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은 인간 삶의 비밀을 다룬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인간학적, 그리고 인문학적 성찰은 모든 인문과학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작품의 경우에도 더없이 중요한 주제이다. 탄생과 성장, 사랑과 이별, 슬픔과 고통 등, 삶의 모든 국면들을 다루면서 그것이 갖는 인간적 의미를 캐묻는 작업이 바로 소설의 작업인 셈이다. 삶의 의미를 궁구하는 작업이 작품의 본질이라고 할 때, 죽음 또한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물론 인간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관장하고 해석하는 유의미한 전망으로서 종교가 존재하고 또 그것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에 의미 있는 지침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삶의 직접적 연장이자 궁극적 귀결이라는 점에서 죽음은 또한 소설의 중요한 주제를 형성한다.
1973년에 발표된 박상륭의 장편소설 『죽음의 한 연구』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죽음에 대한 수많은 종교적 고찰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왜 이 문제를 소설적으로 다루었는지를 알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삶의 최종 결과는 죽음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삶이 끝내는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삶을 죽음의 시작이라고 보는 역설이 가능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죽음은 인간이 직면하는 단 하나의 진정한 리얼리티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추체험(追體驗)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나, 죽음만은 다른 이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환치하지 못한다. 그것은 당사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일회적인 것이며, 다른 이의 체험으로 전이될 수 없는 유일무비(唯一無比)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삶에 내재된 공포이자 신비며 미스터리와 같은 것이다. 바로 그런 까닭에 죽음은 작품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다.
소설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이 작품은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소설적으로 그리고 학술적으로 탐색해 들어간 작품이다. 주제 자체가 죽음이고 또 방법론 자체가 일종의 '연구'를 표방한 까닭에, 이 소설은 기왕에 우리가 친숙해져 있는 허구로서의 소설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한 허구적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그의 행위와 사고를 통해 이야기를 진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소설의 형식을 밟고 있으나, 그의 사유의 전개라든가 행위를 진전시키는 맥락 등에서는 불교 및 기독교의 인간관 및 죽음 관을 참조함으로써 일종의 학술적 에세이로서의 면모도 강하게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박상륭의 이 소설은 소설인 동시에 철학적 에세이기도 하고, 죽음에 대한 개인적 사색인 동시에 동서양의 종교적 경전에서 탐구된 죽음에 대한 직관에 대한 개괄적 해설서이기도 한 셈인데, 이런 복합적인 양상이 박상륭의 소설을 우리 문학사상 아주 이질적인 작품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에 대한 일차적 접근은 일단 그 이야기 내용에서부터 시작하는 편이 유용하다. 이 작품은 아주 간단히 말하면 한 문제적인 주인공이 자신의 죽음을 완수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는 소설이다. 『죽음의 한 연구』의 이야기는 주인공 인물이 스승에 의해 유리(羑里)라는 황폐화된 마을로 오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유리로 오는 도중 그는 한 노승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비로소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는 유리에 들어와 존자승과 외눈박이 중을 죽이는 등 이른바 구도적인 살인을 행하는가 하면, 유리의 오조(五祖) 촌장을 죽여 그로부터 해골을 물려받아 스스로 육조(六祖) 촌장이 된다. 그리하여 촌장에게 요구되는 바, 황폐화된 마을 유리에 생명의 바닷물을 되돌리기 위해 마른 늪에서의 낚시질로 상징되는 형벌을 감내하면서 죽음과 재생의 의미를 고찰해 나아간다. 그리하여 결국 일방으로는 자의에 의해, 그리고 일방으로는 유리의 법률에 의해 스스로 죽음의 길로 나아감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완성한다.
