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장진 '웰컴 투 동막골'

clint 2021. 5. 21. 21:52

 

 

어두운 무대 한 가운데 등장하는 작가. 그 반대편에 나타난 휠체어에 몸을 실은 백발의 노인. 그들의 뒤편에 희미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드러난다. 우리 아버지 의 아버지의 이야기, 어린 시절의 아버지-동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때는 1950년 즈음, 전쟁도 이념도 비켜간 강원도 태백 산간 마을에 거대한 비행기가 떨어진다. 이 모습을 본 어린 동구와 미친 여자 이연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소동이 일어난 마을 사람들 앞에 파란 눈의 노란 머리 백인 병사가 비행기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비명과 아우성 속에 촌장님과 마을의 유식자 김선생이 수습에 나서지만, 아무도 이 사람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 자군 병력에서 이탈한 인민군 동치성 일행은 김선생을 부르러 달려가던 이연을 만난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연은 동치성 일행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만 횡설수설하고 일행은 차츰 경계심을 풀고 마을 가까이로 내려온다. 촌로들의 중론 끝에 백인 병사를 촌장 집에 데려 온다. 소박한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대접에 벽안의 병사도 마음을 놓고, 김 선생은 간신히 그의 이름이 스미스라는 것만을 알아낸다. 그때, 길을 잃은 국군 표현철과 문상상이 촌장의 집에 찾아오게 된다. 이에 스미스를 표현철 일행과 함께 내려보내자는 논쟁이 벌어지는데, 때마침 뱀바위골에서 내려온 동치성 일행마저 촌장의 집에 들어선다. 너무나 기묘하게 인민군과 국군, 연합군이 일시에 한 자리에 모이게 되면서 상황은 긴박한 대치상황으로 변한다. 이념이 다른 각 군의 병사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곤궁에 빠지고 마는데……. 동막골 사람들의 순진한 마음에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스미스와 인민군, 그리고 국군은 일손이 부족한 동막골의 콩밭에 불려 나가 밭일을 돕는다. 콩밭 한가운데에서 노래를 부르는 문상상, 그들은 조금씩 맨처음 비추어졌던 희미한 사진 속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간다. 스미스가 갖고 온 신기한 음식 팝콘을 함께 만들어 먹으며 즐거워하는 군인들과 마을 사람들. 그러나 동막골에도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이제 떠나야 할 군인들은 동막골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 결단을 내리는데…… 사람들은 사진 속 모습처럼 다시 모여 재회를 이룬다. 그렇게 언젠가 우리가 꿈꾸는, 아직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아름다운 사진 한 장이 만들어진다.

 

 

작가의 글

무엇부터가 시작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삶의 기억도 아니었고 원인 모를 영감도 아니었으니까요.

아버지의 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성복의 시 서해도 뚜렷한 발단은 아니었죠. 이렇듯 알 수 없는 사유에서 이 작품 웰컴 투 동막골은 태생하였습니다. 옛날 옛적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죽었고, 죽은 그 사람들이 거리에 드리우다 바람 되어 사라졌다 하데요. 소리 여럿이 자주도 휘돌아 다녔는데, 총소리도 있었고, 대포 소리도 있었다지요. 아이가 울다 숨이 넘어가면 그것도 고요라고 틈새로 잠을 자던 시절이었지요. 나 잘 아는 사람이 죽었단 소문이 돌아 찾아가보면 멀쩡히 살아 날 맞고 함께 간 이와 숨 돌리며 오다 보면 하늘에서 폭탄 떨어져 내가 죽고 함께 간 이가 죽고그런 오살한 몰골이 싫어 짐싸 피난을 가는 길엔 눈서리는 몇 달 빨리 먼저 당도하고 바람은 왜 그리 불어 늙은 노모 그 길에 묻고 가게 하는지…… . ‘손 들어 꼼짝 마라 외친 건 나인데 왜 그놈은 말 안 듣고 먼저 당겨 날 황천 보내는지……. 앞길 사이 자락 없이 총알 대포알 빗발치는데 우리 소대장은 왜 또 엉겁결에 돌격 앞으로는 외쳐 덩달아 뛰어나간 순한 놈들 몇 명을 그렇게 보냈는지…… . 눈에 띄는 곳에서 그 친구, 그 녀석, 그 아제들은 그나마 오()와 열 잘 맞춰 어디엔가 묻혔지. 내성적인 성격 탓에 아무도 몰래 조용한 곳에서 총 맞은 양반들은그것도 안됐지. 여럿이 울고 여럿이 헤어지고그렇게 몇 해를 보내고 사이좋게 지내자 금 긋고 넘어오지 말기를 외치면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렇게 되는 건지…… . 웃기긴 해도 모두 다 옛날 얘기라지요……. 그리하여 1950, 동란은 내게 너무도 옛날 옛적 벌어진 우화로 존재했지요. 동막골은 쉼터입니다. 거기그때그 자리그 우매한 곳에서 지친 사람들 잠시 쉬었다 가라고 지어낸 작은 마을입니다. 동막골은 전쟁에서 이격되고 싶은 이들이 소리 소문 없이 만들어 낸 소박한 파라다이스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만든 작품은 물론 아닙니다. 말했듯이 뚜렷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사는 지금도내가 쉴 수 있는 동막골을 찾지 못했는데, 그리 여유 있다고 그런 허구를 뽐내며 들려드리겠습니까그저그냥……. 동막골이 필요했던 그 시절어떤 이들이 그 마을에 머물렀었단 거지요. 그리고 그들이 사람들에게 말했더랬지요. 이념도 잊고 미움도 잊고영문 없던 돌격 앞으로도 다 잊고 이곳에서 쉬세요. 동막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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