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유진 오닐 '아이스맨이 오다'

clint 2019. 12. 6. 08:45

 

 

 

 

 

아이스맨이 오다는 오닐이 가장 애착을 가진 작품이다. 초고를 완성하고 교정을 단 한 번만 했을 정도로 오닐은 이 작품을 즐거운 마음으로 쉽게 써내려갔다고 한다. 아이스맨이 오다는 인간의 환상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내일에 대한 환상을 갖고 살고 있으며 그리고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작품의 제목을 번역하는 데 있어 고민이 많았다. 사전적으로 번역하면 얼음장수가 오다가 맞지만, 주제를 전달하는데 있어 다소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주제를 잘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아이스맨이 오다로 결정하게 되었다.

 

작품에서 인물들이 기다리고 있는 아이스맨은 죽음이다. 우리는 슈퍼맨, 배트맨, 아이언맨과 같은 맨 시리즈를 이미 알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평범한 인간이 갖추지 못한 초능력을 갖고 있으며 언제나 위기에 처한 인간을 마지막 순간에 구해준다. 아이스맨 역시 작품 속 인물들을 존재라는 감옥에서 최종적으로 구해줄 구원자이다. 구원자를 기다리는 동안 인물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뎌내기 위해 늘 술에 취해 있거나 내일이라는 백일몽에 매달린다. 죽음은 우리를 삶이란 고통에서 마지막 순간에 해방시켜주는 아이스맨인 것이다.

 

 

 

 

해리 호프의 술집은 환상의 세계로 인생낙오자들이 이상을 꿈꾸는 공간이다. 15명의 인물들은 술에 취해 자신들이 모두 한때 잘 나가는 사람들이었으며, 곧 머지않아 그런 날이 또 올 거라는 백일몽 속에 살아간다. 호프는 정치적인 환상 속에 프롤레타리아들에게 가식적인 사랑을 보여주면 권력을 쥘 수 있으라고 생각하고, 조는 인종적 환상 속에 백인들에게 평등을 요구하며 호전적 태도를 보인다. 척과 코라는 가정에 대한 환상 속에 결혼을 꿈꾸고, 마지와 펄은 신분에 대한 환상 속에 날라리와 창녀라는 단어를 구분 지으려 한다. 오번은 지적인 환상에 빠져 있고, 래리는 철학적 환상에 빠져 환상에서 벗어나 삶에 초연한척 한다. 마지막으로 히키는 구원을 찾았다지만 그것 역시 종교에 대한 환상이다. 그들 모두는, 최소한 무의식적으로는, 자신과 서로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또한 그들은 환상 없이는 삶이 지속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다른 이의 백일몽을 묵인해주며 상대방 역시 내 백일몽을 묵인해주기를 바란다. 해리의 술집은 밑바닥 술집이지만, 진실이 다가와 건들지만 않으면 아주 아름답고 평온을 주는 공간이다. 인물들은 단 하나의 교리인 내일주의에 매달리며 조화롭게 살아간다. ‘내일은 인물들의 희망이 계속 살아있게 하는 것으로 그들은 내일은 꼭 자신들이 계획한 일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 내일은 절대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내일은 내일이 되면 또 다시 내일로 미루어지기 때문이다. 내일주의에 반대하며 히키는 오늘주의를 내세운다. 그는 인물들에게 환상이 없는 삶이 죄책감 없는 삶이라고 하며 내일이라는 꿈을 없애라고 강요한다. 이런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히키의 적대자로 래리 슬레이드가 있다. 작품의 해설자이자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래리는 한때 무정부주의자였다. 하지만 오래전에 무정부주의와 삶에 대해 모두 관심을 끊었다. 늙은 관중석 바보 철학자역할을 하면서, 그는 삶에 완전히 초연한 자세를 취한다. 그에게 있어 인류의 본질은 똥이고 지구상에서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있다. 술집의 인물들이 그를 늙은 묘지기라고 부르는 건 그가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용히 앉아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래리는 비록 시니컬한 철학을 가장하지만, 지미 투마로우의 말처럼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속마음은 가장 여리다. “불쌍하지만 지친 늙은 성직자로서 본능적인 연민을 억누르려고 하면서도, 히키가 다른 인물들의 백일몽을 밝은 불빛 아래 드러내려고 할 때 그들의 백일몽을 지켜주려고 한다. 또한 히키가 오직 진실만이 평온을 가져다준다고 확신하는 반면, 래리는 행복이란 건 오로지 상호간의 속임을 밑바탕 으로 하는 것임을 안다. “진실은 염병할 무슨! 세계역사가 증명하듯 진실은 텅 비었어. 백일몽이라는 거짓이 잘못 태어난 미친 우리 인간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지, 우리가 취했건 말짱하건" 오닐은 히키가 복음을 전달하는 행위를 실패하게 함으로써 진실이라는 복음은 모든 환상 중에 가장 터무니없는 환상임을 말한다.

