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성금호 '매일 자수하는 남자'

clint 2023. 8. 29. 10:45

 

나이트클럽 <검은 고양이> '하춘자'라는 예명을 가진 50이 넘은 늙은 웨이터 박봉남.

이름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 도무지 찾는 손님이 없다.

매일 같이 나이트클럽 사장에게 구박을 받던 그는 30년 동안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예명을 바꿔야 하는 위기에 몰리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고민하던 박봉남은 새로운 예명으로 '김정일이라는 이름을 짓고

'웨이터 김정일'로 변신한다.

변신은 대성공이었다!

하루아침에 일등 웨이터의 자리에 오르게 된 박봉남,

그러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름을 쓰고,

그의 얼굴을 이용해 홍보 포스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제7조에

의거한 찬양·고무 및 불법 제작물 유포 등의 위반 혐의로 심지어 6개월 구속까지 된다.

실형선고를 받은 박봉남은 억울한 심정으로 감방 안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된다.

수형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박봉남은 자신을 구속시켰던 형사들이 통일원 산하 남북교류 협력국 경호팀으로 자리를 옮겨

북한 측 인사들을 경호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보게 된다.

이에 박봉남은 형사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한 기자의 도움으로 여론화 시키게 된다.

결국 재판이 이루어지고 박봉남은 자신을 판결했던 판사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법정 구속시켜 피고석에 세우게 된다.

모든 일이 해결되고 다시 '웨이터 김정일로 돌아온 박봉남은

공안당국에 자신의 위법 사실을 매일 자수하는데……

 

 

주지하다시피 국가보안법을 보는 시각은 3가지다. 첫째는 완전 철폐이고, 둘째는 개정, 그리고 셋째는 존속이다. 철폐를 주장하는 쪽과 존속을 주장하는 쪽의 논리와 명분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매일 자수하는 남자> '국가보안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역설적으로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단순하고 만화적인 발상으로 풍자하고 있다. 가능하면 국가보안법'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각의 사람들이 다 같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보고자 노력했다.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연극의 목적도 아니고, 작품성을 훼손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중간자 입장에서 '국가보안법'을 어둡고 무겁지 않게, 대신 가볍고 경쾌하게 희화화하여 보고자 한 작업 이 바로 이 작품 <매일 자수하는 남자>이다.

 

 

 

작가의 글 성금호

(2004년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 <행복한 우리집에 놀러오세요>)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서, 1948년 이전까지 없었던 법률들이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그 법률들 중에 형사소송법은 국가 내란 및 간첩에 관한 조항을 넣어서 처벌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국 사회 내부에 정치적 기반이 약했거나 정통성이 약했던 이승만정부와 역대 정부들은 반공법, 보안법 등을 만들어서 보완하고 통합하며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그 명성을 유지한 채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6.25를 거치고 남북 대치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가보안법을 다루기가 어려운 지점이 있었지만, 이제 한국사회는 상당부분 성숙해진 듯하다. 또한 유엔 인권위원회와 세계 인권단체들이 모두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면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는 정치권에서도 심각하게 고려되어 지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론의 여론조사가 52%를 넘어서고 개정까지를 포함하면 80%에 이르는 시점에서 국가보안법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택시에서 말 한 마디 잘못해서 간첩으로 몰리고, 막걸리 마시다가 말 잘못해서 간첩으로 몰리던 법. 하여 '막걸리 법'이라고도 한 '국가보안법'을 이제 시대가 달라진 관점에서 희화화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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