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미현 '장판'

clint 2023. 7. 28. 18:15

 

연극 <장판>은 우리 사회의 맨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이다. 장판이라는 제목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이웃노인이 시골에서 가족들을 등지고 도시로 떠나올 때 장판 밑에 숨겨진 흰 당나귀 판 돈을 들고 나왔으나 남겨진 가족들의 걱정으로 결국에는 달랑 서울로 오는 차비만 꺼내고 나머지는 다시 장판아래에 두고 나왔다는 이야기에서 그의 삶이 장판에서 시작되었다는 의미와 생활하는데 가장 밑바닥에 우리와 맞닿아 있는 장판 그리고 뗄레야 뗄 수 없는 장판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한겨울임에도 난방도 되지 않는 방에서 냉골에 몸을 뉘이는 세 가족과 그 옆 방에 사는 이웃노인세명의 가족 중 유일하게 엄마만 건물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고 이웃 노인은 생계형 도둑으로 이들의 생필품까지 공수를 한다. ​유일하게 꾸준히 일하는 생계형 도둑이다. 필요한 물건 외에는 절대 가지고 나오지 않고 옆방에 사는 이웃의 주문까지 받아 물건을 구해다 주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지지리도 고생스럽게 살아가는 인생을 풍자와 위트로 웃음을 버무려 보여주지만 마지막 도둑일에서 2층에서 도망치다 대퇴부를 크게 다친 이웃노인... 당장 일을 못하게 되자 이 가족들 모두 비상이 걸린다. 그러나 모두 뜬구름 잡는 몽상을 거창한 사업계획이란 말로 얼버무라는 가족들... 그들의 뒷모습에서 그 모든 것을 역설이 아닌 현실을 느끼게 한다, 이제 개천에서 용 안 난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는 세상에 되었으니 말이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삶을 유희하는 한 가족과 그들과 동거하는 칠십 노인의 황당하면서도 비상식적인 일상을 통해 삶의 본질과 인간존재의 불안함을 예리하게 파헤친 작품이다자신이 만든 틀에 갇혀 진짜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것은, 신화적인 발상이 되어버린 현실의 이야기다. 그건 마치 풍선껌을 타고 하늘을 올라가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 부모의 재력이 나의 능력이 되어버리는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까발림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떤 선이 정해져 있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떤 환경을 거치느냐에 따라서 모든 게 정해져 버리는 인생. 재력이 없는 부모 밑에서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해도 그 모든 것이 일시에 정지선이 되고 만다. 언제부터 이러한 뒤틀림이 시작되었을까. 지극히 현실적인 이 사실을 부조리라고 여겨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무런 일도 시도하지 않았음에도 한사람의 인생을 점칠 수 있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하는, 이 현실에 대한 적나라함을 보여준다.

 

 

자기만의 극작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작가 윤미현!

실험적이면서도 분명한 자기색깔을 가진 윤미현의 희곡이 섬세한 손길을 통해 당대의 명품연극으로써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탄생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가 윤미현은 지독하다. 화려한 도시 문명 속에 감춰진 인간의 그늘진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성찰하게 한다. 행복으로 포장된 가식을 걷어내고 시궁창 위에서 발악하는 인간존재의 본질을 무섭게 파고든다. 그녀의 희곡은 깨진 유리조각 같으며 식도에 걸린 생선가시와 다름이 아니다.

이 작품 [장판]은 그래서 슬프고 아프다. 그 고통을 역설과 풍자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