 

 

 

 

오닐이 이 작품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어느 정도 내포하고 있음은 신약성경과의 유사점을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구세주로서 히키는 열두 명의 제자가 있다. 그들은 호프의 저녁 식사만찬에서 와인을 마신다. 그들이 무대 위에 모여 앉아있는 모습은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킨다.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히키가 마지막에 파티를 떠날 때 그가 처형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세 명의 창녀들은 세 명의 마리아와 같고 세 명의 마리아가 예수를 동정하듯 그들은 히커를 동정한다. 패릿은 여러 측면에서 유다를 연상시킨다. 그는 극 중 인물 중에 열두 번째로 유다는 성경에서 열두 번째로 나온다. 패릿은 이백 달러 때문에 무정부주의자인 어머니를 배신한다. 유다는 은 삼십 낭 때문에 예수를 배신했다. 히키는 패릿의 속마음을 읽고, 예수는 유다의 속마음을 읽는다. 패릿은 비상계단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유다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목을 맨다. 오닐이 이 작품이 종교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을 비추어보았을 때, 이런 유사점들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히키가 한밤중에 도착하는 것도, 많은 등장인물들도 그러하다. 만약 오닐이 단순하게 인간이 아무리 바닥까지 추락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지탱하는 하나의 마지막 백일몽이 필요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면, 네 명에서 다섯 명의 인물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굳이 12명이란 많은 인물들이 필요 없었을 것이고, 작품이 이렇게까지 장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아이스맨은 히키가 농담하는 것처럼 자신이 집을 비우는 동안 아내와 바람을 피우는 대상이다. 더 심층적인 의미로 아이스맨은 죽음을 뜻한다. 아이스맨은 성경에 등장하는 신랑(마태복음 255~6절 참조)의 포일 캐릭터이며, 포일 캐릭터로서 신랑이 상징하는 모든 것들의 완전한 반대를 상징한다. 성경에서 신랑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예수이다. 신랑을 기다리는 것은 인간의 구원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결혼을 통한 신랑과의 결합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궁극적인 목적이고, 의미의 실현이고, 약속의 이행이며 소망을 이룬 것이다. 간통을 통한 아이스맨과의 만남은 신랑과의 만남에 대한 패러디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굴복이다. 이블린은 남편에게 죽임당하고 나서야 상징적인 아이스맨의 팔에 안겨 평온을 찾는다. 즉 히키가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인 아이스맨은 죽음이었다. 그러므로 히키, 죽음, 아이스맨은 하나이다.

철물 세일즈맨인 히키는 모든 메시야와 구세주를 대표한다. 메시야가 사람들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잔소리 하는 것처럼, 히키는 인물들에게 백일몽을 없애고 현실을 직면하라 잔소리한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을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연히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물들은 우리(cage)에 갇힌 동물들처럼 괴로움 속에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린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처를 가리기위해 다른 이의 상처를 할퀴기 시작하고 오래된 우정은 적대감으로 변해버렸다. 여린 마음을 가진 해리 호프조차 본인답지 않은 호전적 성격으로 변한다. 술조차도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그들은 숙취로 고통스러워 하고 불안과 걱정 때문에 금단증상은 악화된다. 인물들은 안전한 꿈이 찢긴 채 자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내일을 대면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하지만 모두 풀이 죽고 기가 꺾인 채 가랑이 사이에 꼬리를 감춘 개 꼴로 돌아온다. 히키는 그들을 행복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삶의 의지를 박탈해 버렸다. 희망을 잃어버린 인물들은 이제 지옥 속에 살고 있다. 모든 탈출구가 차단되어 버린 것이다. 그들은 진실이라는 죽음의 광선에 의해 돌처럼 굳어버리고, 휴고는 해리를 향해 왜 그래, 해리? 이상해보여. 꼭 송장 같구먼.”이라고 한다. 그들은 환상이 지탱해주지 않는 삶은 견뎌낼 수 없다. 진실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게 히는 것이다.

