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의 원작에서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공간 밖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극의 내용을 이룬다.
리어가 왕으로써 아버지로써 존경과 사랑을 영원히 받을 거라는 믿음이 무너지면서 추락과
배신의 소용돌이 속에서 분노. 자괴감, 허무에 갇히며 자아를 상실하며 점점 무너져 내린다.
리어의 심리를 쫓아가면서 인간의 번뇌와 삶의 충돌이 심연에서 폭풍우를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작가의 글/김수미
죽음 이후 나는 누구로 기억 될 것인가? 이 질문 앞에 누구나 자유롭긴 싶지 않다. 내가 나 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욕망으로 길 위에 선다. 그 길 위에서 인간은 집을 짓고 스스로 허문다. 돈, 명예, 사랑을 욕망하며 살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리어에게 길은 욕망을 실현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배신과 배반에 몸서리를 치는 길이기도 하고, 자괴감에 무너지는 자신이 무너지는 길이기도 하고 자식을 잃은 부모의 절규가 뿌려지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그 길은 인생의 허무를 확인하는 길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이 그러하듯 유목민이 되어 끝도 모를, 끝도 없는 길을 걷는 리어를 기꺼이 따라나선 광대에게는 박수를. 누구에게나 십자가가 주어지듯이 광대에게 리어는 십자가 인지도 모른다. 유목민 리어는 인생에서 길을 잃고 그러나 살아있기에 걸음을 멈출 수 없는 유목민으로 사는 시대에게 보내는 인사다. 세상이 허락했지만, 세상이 허락하지 않은 이름을 붙잡고 길을 잃은 그대여 안녕하신가?
<리어, 길을 잃다> 2인극이다, 길, 상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무언가를 상실한 두 사람 이 길 위에서 어디를 향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작품이다. 재미난 것은 작품 속 인물들은 막막한데, 그것을 보고 있는 독자들/관객들은 한없이 먹먹하다는 점이다. 그 먹먹함이 여운도 길었다. <리어, 길을 잃다>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작품 속에 묘사되지 않은 지점을 파고들었다. 리어왕이 사랑을 약속한 딸들에게 버림받은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렇게 버림받는 과정에서 첫째 딸과 둘째 딸 집을 향하는 길에 올랐다는 것은 주목하지 않았다. 각각의 집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집중할 뿐, 딸들의 집을 오가는 길 위에서 리어왕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궁금해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 위에 있는 리어왕은 매우 참신한 설정이었고, 그 길에 리어왕의 단짝인 광대를 동행하게 한 것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딸들의 집으로 향한 길, 쫓겨나서 다른 목적지로 가는 길, 목적 지조차 없어서 방황하는 길 등 길 위의 리어왕은 분노와 상실의 감정이 광기로까지 이어진다. 더군다나 뼈아픈 말을 서슴없이 던지는 광대 때문에 더욱 더 아프다. 김수미 작가는 원작에 있는 광대 대사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도 리어왕에 대한 광대의 측은한 마음은 더욱 풍성하게 형상화했다. 거기에 적절한 언어유희까지 곁들이면서 모든 것을 잃은 리어왕의 슬픔이 역설적으로 강조되었다. 원작의 행간에 초점을 두다 보니 <리어, 길을 잃다>에서는 원작보다 더 근사한 리어왕이 탄생했다. 원작에서 리어왕은 정말 친아버지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딸들에게 저주를 쏟아낸다. 코델리어의 깊은 속내를 깨닫기 전까지 두 딸에 대한 원망과 저주는 우주 끝까지 향해 있었다. 그런데 김수미 작가는 '그럼에도 아버지'라는 점을 놓지 않았다. 에드먼드 때문에 두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모든 분노가 에드먼드에게로 향한다. 자식 둘을 잃은 부모의 울분과 원한이 격렬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자식들에 게 저주를 퍼부었지만, 그런 자식들일지라도 잃게 되니 부모로 서의 분노와 회한이 밀려온 것이다. 이런 리어왕의 면모가 매우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사랑으로 땅을 나눠주고자 한 충동도 충분히 이해될 정도의 인간적인 리어왕이었다. 광대와 주고받는 대사, 그 대사를 통해 지금은 리어왕이 어느 길 위에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으며, 리어왕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원작보다 더 쉽게 파악 수 있었다. 대사를 어떻게 구성하고 연결시키고 만들어야 하는지를 잘 아는 노련한 작가의 솜씨를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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