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볼테르 '오이디푸스'

clint 2019. 12. 9. 12:24

 

 

 

프랑스 역사에서 구제도의 모순과 불평등을 타파하고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구현하고자 했던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했던 18세기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볼테르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볼테르는 무엇보다 디드로, 루소 등과 함께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로, 그 중에서도 가톨릭 종교의 불관용을 가차 없이 비판함으로써 프랑스적 관용, 즉 톨레랑스 정신을 개척한 선구자로 기억될 것이다. 또한 그의 개인적 삶에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아마도 샤틀레 후작부인의 연인이었던 볼테르 혹은 '철학서간' 필화사건을 필두로 말년까지 자신이 쓴 글들로 인해 수차례 피신과 망명을 거듭해야 했던 볼테르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볼테르가 어린 시절부터 문학 작가로서의 삶을 꿈꾸었고 평생 문학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신랄한 지성과 비판정신, 재기 넘치는 문체 등으로 유명한 '자디그',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등의 철학적 콩트를 그의 대표작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볼테르가 수많은 희곡 작품을 남겼고, 평생 자신의 희곡 상연에 관심을 가졌던 극작가였다는 사실은 쉽게 잊어버리곤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극작가 볼테르는 비극, 희극, 발레극, 오페라 등 장르를 넘나들며 평생 52편의 극작품을 집필했다. 그 중에서 '오이디푸스'1718, 그의 나이 24세에 쓴 첫 번째 비극이다. 이 작품이 처음 공연되었을 때 파리 연극계는 약 20년 전에 사망한 고전주의 비극의 대가 라신이 지옥에서 살아돌아왔다고 평할 정도로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극작가에게 열광했다. 실제로 볼테르의 '오이디푸스'5막 구성에 12음절 시구인 알렉상드랭 운문으로 씌어졌고, 그리스 비극의 단골 테마인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 비극의 계승자를 자처했던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비극 전통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볼테르가 자신의 데뷔작에서 비극을, 그것도 고대 그리스부터 17세기 프랑스까지 지속적으로 다루어진 오이디푸스 테마를 주제로 선택한 데는 필시 젊은 볼테르의 야망, 그러니까 서양 고전문학을 대표하는 두 장르인 비극과 서사시에서 대가가 되겠다는 포부가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볼테르는 비극 '오이디푸스' 집필 10년 후인 1728년 또 다른 고전 장르인 서사시 '앙리아드'를 세상에 내놓는다.)

 

 

 

 

 

고대 그리스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작가들의 손을 통해 반복 변주되어 온 비극적 인간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이제 서양 문학의 원형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볼테르의 '오이디푸스'가 서양문학사를 수놓은 오이디푸스 걸작들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지는가 하는 문제는 논의 밖의 일이지만, 적어도 볼테르가 풀어놓은 오이디푸스 이야기에는 소포클레스나 코르네유의 오이디푸스 이야기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예컨대 볼테르의 '오이디푸스' 에는 이오카스테의 오빠 크레온이나 이오카스테와 오이디푸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나오지 않고 그녀의 옛 연인으로 설정된 필록테테스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이오카스테가 라이오스와 결혼하기 전 사랑했던 필록테테스 왕자의 등장은 오이디푸스 이야기에서 부친 살해와 근친상간의 테마를 성립하게 하는 라이오스-오이디푸스-이오카스테의 삼각구도에서 이오카스테의 주체적 욕망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라이오스-필록테테스-오이디푸스의 관계를 통해 극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다양한 해석의 장을 펼쳐 놓는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의 실마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비극의 대가를 꿈꾸었던 볼테르의 야망이 꼭 헛된 것만은 아니었음을 보게 된다. 또한, 볼테르의 필록테테스는 자신의 행위를 다른 것과 맞바꾸려 하지 않는다. , 왕좌나 왕비와 같은 세속적인 보상을 탐하지 않는다. 그는 스핑크스가 수수께끼를 내어 테베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설령 알았더라도 수수께끼를 풀기보다는 괴물을 아예 베어 버렸을 것이다. 괴물이 내는 애매한 수수께끼에나 휘둘릴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볼테르 극의 또 다른 독창성은 오이디푸스의 부친 살해장면에서 돋보인다. 소포클레스는 친부를 살해하는 장면에서 단지 어느 골목길에서 이방인끼리 시비가 붙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는 평범한 일상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이는 사건의 뒤에 숨겨진 운명의 엄청난 기획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볼테르는 소포클레스와 달리 오이디푸스 자신의 의지보다는 운명의 힘을 더욱 강조한다. 오이디푸스는 신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한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는 부친 살인죄에 대한 인간 오이디푸스의 책임이 경감되는 면도 있다. 볼테르 극에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칼에 찔려 죽어 가면서도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듯 팔을 내밀며 눈물을 흘린 라이오스의 모습을 기억한다. 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알아보았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이전의 다른 오이디푸스들에서 부친 살해와 근친상간을 막기 위해 아들을 버리는 준엄한 아버지로 그려져 온 라이오스와는 다른 모습이다. 또한, 디마스와 이오카스테의 대사는 볼테르의 종교관을 보여준다. 오이디푸스의 충성스런 신하인 디마스는 왕권과 법을 통제하기 위해 신권을 남용하는 사제들의 악행을 고발하는가 하면, 이오카스테는 신의 능력은 맹신에서 비롯되며, 그 맹신 때문에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볼테르는 이들을 통해 신에게 저항하는 근대적인 인간상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오카스테는 신이 내린 운명을 인간이 거부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살아남아 테베를 다스리라는 신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거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오카스테의 마지막 대사에는 자유에 대한 인간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