 

 

 

 

히키가 해리 호프의 술집으로 가져온 평온은 무덤 속의 평온이다. 그러므로 히키는 가짜 메시야이다. 부활과 생명이 아닌 세상을 날려버릴 위대한 허무주의자이다. 오닐은 히키가 가짜 메시야라는 것을 그의 가정사와 심리상태를 통해 드러낸다. 목사의 아들인 히키는 열렬한 복음주의를 자신의 영업에 사용했고, 자신의 영업 기질을 복음을 전달하는데 사용했다. 이를 통해 오닐은 모든 것들을 사고 필수 있는 이 나라에서 종교에 대한 환상 역시 팔 수 있다고 보았다. 오닐의 미음 한편에는 예수는 최고의 세일즈맨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을 지도 모른다. 히키는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알아본다. 부분적으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 경험에 의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최고의 세일즈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고객의 취약한 점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히키 역시 백일몽에 의지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히키는 이블린이 자신의 죄를 계속 용서해주면서 그에게 죄의식을 심어주고 삶의 즐거움을 없애 버렸기 때문에 그녀를 죽였다. 따라서 히키의 행동은 사랑이 아닌 복수의 행위이다. 히키가 이블린에게 성병을 옮겼을 때도 그녀는 그를 용서했다. 그는 그때 무의식 깊은 곳에서 아내를 죽이고 싶어 했다. 물론 당연히 그 생각은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왜냐면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 생각을 품어왔고 자신의 본성에 따라 호프의 술집에 가야한다는 것을 알고 아내를 죽였을 때, 그는 아편 하나를 더 조제한다. 그리고 아내를 사랑 때문에 죽인 것이기 때문에 아내가 자신의 치료할 수 없는 방탕함 때문에 더 이상 고통 받지 않을 것이라는 아름다운 백일몽을 꾼다. 사실 그는 아내의 환상을 증오했을 뿐만 아니라 아내를 몸서리치도록 혐오했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 이 미친년아, 니가 말한 백일몽이 뭔지 이제 알겠냐?”라는 말은 그의 이런 심리를 잘 보여준다. 히키는 농담 삼아 아내가 아이스맨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말하였으나, 사실 그는 이것이 사실이기를 바랬다. 그는 죄의식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히키는 곧 미쳤다고 주장한다. “세상에, 내가 그런 말을 했었을 리가 없어! 만약 그랬다면, 미쳤던 거야! 난 이블린은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어." 그러나 이것조차 아내를 향한 자신의 진짜 감정을 대면할 수 없기 때문에 차용하는 자기기만이다. 결국 미쳤다는 히키의 말은 거짓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사형을 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는 자신이 아내를 증오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아내에 대한 사랑이 환상이었고, 아내를 증오했기 때문에 죽였다는 것을 깨닫고 전기의자로 가고 싶어라고 말한다. 광기는 불쾌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이기 때문에 히키의 심리상태는 전혀 상관없다. 요점은 자신은 진실 속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히키가 또 다른 백일몽 속에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히키가 파는 구원이라는 상품은 가짜임이 증명되었다. 이블린을 죽인 후 발견한 행복감은 단지 또 다른 환상에서 오는 행복감이었다. 그러므로 해리 호프 술집에 있는 인물들의 환상을 없애려는 히키의 시도는 큰 실수이다.

인간의 미음은 사악하리만치 영리하다. 하나의 꿈이 구멍 나면, 다시 말해 우리가 우리 자신 혹은 현실과 마주치게 되면, 우리 마음은 얼른 또 다른 백일몽 속으로 뛰어들고 그것을 진실이라 부른다. 그리고 현실을 직면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환상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슬프다고 느끼지 않는다. 중요한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현실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진짜 현실이 무엇인지 꿰뚫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아이스맨이 오다의 주제는 신이 없는 세상에서 종교적인 구원을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인간은 환상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오닐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작품은 백일몽에 대한 극이다. 인간이 아무리 밑바닥까지 추락해도 항상 단 하나의 마지막 꿈은 남아있기 마련이다. 내가 경험해봐서 안다.”