이것이 인물의 행위와 사건 중심으로 아주 단순하게 요약한 작품의 줄거리인데, 이런 요약만으로는 이렇게 자신의 죽음을 완수하는 과정이 어떻게 인간의 보편적인 죽음의 문제에 대한 탐색으로 확장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의 유년 시절을 참고하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작품에서 우리는 주인공의 유년의 회상이 다분히 의식적으로, 그리고 비중 있게 배치되어 있는 것을 목격한다. 회상에서 드러나듯이, 그의 어머니는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창녀였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뱃사람들이 창녀인 그의 어머니를 빼앗아 가는 것을 자주 목격하면서 자라는데, 이런 경험으로부터 어머니와의 분리(分離)를 강렬하게 경험한다. 주인공에게 이런 경험은 결국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실존적인 경험이 되는데, 이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 자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로부터 죽음의 문제는 그에게 있어서 일종의 화두처럼 각인된다. 그리하여 그는 유리로 들어오는 길에 만난 노승이 자신과 헤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고 그가 일종의 꿰미처럼 자신을 얽어매어 끌어들이는 윤회의 고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뒤이어 "그는 어째서, 근 백 년 가까이 보류해 왔던 죽음을 하필이면 내 앞에서 치러 보여 준 것인가?"라고 의심을 품으면서, 그러한 윤회의 고리로부터 영구히 벗어나는 길은, 자기 소멸을 완전히 성취해 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회의하기 시작하는 것인데, 바로 여기에서부터 죽음에 대한 그의 탐색이 시작되는 것이다. 즉, 그는 위와 같은 인식을 통해 삶과 죽음의 윤회라고 하는 업(業, 업보)의 굴레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기를 희망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의 그의 고뇌와 사색이 이제 소설의 중심 주제로서 부상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죽음의 한 연구』는 죽음과 재생이라는 인간 존재의 궁극의 신비에 대한 정신적 탐색을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적 담화, 그리고 연금술의 담화를 토대로 삼아 소설적 논리로 구성하고 있는 작품이다. 말하자면 자연 자체가 하나의 죽음과 재생의 순환 과정이듯, 그러한 자연의 요소인 흙이라는 불완전한 물질로 빚어져 유한한 삶을 살아가도록 처해진 인간의 삶 또한 죽음과 재생의 순환을 밟을 수밖에 없는 바, 불멸할 신육을 얻기 위해 우리가 치러 내야 하는 죽음의 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이 소설은 철학적으로 궁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소설을 두고 형이상학적 소설이니 철학적 소설이니 하는 분류가 가능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작품을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철학적 탐구로 일관하고 있는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작품 뒷면에 작가가 마련한 다수의 참고 문헌과 그로부터 도출한 주석들의 존재도 이런 의문을 증폭시킨다. 또한 범인류적으로 언제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재생산되는 하나의 심적인 조직 즉, 원형을 상정하고 그것이 개별적인 인간의 삶에 구현되는 작용으로서 죽음과 재생의 신비를 이해한다고 해도, 죽음 이후의 인간 존재의 지속 가능성은 여전히 불가지(不可知)의 것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인 만큼 그것이 과연 일정한 완결을 요구하는 소설 장르에 부합하는지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작품이 그동안 우리가 현실적 생존에 급급하는 동안에 망각하고 있었던, 이제는 상당히 세속화되었으나 누구에게라도 닥칠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죽음에 대한 그의 소설적 탐색이 인간적인 한계 때문에 미완의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을지라도, 바로 그러한 한계의 자각 때문에 인간의 삶은 죽음과의 연관성 속에서 살아 볼 만한 그 어떤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 박상륭의 이런 작업은 이 작품의 속편인 『칠조어론』 연작으로 이어지면서 보다 확장되고 심화되고 있는데, 이 일련의 작품을 우리가 궁구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박상륭
1940년 8월 26일 전라북도 장수군 부농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장수중학교 시절 500여 편의 시를 습작했을 만큼 문학과 친숙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하여 이문구와 함께 문학공부를 하였으며, 1963년 단편 〈아겔다마〉로 《사상계》 신인상에 가작 입선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65년 경희대학교 정치외교과에 편입하였다가 중퇴하였으며, 〈뙤악볕〉 연작과 〈남도〉 연작, 중편 〈유리장〉 등을 발표하면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던 중 1969년 캐나다로 이민 가 서점 노스셔 북스(Northshore Books)를 경영하다가 1998년 영구 귀국하였다.
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라는 형이상학적인 관념성을 소설작업의 일관된 주제로 삼고 있으며, 일상 어법을 깨뜨리는 난해하고 유장한 문체와 철학적 사유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루고 있다. 캐나다 이민생활 초기에 병원 영안실 청소부로 일하면서 쓴 《죽음의 한 연구》는 생명과 유토피아를 꿈꾸는 수도승 유리가 "마른 늪에서 펄펄 뛰는 물고기를 낚으라"는 화두를 놓고 40일 동안 밀교적 고행을 벌이는 내용으로, 1995년 양윤호 감독에 의해 《유리》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죽음의 한 연구》의 속편격인 4부작 《칠조어론》은 무려 17년에 걸쳐 완성한 노작이다. 1998년에 첫 산문집 《산해기》를 출간하여 독특한 형식과 문장으로 주목받았으며, 같은 해에 1994년부터 발표한 중단편 8편을 묶은 창작집 《평심》이 출간되었다. 1999년 4월에 박상륭문학제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으며, 《평심》의 표제작 〈평심〉으로 제2회 김동리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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