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언제나 사과를 망치로 봐주길 원해. 하지만 버지니아, 나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하기 위해 태어났어. 사과는 과연 망치가 될 수 있을까?”
각자의 이유로 홋카이도로 떠나온 민수와 민희는 기차 안에서 만난다.
이들의 대화 주제는 민희의 희곡인 <조니와 라디오>. 연극의 막이 내린 후에도 길거리와 방 한구석에서 삶을 연명해 나가는 배역들과 이들을 죽이려는 살인마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버지니아와 조니. 조니가 집을 비운 사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이 잇달아 찾아와 버지니아의 신념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들의 진실과 거짓에 대한 공방은 홋카이도에 있는 민희와 민수의 대화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조니와 라디오>는 다소 난해하고 관념적인 작품이다. 분류하자면 연극 속에서 연극을 성찰하는 메타 연극 장르에 포함될 것 같다. 젊은 작가 지망생이 준비하는 작품과 작가의 삶이 병치되며 연극과 청춘에 대해 사유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극적 공간은 두 젊은 예술가가 승선한 기차공간이다. 오래 전의 영화인 <비포 선라이즈>처럼 가진 것 없는 두 젊은이가 우연히 여행에서 만나 젊음의 한 순간을 공유하며 예술과 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의 글
연극무대는 참으로 부실하다. 수많은 예산을 들이 부어도 현실성의 측면에서 영화에 비해 참으로 위태롭고 부실하다. 그런데 어찌해서 연극은 망하지 않는가? 이는 삶 역시 마찬가지 여서이다. 삶 역시 참으로 부실하고 허약하다. 지루함 역시 크나큰 고통이다. 현대인의 죽어버린 상상력이라 할지라도 현실은 상상보다 언제나 한 발 늦고 빈약하다.
<조니와 라디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의식을 지니고 진행된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에 대해서 상징을 뒤덮어 세상에 나왔다. 진실 속에 진실만이 거짓 속에 거짓만이 들어갈 수는 없다. 진실 속에 터무니없는 거짓들이 들어가기도, 거짓 속에 올곧은 진실 한줄기가 흘러 들어갈 수도 있다. 연극도 삶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이 작품을 통해 세상엔 여전히 라디오를 틀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음을, 자신이 수십 년 동안 세운 진실이 한순간 허무맹랑한 거짓이 되기도 함을, 때론 거짓이라 믿었던 무언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실이 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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