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봄 일본 가고시마현 치란의 조선인 식당. 그곳에 일본군 조종사 탁경현이 1년 만에 방문을 한다. 이곳 조선인 식당은 김유자라는 조선 여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그녀의 딸 마리, 그리고 남편 박성웅이 살고 있다. 마리에게 박성웅은 의붓 아버지이다. 박성웅은 대체로 이곳에 머물지는 않고 몇 달씩 밖에서 지내다 들르는 식이다. 식당 근처에는 일본군 항공기지가 있어 이곳에선 자주 비행을 하는 항공기 소리가 들린다.
항공 기지에서 하모니카로 아리랑을 연주하던 탁경현은 그 소리를 듣고 찾아온 또 한명의 조선인 조종사 최정근과 함께 다시 조선인 식당에 방문을 한다. 이곳에는 조선인으로서 일본군 조종사로 치란에 있지만 계속 소식이 없는 김상필을 찾으러 형인 김상열이 와있다. 조선인 식당을 헐어버리고 어묵 공장을 짓겠다는 박성웅에게 탁경현과 최정근은 올해까지 유지해 주기를 부탁한다. 이곳은 치란에서 그들이 마음 놓고 우리말로 얘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정근은 담배 밀수로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 있는 박성웅의 지인을 빼내어주고, 식당의 유지 약속을 받게 된다.
학교에서 착출되어 일본군 특공대원의 마지막 출격 대기소에서 일하게 된 마리는 최정근과의 이야기 속에서 가미카제 특공대의 비밀을 듣게 되고, 최정근으로부터 일기장에 이곳에 방문했던 조선인 특공대원들의 이야기를 남겨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최정근은 김상필을 만나게 되고 그 소식을 형인 김상열에게 알린다. 식당에서 모두들 막걸리에 취해 춤추며 놀던 때 김상필이 찾아오고, 식당 안은 긴장감이 흐르다 난장판이 되어버린다.
탁경현은 내일이 자신의 출격일임을 알리며 식당 안에서 슬프게 아리랑을 부르고 출격을 한다.
탁경현의 출격 이후 조선인 식당 안은 계속 우울한 분위기가 흐르고, 마리는 이전에 최정근이 약혼녀에게 보내려던 편지를 보게 된 일이 있는데 이후 자신이 전보로 최정근의 약혼녀를 직접 이곳으로 부른다. 최정근의 출격일이 다가오고, 최정근은 이곳을 드나드는 나머지 조선인 가미카제들에게 남기는 편지를 마리에게 맡기고 마지막 출격인사를 하지만 마리에 의해 잠들어 있는 약혼녀를 만나게 된다.
이후 4개월의 시간이 흐른다. 그 사이 나머지 조선인 조종사 민영훈은 도쿄로 김상필은 이곳에 남아 다가올 출격 일을 기다리고 있다. 도쿄에서 치란으로 다시 돌아 온 민영훈. 최정근의 약혼녀가 만들던 신사에 바치려던 인형으로 인해 오해가 발생하고 민영훈을 도쿄로 보냈던 것도,
김상필의 출격이 늦춰진 것도 최정근이 남겼던 편지로 인해 최정근이 그들을 살리려 했던 것임을 알게 된다. 출격을 하루 앞 둔 김상필은 살고 싶지만 도망칠 수가 없는 조선인의 상황에 절규하며 운다. 김상필의 출격 이틀 후 천황은 항복하고, 마리와 김유자는 조선인 가미카제의 영혼인 반딧불이들과 함께 해방이 된 조선으로 떠나고 박성웅은 쓸쓸히 홀로 아리랑을 부른다.
역사를 미래의 길잡이로 삼는다면 우리에겐 더욱 다중 거울로 과거를 봐야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많은 가마카제를 다룬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조선인 가미카제들은 한결 같이 함께 싸워준 협력자로서 그려지는 일이 많다.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 역시 조선인 가미카제를 단선적으로 자신들의 현재 프레임에 가두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해방 후 70여년이 흐른 지금, 암울한 시대에 힘 없는 땅에 태어나 불행한 최후로 삶을 마감했던 조선 청년들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우리는 과거가 놀랍도록 현재와 닮아 있음을 느낄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현재의 긴장 속에서 다시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전쟁의 소모품으로 삶을 마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쿠라는 무서운 것이야.”
