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리에르의 작품 중 문학적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소극적인 갈등은 거의 씌어 있지 않으며, 극은 오로지 등장인물의 심리발전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어디까지나 성실. 엄정을 존중하는 주인공의 성격이 본질적으로는 웃음거리가 아닌 작가의 미덕이란 의미에서 이 작품은 때로 물의를 빚어냈다. 루소는 이 작품을 미덕을 조소한 부도덕한 작품이라고 비난했다지만, 몰리에르가 웃고 있는 것은 아르세스뜨의 생활신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방법이나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과장, 엉뚱한 분격이 그 대상인 것이다. 핀랑뜨는 아르세스뜨의 독실함을 높이 사면서도 "완전한 이성은 모든 극단을 피하고 절도 있는 총편을 요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작자의 사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 작품의 재미가 당시 사교계의 풍속을 비평한 데서 나왔음은 물론이다. 여주인공을 비롯하여 그를 둘러싼 무리들, 가짜 정녀인 아르시노에, 다시 세리메느의 신랄하고도 극히 묘사력이 풍부한 인물 비평,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소한 승패나 볼품이나 질투에 정력을 쏟고 있는 사교계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몰리에르로서는 드물게 많은 시간을 들여 추고를 거듭했다고 하는 이만큼 줄거리의 얄팍한 장면은 볼 수 없고, 5막이 각각 고도의 문학성을 갖추고 있다. 역사가 미슐레(Michelet)와 몰리에르의 전기를 기록한 그리마레(Grimarest)에 따르면 이 작품은 극작가로서 몰리에르의 역량이 최대로 발휘된 작품이다. 또한 부르주아 계층을 주된 묘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희극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으며, 이는 그의 작품에서도 유일한 것이어서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메난드로스의 <무뚝뚝한 사람>, 셰익스피어의 <아테네의 타이먼>에서도 <인간 혐오자>의 아르세스뜨와 같이 자기중심적인 아집으로 가득 찬 인물들이 나온다. 하지만 몰리에르는 작품의 무대를 당대의 사교계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현대성을 찾을 수 있다.

운문 5막 희극인 이 작품의 무대는 스무 살의 나이로 과부가 된 세리메느의 살롱이다. 이른 나이에 과부가 된 미모의 소유자 세리메느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아르세스뜨를 비롯한 여러 젊은 귀족들이 경합을 벌이는 것이 주요 사건으로 펼쳐진다. 아르세스뜨의 주된 경쟁자는 올롱뜨라는 사람으로 1막에서 두 사람은 소네트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그는 이를 빌미로 법원에 제소되는 사건에 휘말린다. 게다가 아르세스뜨가 사랑하는 여인인 세리메느마저도 기만과 배신을 일삼고, 사랑의 감정을 저울질하는 등 그로 하여금 사교계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한다.
권력을 추종하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비난과 험구가 난무하는 사회. 아르세스뜨는 설령 법원의 판결에서 패소하더라도 이를 “우리 시대의 악덕을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이자 유명한 증거로 후세에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보여준다. 이로써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영원히 저주하고 증오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는 아르세스뜨, 그의 인간 혐오증이 갖는 완고함은 당대 사회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있지만, 역으로 당시는 물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 코리 '탄갱부' (1) | 2015.11.10 |
|---|---|
| 데오도르 압슈타인 '송금' (1) | 2015.11.10 |
| 월레 소잉카 '늪지대 사람들' (1) | 2015.11.09 |
| 존 카리아니 '올모스트, 메인' (1) | 2015.11.09 |
| 히라타 오리자 '혁명일기' (1) | 2015.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