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裸者)의 소리’를 읽으면 가슴이 아프다.
‘최 소위-사내(나)’의 말(言)안에는 ‘융’의 말대로라면 나의 그림자가 들어있다.
그렇기에 나는 사내(나)의 목소리에 함께 끄덕이고 동조하며 ‘박 중시-사내(가)’의 나를 아프게 하는 목소리는 더이상 듣고 싶지 않다. “적의 화약고 폭파 특수공작대 박 중사 보고 드리겠습니다. 우리들은……”이라고 말하는 박 중사의 보고는 전쟁이 남긴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침이자 거짓된 사회,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피상적인 늘어놓음에 대한 비판이다. 가장 극한의 상황에서 자기 스스로에게 거짓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그건 내 탓이 아니야. 상황 탓이야”라고 말한 다음부터 정말 그렇게 상황이 만들었다고 믿으며 하루해를 사는 적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도 생각해 볼 일이다.
최 소위가 이 모든 건 내 탓이 아니라 전쟁 탓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이반 선생님은 이 작품의 제목을 굳이 ‘나자(裸者)의 소리’로 붙인 것일까?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내 가슴을 칭칭 감고 있던 시간의 끈이 돌연 잡아 당겨지기 시작한다 그 선은 산이 되고 나무가 되고, 또한 돌도 되고 바람도 된다, 그 선을 시선으로 따라 손가락으로 만지면 나는 산의 정상에 서 있는 한 개 구름이 되곤 한다. 시간은 다시 나를 안고 쨍그랑 소리 나는 빙판으로 미끄러져 결국에는 끄덕이며 다시 가슴을 시간으로 칭칭 감게 된다. 그 행위는 나자이되 겉으로는 절대로 완전히 벗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즉 적절한 사회적인 옷을 입어야 하는, ‘실존’을 벗어난 나를 깨닫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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