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프니스는 시칠리아의 목동이다. 헤르메스의 아들로 드뤼오페가 엄마인데, 갓난아이때 숲속에 버려지고, 목동 판이 데려다 키우고 피리를 가르쳐준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청년이 된 다프니스.
사랑을 해도 겉으로는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남정네들이다. 속으로는 사랑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깊어도 막상 겉으로 사랑의 표현을 망설이는 것이 남자로서의 체면이라고나 할까. 다프니스도 나이스의 말을 듣고는 처음에는 멈칫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란 남자의 마음을 읽고 있으면서도 확인을 받고 싶은 본능이 있는 터라 그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사랑의 맹세를 할 것을 집요하게 강요하다 시피 했다. 다프니스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말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사랑을 맹세하지 않으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니, 그로서는 그녀의 말을 거부할 이유도 없었고,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녀와의 사랑에 빠진 지금 그에게는 그녀만이 그 자신의 전부였다. “아 물론이요. 절대로 다른 여자에게는 관심 가질 이유도 없고,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하노니 내 사랑을 받아주오.” 그의 간절한 맹세를 받고 나자 나이스는 그의 애인이 되기로 했다. 이렇게 하여 다프니스와 나이스의 아름다운 사랑, 꿈같은 날들은 지속되었다. 누가보아도 어울릴 만큼 두 사람은 아름다웠고, 그야말로 행복에 겨운 다정한 한 쌍이었다. 둘은 언제나 함께 했고, 늘 행복의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나날이 아름다운 낙원이었다. 꽃도, 나비도,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피조물들도 모두 자신들을 위해 마련되어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프니스의 꿀처럼 달기만한 생활을 사랑의 여신들이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여신들은 자신들이 아껴주었던 만큼, 자신들에게 도전했던 다프니스를 더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의 여신 에로스와 아프로디테는 이번에는 그의 달콤한 가정을 깨기 위해 그의 앞에 아름다운 인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신들에게 선택받은 여인은 크세니아라는 공주였다. 묘한 아름다움과 매혹적인 눈을 가진 크세니아는 사랑의 신들이 자신을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단지 쾌청한 날씨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산책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길을 가다가 다프니스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신들의 유도로 인해 그녀는 다프니스를 보자 한 눈에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를 보는 순간 다프니스라는 남자가 가슴 속에 꽉 차오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어떻게 해서든 그 남자를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과 집념이 타오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지체 없이 다프니스에게 접근했다. 그녀가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다가오는 모습은 필시 하늘의 천사 같았다. 나긋나긋한 걸음걸이, 무어ㅗ라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미소, 촉촉한 입술, 눈가에 어리는 묘한 분위기, 그런 완벽한 미를 갖춘 그녀를 보자 다프니스는 긴 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아득해지던 정신을 되찾고는 아내의 화난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고는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다프니스가 쉽게 넘어오지 않자, 크세니아는 꾀를 내어 그에게 접근했다. 그녀는 맑은 방울소리 같은 낭랑한 목소리로 그에게 포도주를 권했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그도 권하는 술을 못이기는 체하며 받아마셨다. 그렇게 한 잔이 들어가자, 앞에 앉은 크세니아의 모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보였다. 다시 한 잔을 마시자 그는 미치도록 그녀가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렇게 하여 술에 취하자 그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하여 결국 그는 크세니아와의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아내와의 맹세 때문에 주저하던 그도 이제는 낙원 따로 없었다. 지금의 사랑이 천국이었고, 자신의 전부인 것 같았다.
사랑에 빠져 아내라는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을 때,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내 나이스는 그를 찾아 나섰다. 여기 저기 그를 찾아 헤매던 그녀는 다프니스가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녀의 눈에는 불꽃이 튀었고, 앞 뒤 계산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의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이스는 화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뱀을 2마리 사용해 그의 두 눈을 마구 찔러버렸다. 그가 여자에게 빠졌던 것은 눈으로 보았던 탓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악”하면서 쓰러진 그의 두 눈에서는 붉은 피가 솟구쳐 올랐다. 크세니아는 간신히 그곳을 벗어나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고 말았다. 결국 그 일로 인해 다프니스는 그 어떤 아름다운 여자도 볼 수가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이스는 다른 여자들은 쳐다보지도 않기로 맹세했던 것을 그가 어겼기 때문에 그의 눈을 망가뜨렸던 것이다. 이제 눈이 멀어 앞을 볼 수 없게 된 크세니아와의 사랑에 빠져 맹세를 깼던 일을 후회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그는 간신히 판이 주었던 피리를 찾아들고는 그 피리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불행을 눈물로 부르는 그의 노래 소리는 차마 듣기 어려울 정도로 애잔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만든 노래를 그 지방 사람들에게 들려줌으로써 스스로를 위안하려 했다. 그는 날마다 강가에 홀로 앉아 구슬픈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만 발을 헛디디는 통에 강물에 빠져버렸다. 지금도 강가에서 아주 조용히 마음을 기울이면 그 피리소리가 흘러나온다고 한다. 남자들은 한 여자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칫 그 본능대로 움직였다가는 사랑의 여신에게 저주를 받아 패가망신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한다한들 미인이 다가와 유혹하는 데 이길 장사가 있으랴.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술이 입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사람은 감성으로 변하기 십상이니 술도 조심해서 마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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