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0월 21일 오전 11시 22분”
빌리 브란트의 수상 선출로 독일 사민당은 40년 만의 역사적인 재집권에 성공한다. 동독의 고정간첩 귄터 기욤은 빌리 브란트 수상 집무실에 침투하여 그의 통일 정책을 염탐한다. 하지만 보수야당은 빌리 브란트에 대한 탄핵을 발의하고 정부예산안을 거부하며 빌리 브란트 정권을 괴롭힌다. 빌리 브란트는 경색된 정국을 정면 돌파하려고 자신의 재신임을 묻는 선거를 전격적으로 선언하고 승리를 위해 전국을 돌며 열차 유세를 벌인다. 귄터 기욤은 그를 그림자처럼 보좌한다. 결국 빌리 브란트는 선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경제악화와 국론분열로 당 안팎의 갈등이 거세지며 브란트 정권을 괴롭힌다. 한편 국가 안보국은 수상 관청 안에 동독의 간첩이 침투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기욤은 국가 안보국 감시를 받게 되는데....
<데모크라시>는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와 그의 비서로 침투했던 동독 스파이 귄터 기욤의 실화를 극화한 작품이다. 작가인 마이클 프레인은 50년 전 분단시기 독일의 정치적 사건들을 씨줄과 날실처럼 촘촘하게 재구성하여 오늘날, 이 시대의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인지 묻는다. 급변하는 한반도의 정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마주한 민주주의의 민낯에 대해 뜨겁게 이야기한다.
<데모크라시>는 실제로 서독의 수상이었던 빌리 브란트와 그의 최측근이었던 귄터 기욤 사이에 일어난 스파이 사건에 기반한다. 바로 이 점이 프레인이 언급한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심화시킨다. 브란트는 서독에서 40년 만에 최초의 좌파 수상으로 선출되고, 바로 옆에 있는 동독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감행하려고 애쓴다. 한편 귄터 기욤은 동독의 비밀경찰이 보낸 스파이로, 브란트와 그의 정책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동독에서는 진보적인 개혁가 브란트를 감시하면서 이득을 취하고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욤이 동독의 스파이로 드러나면서 브란트의 몰락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다. 그러나 각각 서독, 동독이라는 체제를 대표하는 이 두 남자는 이 작품 안에서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대립 관계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기욤은 최선을 다해 정보를 빼돌려 동독부의 책임자인 이른바 '얼굴 없는 남자'미샤 볼프’에게 충성을 다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감시 대상자인 브란트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낀다. 빌리 브란트의 경우에도, 기욤에 대한 미심쩍은 마음과 함께 속내를 내비치기도 한다. 속이려는 자와 속는 자, 색출해 내려는 자와 색출 당하지 않으려는 이 묘한 관계 속에서 생겨난 긴장감은 순간순간 서로에 대한 더 넓은 이해와 공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수상과 스파이라는 외피를 벗는 순간 두 사람은 평범한 두 남자가 되어 서로 부딪치고 만나는 교감의 순간들을 경험한다. 다른 한편으로 서독의 불안정한 연정 체제 안에서 제각기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키려는 남자 10명의 이 이야기는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다.
빌리 브란트가 70년대 초반에 내세운 동방 정책은 서독과 동독 사이의 경직된 관계를 다소 완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치고, 견고해 보였던 베를린 장벽에도 균열이 생긴다. 한걸음씩 내딛는 브란트의 정책은 이후 독일의 통일을 위한 초석을 마련한다. 브란트의 정책은 일관되게 통합을 지향하지만, 그걸 실현하는 과정이 결국 정치적 분리를 넘어서는 노력과 시련의 과정이었음이 드러난다.
이처럼 <데모크라시>는 독일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를 주도했던 10명의 정치가들을 통해서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비범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들을 제기한다.
독일 정치 극작 - 마이클 프레인의 내용 요약
마이클 프레인은 심오한 주제를 쉽고 희극적으로 풀어쓰면서 유머러스한 상황에서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글쓰기로 유명하다. <데모크라시>는 그의 그런 깊이 있는 통찰력과 뛰어난 극작술이 매우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2008년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 최고 희곡상을 수상했다.
1970년, 처음으로 독일에 갔을 때만 해도 당시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그리했던 것처럼 프레인 역시 독일에 대한 선입견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프레인은 진지하게 그 이면을 들여다보았고 압도당했다. 자신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나치 시기 그 자체가 아니라 독일인들이 어떻게 나치시기를 극복해냈는가 였다고 회고한다. 1945년에 폐허와도 같았던 독일은 그 이전에 독일에 의회 민주주의의 토대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빠르게 유럽 안에서 가장 안정되고 제대로 된 의회민주주의를 구축하게 되는데 이 점이 이 작품의 한줄기를 이뤘다.
