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욱한 안개 속 공원 연못가에서 한 여자가 하염없이 물고기 밥을 던져주고 있다. 약간의 미소가 보일 듯 말 듯 그것조차도 어스름 속에서 보일 듯 말 듯. 한참 그러는 동안 관객은 숨을 죽이고 그녀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만들어본다. 이때 마치 비극적 결말을 예견하라는 듯 극 속의 비련의 주인공에게나 어울릴 듯한 가슴 시린 음악이 그녀 뒤를 따라 좇는다.
점점 관객은 그녀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그녀의 세심한 눈빛조차도 놓치고 싶지 않다. 이때 적막을 깨며 다가오는 그 공원의 경비. 그는 그리 수다스럽게 생기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침묵 앞에선 수다쟁이가 된다. 왜냐하면 그녀는 한마디의 말뿐만 아니라, 몸짓조차도 그에게 흘리지 않기 때문이다.
비가 오고 여자는 여름날에나 쓰였을 법한 파라솔 아래로가 비를 피하고, 남자는 그녀를 위해 우산을 준비하겠노라며 다시 사라진다. 그리고 그녀는 또다시 상념에 잠긴 듯 묵묵히 무대를 지키고 있다.
남자는 그가 움직거리는 데서부터 외로움이 많이 묻어난다. 절실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고 그가 누구이든 그의 속사정을 들어만 줘도 감사할 일이다. 의사소통이 절실한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짓 하나 흘려주지 않은 그녀도 감사하기만 할 따름이다.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은 그녀를 위한 작은 일들을 벌인다. 그녀의 자태를 닮은 듯한 우산도 가져다주고, 차도 가져다주고 급기야 칵테일을 만들어도 보지만, 그녀는 움직일 생각이 없다. 지칠 만도 한데 남자는 술 몇 잔을 기울이더니 자신이 좋아한다는 노래를 부른다. 그때서야 여자는 살포시 웃어주는데 그것에 힘입은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더더욱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끝내 그 남자는 그녀와의 대화를 소통시키지 못하고 - 어쩌면 일부 소통했다고도 볼 수 있다. - 아쉬움에 그 자릴 떠난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가 준 우산을 펴둔 채로 그 곳에서 총부리를 머리에 겨누며 막을 내린다.

이 극은 한 시간이라는 짧은 공연시간 동안 관객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고 계속 그들의 동선을 따라오게 한 힘을 지니고 있다. 2인이 등장하지만 말과 침묵이라는 대결구도로 말이 얼마나 허탈한지, 의사소통에 언어적 요소 보다는 비언어적 요소가 더 많은 말을 시사하고 있음을 여실히 느끼게 하고, 침묵 속으로 잠입하려는 말이 얼마나 시련을 겪는 지 보게 한다. 물론 여기엔 주제의식이 뒤따른다. 현대인의 고독, 고독한 자신조차도 그 고독의 연원을 알아차릴 수 없기에 더더욱 상실이 절실해지고 그 무게에 눌린 말들은 허허로움만 가득할 뿐이다. 누군들 고독해보지 않은 자가 있을까마는 그 고독 속에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단편으로 누군가는 말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행위에서, 누군가를 열열이 기다리며 만남으로 소통하고 싶은 행위에서 극복하려하지만, 누군가는 그 모든 것들이 가볍게만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느껴져 결국 자신을 죽이는 행위에서야 시원스레 극복하게 된다. 의사소통의 부재 속에 삶을 살아가야할 존재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침묵이 말하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아니다. 그녀의 침묵은 말하려고 하는 바가 없을 수 있다. 다만 그녀는 물고기에게 밥을 주는 행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그녀는 그 남자가 생각하는 이유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실존에 대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결국은 세상의 무엇과도 소통하지 못한 채 ‘절대고독’의 순수 속으로 돌아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자살은 희망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주고 간 우산을 펴두었기 때문이다. 우산은 누군가로부터 ‘보호’ 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일상에 대한 지껄임에 대한 일종의 인사치레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관객은 그녀의 자살은 비극적이지 않다고 여기고 싶다. 언젠가 그 우산 속에 누군가와 함께 비를 피할 것을 예상하기에.
가녀린 여자의 마음을 닮은 고독한 벤치, 비를 피하던 파라솔, 여자와의 거리감을 완화시키기 위한 그 남자가 전해준 우산, 여자 또는 남자와 여자의 심리적 거리감을 비와 빗소리의 높낮이로 구분한 점은 다른 극과 비교될 좋은 생각이었다고 본다. 거기에 여자의 침묵을 대변하는 듯한 애잔한 음악이 갖는 무거움과 노래로 표현된 그 남자의 가요 한 구절의 가벼움은 침묵의 무거움과 말의 가벼움을 저울질하게 한다.
소통은 상호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어느 한 곳에 함께 있다하여도 물리적 거리만 가까울 뿐, 심리적 거리는 잴 수가 없다. 즉 말은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모르지만, 침묵은 늘 말 주위를 서성이며 자신의 자리를 찾거나 배회하고만 있다. 침묵은 언제고 터질 것을 약속하고 있고, 말은 언제나 침묵 속으로 스며들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 둘은 결국 하나다. 둘 다 언어 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서로의 노력 속에서 성사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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