칠흑 같은 어둠이 가신 무대에 모녀가 서 있다. 조선여인 김유자와 그녀의 딸 마리는 해방을 코 앞에 둔 1945년 봄, 일본 육군 항공기지가 있던 가고시마현 지란 부근에서 ‘두부김치’, ‘지지미(부침개)’, ‘도토리묵’, ‘막걸리’ 같은 조선 음식들을 파는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재일조선인 작가 양석일의 소설 <피와 뼈>에 등장할 것 같은 괴물 같은 조선 사내 박성웅이 휘두르는 폭력에 노출돼 있다. 모녀는 옛 전설을 회상하듯 아름다운 사쿠라(벚꽃)에 혼을 빼앗겨 요괴로 변하고 만 이들의 얘기를 주고 받는다. 이들이 지칭하는 요괴가 일왕을 위해 자살특공대가 되어 허무하게 숨져가는 일본 군인임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요괴들 가운데엔 조선인이면서 일본을 위해 자살공격을 감행하다 숨진 10여명의 조선인 가미카제 대원들이 있었다.
<가미카제 아리랑>은 요괴가 되고만 조선인 특공대원들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둔 조선인 특공대원들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속내를 터놓을 수 있었던 가상의 공간인 ‘조선인 식당’을 연극적 배경 장치로 삼는다. 이 조선인 식당을 통해 일본 본토, 경성, 만주, 오키나와, 지란 등 제각각의 장소에서 각자 짧은 사연을 남기고 숨진 실존 인물 탁경현· 최정근· 김상필 등 조선인 특공대원들을 소환해 낸다. 대원들을 이곳에서 조선술 막걸리를 들이켜며 “여기선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는 기분이예요” “여기마저 사라지면 많이 쓸쓸해 질 거예요” 라고 주인에게 속내를 터놓는다.
실제 조선인 특공대원들의 내면은 연극에 나오는 인물이나 장면은 아니지만, 이들의 내면은 모순과 비애에 가득 차 있었다. 동포들에게 “각자가 특공대가 되어 이 역사를 지켜주세요”라는 섬칫한 말을 남기고 숨진 특공대원 박동훈은 부친과 마지막 만남에서 “동생들은 절대 군에 보내지 말라”며 울며 신신당부했고, ‘일왕의 방패’인 일본 육사 56기생 최정근은 친했던 동기 오카바야시 다쓰유키에게 고뇌에 찬 얼굴로 “난 천황 폐하를 위해 죽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현실에서도 연극에서도, 끝내 자신의 운명에 맞서진 못한다.
“왜, 저 요괴 같은 일본에게 길들여진 것처럼 도망가지 못하는 거예요” 라며 흐느끼는 마리에게 탁경현도, 최정근도, 김상필도 똑 부러진 답을 내놓지 못한다. 탁경현은 구슬픈 아리랑을 부를 뿐이고, 최정근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고 부탁하며, 김상필은 조선이 일본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자치권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를 들이댄다.
‘사쿠라의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가녀린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작은 ‘반딧불이의 세계’다. 특공대원들은 “우리 조선인도 반딧불이가 되어 다시 조선 땅으로 돌아가게 되겠지”라고 말하며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다.
그리고 여름이 왔다. 해방은 기적처럼 별안간에 찾아온다. 대원들이 모두 떠난 식당으로 돌아온 것은 갑작스런 부대 변경으로 자살공격을 피한 18살 소년비행병 이광훈뿐이다. 극중 이광훈의 실제 모델은 민영락으로 그는 출격 직전 부대가 바뀌며 살아 돌아왔다.
작가의 바람처럼 조선인 특공대원들은 반딧불이가 되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을까. 탁경현의 고향인 사천 사람들은 2008년 일본 배우 구로다 후쿠미가 주도한 위령비 건설을 거부했고, 대한민국은 일본군의 장교로 숨진 이들을 ‘친일파’로 단죄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최정근· 김상필· 탁경현은 여전히 일본의 전쟁에 협력한 친일파일 뿐이다. <가미카제 아리랑>은 에둘러 묻는다. 고작 스무 살 청년들에게 무작정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건 너무 가혹한 게 아닐까?
이 작품에 토대가 책은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2012년· 서해문집. 길윤형 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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