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의 식탁>에서 부부간의 갈등은 아이의 죽음이 그 시작이다. 아이의 혼령은 극 전반을 지배하고 혜연에게만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그녀를 옥죄고 있다. 혜연은 그 무게를 벗기 위해 성당에도 나가려고 하는 등 노력하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그녀 속의 죄의식 때문이다. 한편, 위안이 되어야할 남편과의 소통은 점점 멀어진다. 그들의 대화는 뚝뚝 끊어지고, 규철은 혜연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의 진짜 갈등은 아이가 아닌 멀어진 소통의 끈이다. 결국 혜연이 규철을 떠나는 것은 소통이 완전히 단절되고 마음이 완전히 떠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규철의 친구인 영섭이 작은방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규철과 혜연이 말다툼을 하는 계기를 마련하긴 하지만 그 뒤 오히려 혜연을 이해하고 감싸주며 영섭은 소통의 역할을 하게 된다. 영섭은 실명될 위기에 처한 사진가이다.

카메라로 세상을 보는 일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눈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영섭은 어쩌면 이 극에서 가장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혜연에게 현실의 아픔을 잊게 즐거움을 주고, 위로해준다. 그런데 영섭과 혜연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특히나 극 후반으로 갈수록 아내와 남편이 함께 있는 시간보다 영섭과 혜연 사이의 장면이 더 많다. 이 이상한 기류는 혜연이 사라진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몇 가지 추측을 낳게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영섭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혜연이 임신한 아이가 영섭의 아이라는 추측까지 낳는 경우도 보았다. 따라서 규철과 혜연 부부가 아닌 영섭과 혜연의 관계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데, 아이의 상실로 인한 ‘부부’의 이야기에 집중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관객은 여기서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공연은 영섭과 혜연의 관계를 추측 이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한편, 규철은 아이를 잊지 못하는 혜연에게 다시 아이를 갖자고 말하고, 혜연은 이를 거부한다. 후에 규철은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와 혜연에게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이러한 영섭의 태도는 갑작스러운 느낌이다. 혜연의 임신 사실을 영섭에게 전해 듣고 분노해 영섭과 싸우는 규철의 태도는 분명 영섭과 혜연과의 관계에 관한 꺼림칙한 예감을 가지고, 질투했던 것 같지만 극의 흐름이 갑작스럽다고 느꼈다.
영섭은 ‘사막’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한다. ‘사막’은 모래가 모든 것을 뒤덮은, 지평선만이 남아 있는 곳이다. 모래는 모든 것을 뒤덮고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다. 이러한 사라짐에 대한 정서는 부부의 식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영섭이 가고 싶어 하던 ‘사막’에 대한 환상을 혜연 또한 가지게 된다. 모든 것이 사라지는 사막. 현실에 대한 아픔과 삶의 무게가 사막에 가서는 모두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혜연은 사막의 모래가 모든 것을 덮듯 현실에서 또한 너무나 일상적으로, 신기루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혜연이 사라지고 난 뒤 규철이 보는 환영 속에서 혜연은 마치 그를 떠나지 않은 것처럼 규철을 보며 밝게 웃고 있다. 이는 규철이 보는 혜연의 신기루이다. 그리고 혜연에게 들리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규철에게도 들리기 시작한다. 그 또한 혜연처럼 현실 속에서 언젠가 사라질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관객은 이 장면에서 혜연의 죽음을 떠올린다. 이 극이 가지는 애매모호함 때문이다. 이 모호함은 마지막 장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데, 그것은 극 속의 수많은 키워드-기독교 아주머니, 눈이 멀어가는 사진가, 영섭과 혜연이 자주 언급하는 사막, 옛날 사진, 혜연의 임신 등-들이 하나로 집중되게 큰 줄기 속에서 해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설정들이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았고 관객은 무엇에 집중시켜 보아야 하는지 헷갈려하며 길을 잃었다. 극이 집중하고 있는 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해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음악이 최소한으로 사용된 것은 극의 정적인 분위기와 잘 부합했고, 간결한 느낌을 주었다. 무대의 공간은 거실과 주방이 관객석을 향해 정면으로 배치되었는데 현관과 작은 방을 드나드는 배우들의 이동 경로가 복잡하고 불편해보였다. 따라서 간결하고 정적인 극의 분위기를 무대가 적절히 뒷받침해주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의 식탁>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면서도 공감 할 수 있는 연극이었다. 이 극에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낀 것은 바로 소통의 부재, 대화의 불가능이다. 부부는 소통의 불능을 겪고 있다. 그것의 이유는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고통 때문이다. 부부의 대화 장면에서는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항상 티비 시청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이런 형식의 대화들은 부부가 가지고 있는 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했고, 가까워야 할 부부 사이의 관계가 친구보다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로 만들어 버린다. 이유야 어찌됐든 현대인들은 많은 종류의 소통 불능을 가지고 있고, 이것의 대부분의 이유는 자신이 느끼고 있는 어떠한 문제들이 다른 이를 헤아릴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극에서는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제해결 방식까지 엿볼 수 있다. 근본적인 부분을 해결하기보다는 회피를 선택한다. 사실 딱히 문제를 해결할 만한 해결책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극에서는 새로운 아이를 갖는 다든지 아내가 결국 집을 나가는 모습들을 보면 그러한 방법들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닌 회피라고 보여 진다.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회피는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고 매스컴을 통해 볼 수 있고 가깝게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부부의 식탁>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결론이 약간 모호한 점이다. 열린 결말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열린 결말이 아닌 어떠한 결말을 제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고, 약간의 섬 짓함과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있어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소개 / 유희경(시인)
-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를 졸업하고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오늘 아침 단어』가 있으며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작란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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