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수진 '친절한 에이미 선생님의 하루'(확장본)

clint 2023. 4. 3. 10:12

 

어느 일반계 고등학교의 1학년 교무실. 오늘도 에이미 선생님은 가장 먼저 출근해서 책상을 닦고, 자신이 아끼는 난초 화분에 물을 듬뿍 준다. 난초에게 애정 어린 찬사를 건네 보지만, 이내 시들해져가는 화분에게 부아를 낸다. 같은 교무실에 근무하는 최 선생님, 이 선생님, 강 선생님이 차례로 출근하고, 학생들과 교사들의 좌충우돌 하루가 시작이 된다. 에이미 선생님은 최 선생님에게 강 선생이 두렵고, 아들 하나 건사하기 어렵다고 넋두리를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누가 뭐래도 열심이다. 매일 지각을 하는 자기 반 시원이 걱정에 애가타서 반장에게 시원이를 돌보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집에 전화를 하는데, 시큰둥한 학부모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는다. 점심시간, 에이미가 자리를 비운 사이 후배 교사들은 전자 결재도 못하고 인터넷도 못하는 그녀가 매일같이 화를 내며 아이들을 야단치는 모습은 이해가 안 간다며 흉을 본다. 그 사이, 기다리던 시원이가 나타나고 무기력하고 무성의한 태도에 에이미의 분노는 폭언으로 쏟아지는데...

 


친절한 에이미 선생님이 돌아왔다. 2018년 신춘문예 단막극전에서 고등학교 교무실 풍경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던 <친절한 에이미 선생님의 하루>가 더 풍부해진 이야기로 돌아왔다. 2021년에도 에이미 선생님은 여전히 헌신적이고 근엄하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각을 하거나 수업시간에 핸드폰을 보는 일은 용납하지 않는다. 자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다시 무대에 펼쳐진 그녀의 교무실에는 이전보다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욕구가 교차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50대 교사 에이미는 2,30대 젊은 교사들을 이해하기는커녕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다. 몇십 년 동안 금과옥조로 여겨온 ‘혼을 내서라도 바른길로 인도한다'는 교육철학도 이제는 ‘버르장머리 없는' 학생들에 의해 비인권적인 행위로 규정되고 에이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애들이 근성이 없네, '교권이 땅에 떨어졌네 하는 넋두리를 혼자 중얼거리는 것 정도다. 21세기도 20년이나 흐른 지금, 학교현장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 정규직과 비정규직, 성적지상주의와 자아실현 우선주의의 충돌양상은 더욱 확연해졌다. 학력, 학벌, 나이 등의 경계가 흐려지고, 과거의 위계질서가 통용되지 않는 학교는 친절한 에이미 선생님에게 불친절하기만 하다. 이런 세상을 향한 에이미 선생님의 반응은 다분히 적대적이고 신경질적인데 이는 자신의 기준을 '정상적이고 '안정적이라고 여기던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에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음을 드러낸다. 또, 에이미 선생님이 강하게 설파하는 ‘애미’의 모습은 얼핏 아가페적인 어머니상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세계를 재단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기성권력의 억압적 성향이 투영되어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초연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젊은 교사와 학생들의 생각, 학부모와의 관계 등도 추가 되었다. 선배교사들보다 학생들의 의견에 더 공감하지만 비정규직의 신분상 제약에 움츠러드는 기간제 강 선생님의 목소리는 공고한 기성가치관의 벽 앞에서 2030세대가 자신의 의견을 세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편 어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학업, 진학, 진로, 가정문제 등 각자의 과제를 안고 학교에서 버텨내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은 안쓰럽기만 하다.
연극 <친절한 에이미 선생님의 하루>는 이번에도 학교 현장의 모습을 매우 핍진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핍진성은 에이미 선생님의 하루를 학교와 교육이라는 범주를 넘어 현재 우리 사회 일반이 처한 다층적인 갈등 양상으로 보게 해준다. 특히 교사의 고유권한인 평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학부모의 등장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왜곡시키는 외부의 힘으로 작용하며 이야기를 학교 밖으로 확장시킨다. 1교시부터 7교시까지 숨 가쁘게 흘러가던 교무실의 하루가 끝날 무렵 에이미 선생님은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난초에 물을 준다. 이제 말없이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명문대 들어간 제자가 선물한 난초 화분뿐이다. 에이미 선생님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눈 반짝거리는 제자를 기다리며 화분에 물을 붓고 또 붓는다. 하지만 그녀의 애정이 흘러넘칠수록 까탈스러운 난은 시들어만 간다. 상호 이해 없는 '선의'가 '악의'가 되고, 맹목적 '친절'이 '폭력'이 되어버린 친절한 에이미 선생님의 하루는 이렇게 서늘하게 저물어간다. (드라마터그 고수진)

 


작가의 글
에이미 선생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2015년부터입니다. 그 즈음의 저는 늘 페이스북에 하루가 멀다하고 세상이 왜 이러냐는 분노를 터뜨리기 바빴습니다. 세상이 내가 배웠던 그 모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세상이 무언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매일 정의, 도덕, 의리, 신념 등등을 머릿속에 굴리고 굴려서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2017년 12월, 동아일보 신춘문예 마감일에 눈이 왔습니다. 마감 날 아침에 시작한 글쓰기는 은행 문 닫을 시간에 맞춰 끝이 났습니다. 헐레벌떡 한양대 우체국에 우편을 붙이고 돌아서는 길에 반가운 눈을 맞으며 그리운 친구를 만나러 갔습니다. 미뤄놨던 숙제를 한 기분이었습니다. 뭐, 내년에는 더 잘 되겠지. 2018년에는 극단 파수꾼과 만나서 <친절한 에이미 선생님의 하루>를 상연하였습니다. 극단 파수꾼을 만나서 너무 행복하게 작업했습니다. 에이미 선생님 역을 한 권지숙 배우님이 에이미의 긴 독백을 머릿 속에 있던 그 호흡으로 읽었을 때 소름이 끼치기도 했습니다. 사실, 희곡은 극장에서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품에 난 많은 허술함은 연습실에서 보완할 수 있겠지 하고 막 던지는 마음으로 희곡을 써내려갔는데, 막상 연습실에 들어가 보니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고수진 드라마터그 선생님께서 꼼꼼 하게 짚어주셨습니다. 이제 다시, <친절한 에이미 선생님의 하루>는 관객을 만나게 됩니다. 연극은 관객의 머릿속에서 완성되고 그곳에서 살아남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교차점에서.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 그 순간에 꽃피는 것이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의 어떤 기억과 감각으로 완성될지 궁금합니다. 이번에는 객석에서 맥락 없이 혼자 히죽거리지 말아야 할 텐데. 가장 열렬한 관객은 작가이거든요.

 

이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