프레인은 또한 전반적인 정치적 과정의 복합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했고, 좋은 예로 첫 번째, 연방제를 꼽았다. 독일은 여러 연방들로 나뉘어져 있고, 각 연방은 자신만의 의회를 지니고 있으며, 연방의회가 존재한다. 그리고 각 연방들의 정치가는 서로 엮여 있다. 두 번째는 2차 대전 이후 독일에서의 모든 정치는 연정의 형태라는 점이다. 영국에서 연정의 형태는 불안정하고 운영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독일의 정치적 상황의 복합성이 이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고 매 정부는 두 정당들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들 속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갈라졌었다는 사실을 지목했다. 이것이 독일의 정치적 상황을 가장 결정적으로 복잡하게 만든 요인이었고, 이 지점은 프레인 작품의 두 번째 줄기를 이룬다.
프레인이 이 작품을 쓰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로 우리 모두는 각각 그 내면에 일종의 의회 민주주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우리는 각기 다른 가능성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해결되어야 할 각기 다른 관심들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그런 각자의 각기 다른 요소들을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는 한 국가정부의 행위만큼이나 복잡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유들이 줄기가 되고 가지가 되어 브란트와 기욤의 이야기를 통해 합쳐졌고 <데모크라시>는 결국 그러한 관심들의 결과물로 탄생한 작품인 것이다.
프레인은 한 인터뷰에서 "항상 빌리 브란트라는 모순적인 인물에 대해 관심 있었다. 빌리 브란트는 훌륭한 업적을 성취한 정치인으로 누구보다도 대중의 마음을 쉽게 끌어당긴 지도자였다. 하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음주나 여성편력만이 아니라 우유부단한 성격에다 우울증까지 앓고 있어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는 솔직한 매력을 보여주다가도 우울증으로 입조차 열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열감기나 몸살로 아프다는 핑계 아래 침대에서 며칠간이나 나오지도 못했다. 이런 양면을 지닌 브란트가 바로 브란트에게는 충실한 하인 역할을 하면서 동 시에 동독 첩보부를 위한 정보원이었던 이중적 삶을 살았던 기욤으로 인해 수상직을 그만두었다는 상황은 정말 흥미로운 소재였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러한 관심은 고스란히 <데모크라시>에 녹아 들어갔다. 실존 인물을 가지고 극을 쓰기 마이클 프레인은 <데모크라시>를 쓰면서 한 가지 두려웠던 점이 바로 이 극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프레인은 브란트가 기욤이 첩자라는 생각하게 되는 순간부터 흥미를 더 크게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데모크라시>에서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하는 정치활동만큼 큰축으로 첩보활동이 이야기의 중심 소재로 자리하게 되었다. 또한 프레인은 "항상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동기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그래야만 한다. 무의식 중에도, 길을 건너가다 누가 다가오면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내가 피해야 하는지, 그냥 가도 되는지를 가늠한다. 기욤이 나에게 흥미 있었던 이유는 기욤이 염탐하는 게 새로운 비행기 설계도나 재정 예산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 만나는 정치인들의 관심과 행동, 소문을 듣고 보면서 그 감정과 뒤에 숨겨진 동기를 엿보고 알아보려 한다는 것이다. 동독은 빌리 브란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귄터 기욤을 수상관저로 보낸 것이다. 나에게 이것은 인간 행동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드라마로 보였다" 라고 밝히며 염탐이야 말로 바로 일상생활에서도 우리 모두가 언제나 하고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데모크라시>는 마이클 프레인의 인간에 대한 관심이 정치행위와 염탐 활동을 통해 드러난 작품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통해 내 옆의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가늠하며 같이 가야 할 길을 찾는 것이 민 주주의가 아닐까라고 묻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마이클 프레인
1933년 9월 8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당시 촉망받던 바이올린 연주자인 여머니가 프레인이 열두 살 때 세사을 뜨고 아버지가 뜻하지 않게 퇴직하면서, 그는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 뒤 2년간 군 복무를 하는 사이 러시아어를 배워 통역관으로 일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 에마누엘 칼리지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이후 '가디언'지와 '옵서버'지에서 기자와 칼럼니스트로 일했다. 데뷔작인 '양철인간Tin Men'(1965)으로 서머싯 몸상을 받은 프레인은 이듬해 발표한 '러시아통역관The Russian Interpreter'(1966)으로 또다시 호손덴상을 받는 역량을 과시하며 영국 문학을 이끌 신인으로 주목받았다. 그후 계속해 소설가로서 입지를 다져 가던 그는 장르를 바꿔 1970년에 단막극용 희곡 네 편을 묶어 펴낸 '우리 둘The Two of Us'을 시작으로 여러 편의 희곡을 발표했다. 2000년에는 토니상을 받기도 하는 등 소설과 희곡 두 분야 모두에서 성공한 작가가 되었고, 체호프와 톨스토이의 작품을 포함해 러시아 작품 상당수를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양철 인간', '러시아 통역관', '태양에 착륙하기', '스파이' 등의 소설과 '알파벳순', '코펜하겐' 등의 희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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