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민정 '짐승의 시간'

clint 2021. 12. 12. 12:56

 

 

 

1945, 경기도 안산의 선감도. 배만이 통행할 수 있었던 감옥 같은 섬에 빈민 소년들을 감금하여 인권유린을 자행하던 선감원이 있었다. 선감원에 강제수감되어 학대 속에서 자란 태수는, 바다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 일본인 소녀 료코를 구하게 된다. 태수는 료코의 아버지이자 선감원의 원장 마츠모토 미노루와 그의 부인 유리코의 집에 초대되고 료코를 구한 상으로 그들의 집에 머문다. 료코는 태수에게 소설 데미안을 읽어 주며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태수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일제 황국신민화의 기치 아래 웅크린 짐승처럼 살아온 태수는 료코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껏 받지 못했던 진심 어린 인간적 대우에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고, 둘은 가까워진다. 이를 못마땅히 여긴 미노루와 료코의 약혼자이자 선감원 관리자 이치로에 의해, 태수는 다시 선감원에 끌려가 대가를 치른다. 선감원 앞 비밀통로에서 재회한 태수와 료코. 상처 입은 태수는 료코의 일방적인 관심과 위로에 분노해 료코를 선감원에 밀어넣고 료코는 짐승과 마주하게 되는데

 

 

 

작가의 글

전쟁의 참화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상실한 채 살아가야 했던 한 소년이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빈민과 전쟁고아들의 황국신민화를 기치로 만들어진 선감학원의 인권유린 상황을 고발한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알을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데미안의 구절처럼 스스로 알을 깬 태수가 짐승의 시간이 아닌 인간의 시간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작품 배경 설명

1) 선감학원 - 194110월 조선총독부의 지시에 의해 세워진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의 있었던 소년 수용소. 감화원이라는 미명 하에 끌려온 소년들에게 강제 노역과 학대를 자행하던 곳이다. 피상적으로는 일반 학교처럼 운영되었으나, 강제 노역하는 소년들은 고문하는 등 잔혹한 생활을 하였다. 선감도 탈출을 시도한 소년들은 절벽에 투신하거나 갯벌 쪽으로 나가다 파도에 휩쓸려 익사하였다. 살아남은 소년들은 전쟁 말기에 이르러 군사 훈련을 받고 전쟁터로 내몰렸다. 광복 이후엔 군부 독재정권 아래 부랑아 수용시설로 운용되며 삼청교육대, 형제복지원과 같은 악명을 이어나갔다.

2) 소설 데미안’ - 1919년에 간행된 헤르만 헤세의 소설. 소년 싱클레어가 자각을 통해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통해 어두운 무의식의 세계를 알게 되고, 자신의 내면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짐승의 시간>에서 소설 데미안은 료코의 반복적인 낭독을 통해 태수와 관객에게 전달된다. 데미안의 구절 중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새는 인간을 둘러싼 사회와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에 대한 은유이다. ‘데미안은 억압적인 가정에서 자란 료코에게 유일한 심리적, 지적 탈출구이다. 또한 짐승처럼 보이는 태수를 인간으로 교화시키는 료코만의 방식이다. 이는 태수가 선감도를 탈출하고 인간성을 되찾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도화선이 된다.

 

 

 

 

일본 침략 시절 선감학원, 군부 독재 정권 아래 삼청교육대, 형제보육원 등은 소위 엘리트라 자신을 칭하는 이들이 순화하고 교육하여 교화한다는 미명 아래 인간들을 자신들의 잣대에 맞추려 하던 곳이었다. 교육, 가르칠 교()와 기를 육()은 본래 맹자의 득천하영재 이교육지’(得天下英才而敎育之)‘에서 유래한 말로 각 한자의 기원을 살펴보면 회초리로 아이를 배우게 하고, 갓 태어난 아이를 기른다는 뜻이다. 그러한 원래의 목적을 벗어난 일그러진 교육은 어쩌면 그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닐는지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닫힌 사회일까, 열린 사회일까?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인물, 칼 포퍼(Karl Popper)는 비판과 토론이 사회적으로 허용되어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문화다운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개개인이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를 열린 사회라고, 마술적 금기와 독단이 지배하는 억압된 사회로 전체나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개인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집단주의를 본질로 하여 시민들은 이성적인 비판과 그들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여 국가만이 판단하는 사회를 닫힌 사회라고 정의하였다. 완벽한 지식과 재화 등을 성공이라고 꿈꾸는 대한민국에서 당신은 자유로운 인간일까? 사회가 둘러놓은 철창에 갇혀 있으면서 익숙함 속에 철창이라는 존재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연극 짐승의 시간속 대한민국과 2021년 대한민국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리는 짐승보다는 인간이기를 꿈꾼다. 하지만 우리 안에 짐승은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생활하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미성 '누드 모델'  (1) 2021.12.13
류수현 '살고지고'  (1) 2021.12.12
노경식 '부자2'  (1) 2021.12.11
김도경 '유튜버'  (1) 2021.12.11
국민성 '국군의 작별식'  (1) 2021.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