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 작품인 『어쩌다보니』는 오로지 웃음 하나에만 승부수를 던진 코미디극으로 공연 내용은 1712년 청나라와의 국경을 확장하고 백두산정계비를 세우는데 수계를 착각하여 조선에 유리한 국경이 설정되자 청나라 왕은 이를 빌미로 ‘세 사람의 목숨을 내놓으면 나머지 백성들은 살려주겠다.’ 라고 요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고을 최고의 지식인 시형, 최고의 권력자 현령 칠홍, 최고의 부자 형방 만갑.
이 세 사람은 “어쩌다보니” 역사적 아픔의 희생양이 되는 과정을 재미있게 펼쳐 나간다.
공연 중 부족한 배우 1명을 객석에서 즉흥적으로 섭외, 그 1명의 관객이 연극 전체 웃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도록 구성하였으며 캐스팅된 관객은 객석에 앉아있다가 수시로 불려 올라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내게 된다.
헝클어진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이자 비유를 담아낸다. 즉흥 현장 섭외 배우의 어설픈 참여, 대본 대로 읽다가 터져 나오는 예기치 않는 실수, 공연 내내 관객은 질펀한 배설 쾌감, 해방 쾌감에 젖는다. 이 공연은 코미디 역할 놀이와 눈떠가기의 깊은 맛을 누리게 한다. 청나라와 조선과의 1년여의 전쟁, 패전의 대가, 고을 백성 모두 몰살 위기에 처한다. 자발적인 희생 제물 세 명의 목숨을 요구하는 상황,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희생 제물 찾기, 공연은 초반부터 관객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연스레 유도한다. 강압과 억지, 짓누르고 퉁치고 빼앗기를 다반사로 여긴 자들, 못 배운 백성, 억울한 백성을 희생 제물로 삼으려는 자들, 문제 해결되었다고 기고만장하는 모습, 그 일그러짐과 헝클어짐에 유치함이 가미되면서 관객은 극 초반부터 조롱 쾌감을 주체 못한다. 오늘 여자 친구에게 온 청중 앞에서 청혼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공연진의 약조, 이 옵션에 묶인 남자 청년 관객, 틈만 나면 무대로 끌어올려져 즉흥 상황 놀이에 참여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는 상태, 빗나가고 허둥댈 때 야기되는 예기치 않는 즉흥 실소 행동, 무대는 공연 내내 재미와 활력을 자아낸다. 부정축재, 축첩, 비위, 겁박 등으로 악명이 높기로 소문난 형방, 갑자기 희생 제물을 자처한다. “저 자는 아닌데? 어떤 계략과 음모가 숨겨져 있을까”. 염탐과 찌름, 퉁치기와 달콤 회유 언어가 오간다. 감추기와 드러내기, 속보이기와 줄다리기, 이를 향한 이중 방백 전략이 빛을 발한다. 즉흥코미디 맛이 자연스레 우러나온다. 빈 공간, 최소한의 소품, 연극함을 의도적으로 일깨워가기 위한 전략, 공연은 먼저 놀이적 상상력으로 승부를 건다. 배우들은 유무형의 상상 공간을 넘나들면서 즉흥 놀이 상황을 자유자재로 펼쳐나간다. 풍자와 까발림 전략은 퓨전 형태가 가미되면서 다채로운 놀이 쾌감, 조롱 쾌감이 우러나온다. 과거 복색에 현대버전의 반응 색조가 끼어든다. 진지함으로 포장된 허위의식, 이를 위해 경박한 감각 어투와 지금 이곳의 배설언어가 터져 나온다.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 예측 불허의 비틀려짐과 뒤집힘의 교차, 이를 통해 무대는 역동의 놀이성을 계속 유지한다. 훈장 스승의 친척인 나라 양과 누가 정혼할 것인가. 극은 게임과 전략의 연속이다. 나라양의 구애를 무기력하게 외면하는 지식인, 청혼 욕망의 좌절로 일생 부정 축재를 일삼는 형방, 탐관오리에게 시집가야할 나라양의 운명, 작금의 우리네 일그러진 사회 상황을 비유적으로 떠올려냈다는 점에서 발상은 참신하다. 청혼 장면, 설렘과 감미로움을 일깨워낸 로맨틱 선율과 순간의 줄다리기와 긴장 그림, 조롱감에서 장중함으로의 뒤집기, 우리시대 삶의 본질 찾아가기, 그 실상과 허상 경계 넘나들기, 만화 콘셉트로 승부를 걸었다가 지금 이곳 자주 독립 나라 백성의 새로운 결단과 선언으로 마무리 짓는 과정, 이는 강대국들의 강압 논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알레고리 의미를 상기시킨다. 자주 독립국가 백성으로서의 메시지를 의연하게 선포하는 집단 행진 그림 전략, 메시지 낭송 퍼포먼스, 예약된 역할 배우 관객으로 하여금 점차 능동성과 주도성을 발휘 하도록 유도하였음은 기발하고 창의적이다. 관객 모두로 하여금 폭소와 해방감을 풍성하게 누리게 하면서도 참여주주의 연극 담론을 경험케 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극장주의 예술 철학의 일대 쾌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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