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찬규 '옆에 서다'

clint 2022. 4. 7. 08:20

 

 

 

뉴타운이 진행되면서 섬처럼 홀로 남겨진 서울 북아현동의 한성고등학교.

사진반 동아리실에 지태, 호진, 다연 세 명의 아이들이 있다.

세 명의 아이들 사이로 고양이를 죽었다는 이유로 외고에서 전학 온 현수가 들어가게 된다.

현수는 학교짱인 호진과 교내봉사를 한다.

호진은 여자친구인 다연을 통해 현수가 고양이를 죽였다는 소문을 듣고, 현수를 괴롭힌다.

겉으로 보기엔 호진의 친한 친구였던 지태가 현수의 모습에서

예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호진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려 한다.

흔들리는 배경 속, 저마다의 이유로 흔들리는 아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어 보려 한다.

 

작품은 차가운 사회 안에서 나름의 생존법을 배우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에게 말을 걸고, 조심스럽게 손을 건넨다. 이 모든 것이 너만의, 혹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느끼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작가의 글 - 박찬규

'뉴타운 시대 아이들의 생존법'이라 말할 수 있겠다. 빗대어 말한 측면도 있지만 '뉴타운' 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뉴타운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며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따르는 도시정비사업이다. 여기서 힘없는 자들의 거주권은 상실된다. 특히, 이 부분은 청년들이 놓여 있는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아이들은 본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갖추지 못하면 사회가 얼마나 매정하게 몰아붙이는지, 아이들은 안다. 경쟁에서 낙오되면 사회에서 어떻게 배재되는지. 그렇게 아이들은 알아버렸다. 이 세계에서의 생존법을 그 생존법은 무슨 수를 쓰던 상대를 이기는 것이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 좋은 대학에 가고 스팩을 쌓는 것. 이 경쟁에서 오는 낙오와 박탈감에 아이들은 굉장한 공포심을 느낀다. 부모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완고한 시스템에서 어떻게 하든 안착하고 싶어 한다.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진정한 관계 맺기가 가능할까? 친구라는 것이 가능할까? 상대방의 아픔을 공감하고 같이 아파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되면 한없이 우울해진다. 누군가의 옆에 서주는 것만으로 상처 입은 사람에게는 엄청난 힘이 되지만 이제 그것조차 벅찬 시대. 그렇다고 작품을 통해서 현실성 없는 희망이나 훈계는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이 작품을 바라봤으면 한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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