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년 스페인 재경부 장관을 역임한 "호세 에체가라이"의 스페인 낭만주의를 계승한 희곡작품이다.
에체가라이는 1904년 스페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거리의 가수"는 19세기 스페인 연극에서 사라져가고 있던 낭만주의적 극적흐름이나 주인공의 체면의식, 도덕적이고 심리적 갈등이 드라마틱한 심리묘사로 표출되던 스페인 전통연극의 경향을 계승한 전형적인 낭만주의 작품이다..
어머니의 병환을 위해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는 부잣집 청년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헤어진 여자를 찾기 위해 거리를 헤매던 청년은 그 여자의 노랫소리에 그곳을 찾게 되고 사랑을 이루게 된다.
호세 에체가라이(José Echegaray, 1832~1916)
에체가라이는 1832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의사이자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유복한 유년기를 보낸 에체가라이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14세가 되던 해에 고등학교에서 토목 공학을 전공하였고, 명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 졸업 후에는 토목공학 엔지니어로 일했다. 1854년부터는 대학에서 토목공학과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이 시기 에체가라이는 기하학, 수학, 물리학과 관련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후에 스페인 수학학회와 과학 아카데미의 수상자가 되기도 하였다. 1868년부터는 공무원이 되어 여러 직책을 거치며 행정경험을 쌓았고, 1874년 재경부 장관을 맡았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자유주의적 사상의 소유자였고, 장관직을 맡아 철도 공사 및 은행법 법제화와 시행에 힘을 쏟았다. 흔히 우리는 이공계와 인문계를 나누고,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을 소홀히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호세 에체가라이는 두 분야 모두에서 걸출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수학과 공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타고난 정치가로서 장관을 지낸 공무원이기도 했고, 문학에 대한 관심과 창조에 대한 열망이 넘치는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마흔이 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나, 60여 편의 희곡작품을 남기며 19세기 후반 스페인을 대표하는 극작가의 자리에 우뚝 섰다.
에체가라이는 정치인이자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작품을 썼다. 그러다 향년 40세가 되어 정계를 은퇴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의 세계로 들어섰다. 그는 그동안 썼던 작품들과 쓰고 싶었던 소재를 착실히 다듬고 두들겨 본격적으로 희곡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대에 올리고 싶었던 작품들을 하나씩 발표했다. 작가는 43세가 되어서야 자신의 첫 희곡 [수표장(El libro talonario)]을 무대에 올렸고, 그 후로 작품을 발표해 지속적으로 공연하였고
스페인 연극계를 유럽의 중심에 알리는 데 크게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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