하려는 진의는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성()모랄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남녀의 만남을 통하여 인간인 점을 다시 확인하고,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성 내부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상충대립 다시 말해서 인간의 순수 한 욕구와 사랑의 절대 성()과의 극적대립과 갈등을 묘사하려고 애썼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 두 사람 공히 사랑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끝없는 갈망, 그래서 그들은 뜨거운 이성의 체온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럼에도 끝내 각기 다른 두 남녀의 뜨거운 체온의 맞부딪침을 거부한다. 도덕이나 윤리, 겉치레 지성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인 점이 더욱 소중하게 때문에 순수한 육체적 욕구 위에 사랑의 절대성()이 군림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위선일지 모르지만 더불어 그들이 함께 얻은 것은 보다 더 차원 높은 정신적인 공통점을 통하여 정신적인 일체감을 얻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극적 갈 등의 설정을 통한 극의 전개는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예비적 설명을 통한 복선의 교묘한 설정으로 사건이 우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그럴싸한 연유가 따르고 교묘하게 복선이 그어져 있다는 점이 특히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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